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미쳤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게 부는 초가을 날씨에 이불 속을 파고들며 5분만, 10분만 하던게 화근이였다.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시계는 8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그 말은 곧 지각을 의미했다.
이부자리에서 거의 스프링처럼 튕겨나가듯이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 얼굴에 정신없이 물을 끼얹고 방과 방을 오가며 미친년마냥 뛰어다녔다.
교복을 마구잡이로 팔과 다리에 끼우며 단추를 채우고 책상위에 어지럽게 펼쳐져있던 교과서와 필통을 가방안에 쑤셔넣었다.
양말. 양말. 아씨, 양말 어디갔어.
거의 다 챙겼다 싶어 이제 양말을 신고 나가려는데 양말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서랍장을 뒤져서 구석에 있던 양말을 꺼내 신고 가방을 둘러맨채 신발을 우겨신었다.
문을 박차고 나와도 엘레베이터가 앞을 가로막았다. 12층에 멈춰서있는 엘레베이터에 내려가기 버튼만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며 발을 동동 굴렀다.
엘레베이터는 천천히 한층씩 내려와 8층에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엘레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어가 로비층이 눌려있는지 확인하고는 빠르게 닫힘버튼을 눌렀다.
" 아씨, 머리 산발이네. "
자고 일어난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직 아무렇게나 엉켜서 부시시한 머리에 손빗으로 빗어가며 대충 정리하는데 누군가의 바람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엘레베이터 안에 들어올때 정신이 없어 누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제서야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는 이상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원인지 말끔하게 푸른 정장을 입고 있었고 조금은 튀는 색상의 넥타이임에도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사람을 스캔할때까지도 그 사람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왜 웃어요? "
" 어, 어? "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는지 한참을 웃다가 멍청한 소리를 내며 쳐다보았고 그런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뭐야, 이상한 아저씨야. 그렇게 단정짓고 마저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엉킨 곳을 풀어냈다.
아! 단단히 엉켰는지 머리를 빗다가 손가락이 걸려 머리카락이 빠지는 고통을 느끼며 울상을 짓자 또다시 옆에서 큭,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 아저씨가 진짜. 머리카락이 뽑히는 얼얼한 느낌에 눈물이 핑 돌것만 같은데 처음보는 이상한 아저씨는 웃고만 앉았다.
로비층에 도착해서까지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저씨를 둔 채 먼저 엘레베이터에 나와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가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저기, "
" 왜요? "
지각할 위기에 처해 한시가 바쁜데 왜 부르는건지, 그 소리가 탐탁지 않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상한 아저씨는 축처진 눈을 더욱 처지게 만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낸다.
아 뭐야, 안어울려.
" 아, 아니예요. 학교 가는 길인가봐요. 잘 다녀와요. "
뭐야아!! 지금 그 말 하려고 나 부른거야? 지금 그 말 하려고 내 소중한 2분 15초를 허비한거야?!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어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채 고개만 까딱하고 학교로 내달렸다.
오늘의 교문 담당 선생님은 그 이름도 유명한 미친개 학주.
멀리서도 유난히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저 대머리가 얼마나 야속한지.
요즘따라 얼마나 자주보는지 친근해졌다며 볼을 잡아 비트는 학주때문에 울상을 지었다.
" 아니, 학주쌤. 그게 아니라요오... 아! 아! 우리 말로 좀, 합시다. 이거 좀 놓... 아! 아파요! "
" 시끄럽고 운동장 15바퀴. 오리걸음으로. "
엄마, 다리가 튼실하게 낳아줬는데 지각으로 벌받는 일에만 쓰여서 죄송해요.
미안하다, 내 다리들아. 못난 주인을 만나서 혹사당하는구나.
뭘 궁시렁거리냐며 등짝을 매섭게 내려치는 학주에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이게 다 12층 아저씨 때문이야. 아오, 12층 아저씨.
*
" 아저씨, 처음에 우리 만났을 때 기억나요? 그 때 왜 웃었어요? "
" 처음 만났을 때? 어, 어. 엘레베이터? 기억력 좋다. 난 가물가물한데. "
" 아, 빨리.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못 물어봤단 말이예요. "
" 귀여워서. 막 일어나서 눈도 제대로 못뜨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어. "
" 그 추한 몰골이 귀엽다구요? "
" 귀여운데. 너는 내가 자고 일어난 모습이 귀여워, 안귀여워? "
" 귀여워요. "
" 똑같은거야. "
" 그럼 엘레베이터에서 내리고 왜 불렀어요? "
" 어, 아, 그거. 지각한거 같길래 태워다주려고 그랬는데 처음보는 사람 차에 타는건 좀 그렇잖아. "
" 헐. 이 아저씨가? 그런 중요한걸 왜 이제야 말해요!! 나 그날 지각해서 운동장 15바퀴 돌았는데!! 그것도 오리걸음으로!! "
" 어, 어? 그랬어? 미안. "
" 별로 안 미안한 표정인데. "
" 지나간 일이잖아. 그리고 요즘은 지각도 안하고. "
" 누구가 꼬박꼬박 깨워줘서 지각은 안하고 있죠. "
" 그래서 싫어? "
" 누가 싫대요? 좋아요. 아침부터 아저씨 얼굴도 보고 모닝키스도 하고. "
" 못하는 말이 없어. 왜 부끄러운건 내 몫인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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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짧은노래와글 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노래와 짧은 글을 들고올 예정이였는데
구상해놓은게 어쩌면 더 길어질지 몰라 이렇게 연재식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건 아니고 간단한 썰같은 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댓글이라도 달아주시면 큰 힘이 되니까 많이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