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역시나, 감기 기운이 올라 핑핑 도는 정신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온 몸이 뜨거운데, 맞지 않게 이불을 둘러도 으슬으슬 추웠다. 아픈지가 꽤 되어 약도 없는데, 한참을 누워 있자 핸드폰이 울렸다. 어차피 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남자밖엔 없으니 아픈 몸으로 남자의 화를 받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생각해 무시하고 눈까지 이불을 덮어 잠을 잤다. "씨발, 뭐야. 아프면 전화를 하던가, 받기라도 하던가." 다급한 듯 소리치는 사람에 열에 들떠 무겁게 눌러 앉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 남자다. 남자가 화를 내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방을 왔다 갔다 한다. 겨우 겨우 팔을 올려 눈 위로 덮으니 깼냐며 물어오는 것이 평소와는 달리 살가웠다. 그러다 다시 저에게 화를 내는 남자에 머리가 울려 눈을 꼭 감았다. "아프면, 어? 전화라도 하던가. 병신이야?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뭐 하려고." 내가 눈을 감자 천천히 사그라지는 목소리에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 마. 죽 사올 때까지 가만히 있어." 툭 말을 내뱉고는 나가려는 남자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그냥 아무것도 말고 그렇게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죽 안 사오셔도 돼요." 그런 내 말을 무시하고 나가는 남자에 낮은 한숨을 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플 적에는 오빠가, 보고 싶다. 내 오빠. 울던 모습만 눈에 남아 속상할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시 찾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오빠에게 있어서 나는 항상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생이었으면 해서, 그래서 이렇게 더러워진 나를 하나하나 보이기가 무서웠다. 얼마간을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열이 오른 몸이 붕붕 떴다. 시원한 물을 꺼내들어 급하게 입으로 털어 넣듯 마셨다. 갈증이 심했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아프면 평소보다 서러워지는 게 많다고 했던가, 이런 낡은 집에 가족 하나 없이 쓸쓸히 사는 내 처지가 너무도 억울하고 서러웠다. 열이 높아서 그런지 내가 내가 아닌 듯 하고,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닌 듯 했다. 그렇게 서러움에 묻혀 허우적 대다 근처에 보이던 과도를 들고 죽겠다는 각오로 손목을 세게 그었다.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긋고 또 그었다. "살고, 싶지가 않아.." * 죽과 감기약을 사 들고 ○○의 집으로 갔다. 이제는 내 집 마냥 익숙한 도어락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훅 끼쳐오는 피 내음에 불안이 밀려 와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박○○..!!" 검붉은 피가 거실에 고여있고 창백하게 누워있는 ○○, 오른손에 들려진 날카로운 과도, 몇 번을 그은 것인지 너덜너덜하게 남아 있는 왼 손. 너는 대체.. "씨발, 미친. 아, 씨발.." 욕을 뱉어내며 내 옷이 피로 물들든 말든 ○○이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갔다. 제발, 제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 후 다른 환자들 보다 먼저 응급실로 들어가 치료를 받았다. 제발 무사해라, 제발 무사해. 모든 것이 다 내 탓 같았다. 어제 그렇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에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했던 것만 같아서. "박○○ 환자 보호자 분?" "네, 네." "아, 일단 어떻게 이 고통을 참았는지, 뼈를 제외한 부분 모두가 잘려있었고요. 그로 인해 손목의 거의 모든 근육이 파열 됐습니다. 아마, 손목은 절단을 해야 될 듯 해요." "아.." 절단이라니,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의사에게 나중에 ○○의 선택을 따르라 말을 했다. 조금은 잔인할 지 몰라도. 박○○, 너에게 미안해서 그리하지 못하겠어. * ○○이를 찾으려 이곳 저곳을 계속 뒤졌다. 스케줄도 무시하며 ○○이를 찾으러 다니자 내게 ○○이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이해해 주시며 스케줄을 다 빼주시는 대표님 덕에 더 오랜 시간 ○○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항상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이가 사는 곳 대한 추측이라도 정보가 있다면 볼 것 없이 그 곳으로 향했다.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어디있니, ○○아. [희님 등에 업혀 있는 여자 찬열이 여동생 아님?] (사진) ㄷㄷㄷ 손목 그은 것 같은데, 괜찮은 가ㅠㅠㅠㅠㅠㅠㅠ -헐, 찬열이 여동생 맞는 듯. 나 그 때 봤었는데, 개 똑 -아, 피 소름. 왜 그은 거지ㅠㅠㅠㅠㅜㅜ ...희님. 희철 선배. ○○이.. 피. 손목.. 놀라 커다래진 눈을 하고 려욱이 형에게 전화 번호를 받아 희철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를, 희철 선배가 알고 있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찬열이요." [아, 그래. 무슨 일?] "혹시, ○○이. 아세요?" [...] "○○이. 아세요? 네?" [●●병원.] 병원 이름만 말하고 끊겨버리는 전화에 머리를 쥐어뜯다 곧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아,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금방 갈게. 정말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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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남편한테 이혼 통보 당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