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 이렇게 시작하는 거 맞나요? 이런데 글을 처음 올려봐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반말로 할게. 먼저 나랑 내 애인은 둘다 남자라서 이쪽 싫어하는 사람들은 보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요. 한두번이 아니지만서도 항상 상처받거든. 우리 둘이 연애하는 시간이 정말 예뻐서 또 아까워서 이렇게 글로라도 남기고 싶고, 우리가 이렇게 사랑해요, 내 애인 예쁘죠 말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써. 큰 사건같은 것도 별로 없이 소소하게 지나가는 편이고, 그냥 진짜 연애담인데 볼 사람이 있으려나?
뭐부터 말해야 하지? 일단 나랑 내 애인은 네 살 차이고, 내가 연하. 내가 대학생 때 만나서 지금 3년 좀 넘게 연애중인데 키는 내가 조금 더 크고, 나는 경영 나와서 그냥 회사원이고 내 애인은 일러스트레이터야. 콩깍지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애인 진짜 예뻐. 눈도 크고. 지금 둘 다 착실하게 일하면서 돈도 모으고 해서 동거 준비중이야.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 보고 밤에 자기 전에 애인 얼굴 보고 잠드는 건 정말 행복할 것 같지 않아?
처음 만난 이야기 먼저 할게. 대학생 때 만났다고 했지? 그 때 내가 과제용 책을 대출하러 우리 대학 도서관에 갔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진짜 한산했어. 이만한 책을 팔꿈치에 겹쳐서 쌓아 놓고 대출하는곳 앞에 갔는데 거기에 매일 계시던 분은 계시질 않고 한 남자가 스케치북에 그린 스케치 위에 펜을 대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사서 아르바이트였나? 어쨌든 남자치고 머리가 꽤 길었던 걸로 기억해. 지금도 그때 생각나서 머리 길러달라고 한다. 근데 내 애인은 뭐 해도 예뻐.
어쨌든 그 때 머리를 옆으로 비스듬하게 넘기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거야. 나는 책을 빌려 가야 하니까 대출해주려고 말하려고 했지. 그러려고 보니까 고개가 얕게 앞뒤로 움직이는데 사람도 없고 한산한 시간이니까 앉아서 잠이 든 모양이었어. 어깨를 흔들어서 깨우려고 손을 뻗었는데 자면서 계속 손에 힘이 빠져서 잡고 있는 펜이 흔들거리는 게 보여. 스케치 선을 따고 있던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여차하면 선이 딱 엇나가서 그림을 망칠 기세인거야. 얼른 일어나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그 남자 손에 힘이 탁 풀리고 그거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손을 잡고 위로 올렸어. 다행히 펜은 그대로 떨어져서 그림은 괜찮았는데 내가 기분이 이상한 거야. 지금 말하는 거지만 우리 애인은 손이 되게 부들부들하고 따뜻해. 남자 손은 맞는 것 같은데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근데 그 사단이 나서 그 남자가 잠에서 깨서 눈을 찡그려서 나를 보는데 그 순간은 말로 설명이 안 되는데 일단 얘기할게. 처음 든 생각은 진짜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예쁜 건 아니고 남자같이 생기긴 했는데 예쁘장하고 쌍꺼풀도 예쁘게 진 얼굴 있잖아. 내가 그 순간 손을 놓고 그 남자를 봤는데 그 남자가 잠깐 당황해하다가 입을 열고 "무슨 일이세요? 책 대출 확인해 드릴까요?" 했는데 진짜 민망한데 또 기분은 괜찮은 것 같고 또 앞에 남자는 신경쓰일 것 같고 해서 진짜 전공 책 바로 책상 위에 소리나게 올려놓고 도서관 밖으로 나와버렸어.
나오니까 민망하기는 진짜 민망하더라. 내가 왜 그랬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진짜 민망한데 막 웃음이 나와. 손에는 아직도 부들부들한 느낌이 남아 있고 당황한 그 남자 생각하니까 막 귀여운 것 같고.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 그거 그냥 그대로 안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어. 처음 만나서 오늘 3분도 안 본 주제에 좋아한다 어쩐다 이야기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봤을 때 기분좋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 다음날 공강에 도서관에 들어갔는데, 그 때는 좀 복잡하고 사람도 많은 편이었어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그 사서를 보고 있었어. 동기들이나 선배들 후배들이 책을 들고 오면 바코드로 하나하나 찍고 돌려주는데 정말 별 거 아닌 행동인데 보는 게 좋아. 가끔 학생들이 말을 걸면 웃으면서 대꾸해 주다가 서랍을 열고 비타민같은 것도 하나씩 챙겨 주고.
그렇게 빈 공강 시간을 다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그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어제 빌리려고 했던 책들을 한가득 안고 나한테로 오는 거야. 나한테도 꽤 무거웠던 건데 똑같은 남자인데도 위태로워 보이고 해서 그냥 내가 일어서서 다 들고 왔어. 남자가 고맙다고 웃고는 "이거 어제 학생이 빌리려고 했던 책이죠. 과제 할 거 아냐? 왜 놓고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얼른 대출해 줄게요" 하고 책상으로 끌고 가서 바코드를 찍었어. 나는 이게 뭔 일인가 싶고 그런데 이야기를 해서 기분은 좋고.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데 바코드를 다 찍은 건지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학생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라임비타민을 꺼내서 책 위에 얹어주고는 입을 열었는데 어제 덕분에 그림 안 망치고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웃는 거야. 눈이 예쁘게 접히고 환하게 웃는데 그때건 지금이건 생각해봐도 진짜 예쁜 거야. 막 빛이 나. 내 세상이 한 인물을 기점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듯 한 기분 알아? 그래서 나도 진짜 할 수 있는 한 환하게 웃고 책 들고 나왔어. 내가 게이인가 생각도 들고 별 생각이 다 드는데도 좋아. 그냥 좋았어.
이게 우리 첫만남이자 우리 연애의 시작인건가? 난 지금까지의 연애는 첫눈에 반한다기보다는 천천히 좋아지는 방식이었어서 더 충격이었지.
음 그리고 내가 완벽히 게이인 거냐 하면 그건 또 아니야. 내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남자인 것 뿐. 그게 그거인가?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우리 연애에 대해서 말해줄 것도 많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애인 자랑할 거리도 많은데 오늘은 이쯤에서 끊을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보고, 잘자. 나도 우리 애인이랑 전화하고 곧 잘 거야. 좋은 밤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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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애슐리 가자는데 좀 정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