![[EXO/경수찬열] 네가 놓은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2/e/42e020ae06174df70bc4afb282a8c4ce.jpg)
1
ㅡ병원에서 나오자 마자 몰려드는 한기에 가디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벤치에 앉아 숨을 내뱉자 입김이 피어 올랐고 피부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2
도경수, 네가 입원한 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엠뷸런스에 실려왔을 때만 해도 녹음이 잔뜩 낀 초여름이었는데 지금은 볼품없게 뻗은 나뭇가지 밖에 없다. 너는 낙엽이 떨어질 즈음 부터 저렇게 눈을 감고 벤치에 곧잘 앉아 있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나는 짐작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도 멀리서 널 지켜보고 있는게나처럼 병문안 오던 길에 널 보고 발이 묶인거겠지. 네가 일어나 병원으로 들어가는 동안 ○○는 널 붙잡지 않고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더니 곧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게 문자를 보냈던 건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깊게 울렸다.
[찬열아, 언제 와?]
나와 같이 병실에 들어가려던 듯 ○○는 널 따라 들어가지 않고 손을 비비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오늘은 병문안을 못 갈 것 같다는 나의 답장을 받은 ○○는 한숨을 크게 쉬는 듯 했다. 널 혼자 마주하기가 두려운 모양이였다. 아마 네가 병에 걸리고 나서 이렇게 오래 입원한 것이 처음인데다가 요즘 들어 힘겨워 하는 네 모습에 겁이 난 거겠지.
난 그저 ○○와 네가 시간이 필요하단 생각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누구보다 널 좋아했던 저 아이가 너와 둘이 있는 걸 겁내하기 시작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모르는 것 투성이였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부터 친구로서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다 싶이 자라 온 우리였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부터였을까, 네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해버리는 ○○를 보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었다. 그리고 네게 말을 내뱉기도 전에 무참히 선을 긋던 널 보고 ○○는 네가 고백을 거절할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즉, 여자친구도, 친구도 아닌 사이가 되버릴 것이라고. 그래서 고백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기쁘다고 한다면 기뻤다. 오래전부터 ○○를 마음에 두고 있던 나는 그 애에 대한 너의 태도에 하루에도 몇번이고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3
늘 신나서 병문안을 가자던 ○○○는 그 날 이후로 병문안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기엔 또 무참히 내쳤을 네 모습이 떠올라서, 그래서 나도 굳이 ○○을 끌고 가려하진 않았다. 괜히 어색해져버린 나도 너의 병문안이 그리 즐겁진 않았다. 괜히 땀나는 손만 바지에 문댔다. 오랜만에 본 너는 많이 헬쓱해져있었다. 그래도 때끈한 눈과는 달리 입꼬리는 편안히 올라가 있었다. 웃고 있었다. 너는.
"도경수, ○○○는..."
"○○는 안 와."
"..."
못 올거야, 아마. 라며 쓰게 웃는 네 모습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눈길을 돌린 창 밖은 곧 눈이 내릴 것 처럼 뿌옇기만 하다.
"찬열아."
"…"
"네가 나 대신 ○○한테 전해줄래."
"…"
"내가 많이 좋아한다고."
네가 소리내어 웃으며 창 밖을 보았다. 눈이 쌓이면 부러질 것만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 너를 보는 내 눈가가 작게 파르르 떨려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버렸다.
"그래…."
4
ㅡ찬열이가 안좋은 기색을 하고 돌아갔다. ○○도, 찬열이도 마지막으로 본 얼굴들이 어둡다. 죽어갈수록 보이는 지독한 모습은 나보다 너희를 더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너희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여느 때의 나였으면 했다. 병에 지친 모습이 아니라 웃고 떠들던 그 때와 똑같은 나. 이래서 병은 힘든가 보다.
사실 찬열이가 ○○를 좋아하지 않았대도 상관 없었다. 찬열이는 어찌 됐든 내 말을 전하지 않을테니. 누구보다 ○○를 생각해주는 아이니까 내 마음은 끝까지 ○○에게 닿지 못할 것 같다.
날 보며 웃었던 ○○가 조금 보고 싶어졌다. 더는 오지 않겠지. 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맞은 편 건물의 빛이 새어나오고 거리가 어두워졌다. 밤이 왔나보다.
뿌옇게 흩날리던 눈이 조금 거세졌다. 이젠 병실 안으로는 병원 복도의 빛과 바깥 거리의 빛만 새어들어올 뿐이다. 하루는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았다. 그 애들의 굳은 얼굴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 감는게 조금 무서워졌다. 그러고 보니, 애들과 만날 생각만 하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빨리 다음 날이 왔지 싶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도, 까불거리던 찬열이도, 너희들과의 모든 것이 소중했다. 이제야 웃음이 난다. 입 언저리가 절로 올라간다. 몸도 좀 가벼워진 것만 같다. 밤새 불던 눈보라가 멈추고 내일이 오면 너희가 다시 병문안을 와, 시끄럽게 굴 것만 같다. 부디 길을 잃지 말고 금방 웃으며 나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눈꺼풀이 무거운게 졸리다.
5
그렇게 집에 돌아와 난 머릿속을 도는 도경수의 말 때문에 늦은 새벽 잠이 들었고 다음날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에 오후 두 시쯤 잠에서 깨었다. 도경수가 기어이 하늘에 닿았다는 전화였다. 눈이 내려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멍청히 이브자리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밤새 내린 눈에 앙상한 가지가 꺾여버린 탓이였다.
6
○○○는 서럽게 울었다. 너의 장례식에서 새빨간 눈가와 코 끝에 울음을 짓누르던 ○○가 도경수, 너의 납골함 앞에서 셋이 찍은 사진을 끼워넣다 말고 주저 앉았다. 무릎을 동그랗게 말아 끅끅댔다. 가슴께를 부여잡는게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 보는 내 눈가가 시큰해져버렸다. 사진 속 네가 마치 ○○를 달래주라고 말하는 것 같다.네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달래주면 좋을지. 네 이름을 부르며 우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경수야, 하며 몸을 떠는 ○○ 앞에서야 비로소 난 네 빈자리를 실감했다.
7
아직도 ○○에게 네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했다. 오늘이 벌써 네 1년 기일인데난 봄, 여름이 가도록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너는 다 알면서. 내가 ○○○ 좋아하는 거 다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넌 내게 그렇게 짓궃다.
생각을 곱씹으며 몇 걸음 갔을까. 또 네 납골함 앞에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가 보인다. 그래도 그 날 처럼 울고 있지는 않다. 얼굴을 무릎 위로 빼꼼 내놓고 멀뚱히 우리의 사진을 보고 있다. 옆에 쪼그려 앉자 찬열아, 왔어? 하며 어설프게 웃는 ○○에게 나도 힘껏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도경수, 나 왔다."
너에게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 밖에 없다. 애써 놓지 않고 있는 입꼬릴 붙들고 ○○을 흘끗 보았다. ○○의 눈가가 잔뜩 붉어졌다. 나는 못본 척 얼굴을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얘기해야겠지.
네가 보는 앞에서 확실히 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
"…"
"○○야."
"…응."
"…내가"
"…"
"내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
○○가 고개를 슬쩍 돌려 시선을 내게 두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난 도경수, 네 사진만 보며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어쩐지 눈물이 고이는 것 같다.
"경수가."
"…"
"너 많이 좋아한대."
도경수 이 개새끼. 너 때문에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떨려왔다. 죽죽 비집고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는데 이 내 팔에 얼굴을 묻어왔다. 덜덜 떨리는 입술에 힘을 바짝 주며 ○○를 안았다. ○○의 어깨 너머로 우리들의 사진이 보인다.
네가 웃고 있다.
경수에게
도경수. 야, 쫄보. 나 군대왔다 새끼야. 그래도 나 너한테 첫 편지 보낸다.
너 그 때 기억나냐? 니가 ○○한테 고백하려던 남자애, 교무실에 복장불량으로 선도 세워서 고백
망쳤잖아 ㅋㅋㅋ 새끼 진짜 패기쩌네. 아 암튼 그래서 내가 니 찾아가서 다짜고짜 시비 걸면서
넌 ○○○ 마음 받아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걔한테 상처주냐고, 니 갖긴 싫고 남주기도 아깝냐고
그랬잖아. 아 쪽팔려. 근데 그 때 니가 나는 못 갖고 니 가지라고 다리 놔줘도 못 건너는 새끼가
지랄이냐고 그랬잖아. 나 그땐 뭔 말인지 이해 못했는데.. 나 진짜 등신같네
아 맞다. ○○한테 사귀자고 한 남자애가 고백 취소했다? 군대 영장 날라왔대. 나 솔직히
그거 니가 보낸건줄 ㅋㅋㅋ 니가 나 들들 볶는 거 같다, 야. 그래도 아직은 고백 안 해.
나중에. 나중에 니 빈자리가 받아들여질 때. 그 때 할게. 그 때 까지만 좀 다리 놔주라.
야. 경수야. 많이 보고 싶다. 거기선 몸 건강히 잘지내라.
-찬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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