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
Written by.알리에
1.
눈을 뜨니 주변은 온통 암흑이었다. 나의 숨소리가 크게 울렸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둠에 몸을 떨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며 아파왔다. 뒷통수가 저릿한게 어디에 박은 것처럼 아팠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더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어둠속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굉장히 섬뜩했다.나는 무서움에 아무것도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한참후에 어둠에 눈이 적응되었는지, 조금씩 앞이 보였다. 눈을 찌푸려야 더 잘보였지만, 나는 내가 대충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맨홀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하수구속이었다. 또 몽유병이 도진것 같았다. 한동안 괜찮았던것 같은데....머리가 아픈것도 맨홀속에 빠져서 바닥에 부딪힌것 때문인듯했다. 바닥에 처박히고나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걸었는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지겨운 몽유병이었다. 어쨌든 바깥으로 나가야 했기에, 나는 계속 앞으로 걸었다. 걷다보면 열려있는 맨홀뚜껑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최근에 집주변에서 하수도공사때문에 열려있는 맨홀을 많이 봤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지나지 않아서 저 앞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빛을 향해 걸어갈수록 무언가가 내 눈앞에 보였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인 것 같았다. 부주의로 인해 나처럼 맨홀 안으로 빠진 사람인걸까?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내 숨소리는 아니었다. 사람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빛줄기가 강해지면서 얼굴이 약간 보였다. 찡그리고 있었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미간에 잡힌 주름마저도 아름다웠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미모였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아픈듯 끙끙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멀쩡했으니까.
빛줄기 바로 아래에서 그의 얼굴을 확실히 볼수 있었다. 정말, 감탄사가 나올만큼의 아름다움이었다. 빛과 반쯤 걸쳐져 있는 그의 몸을 살짝 들어 옮겼다. 그의 몸이 미끈거렸다. 그를 빛줄기 바로 아래에 내려놓고 나서, 나는 경악을 감출수 없었다. 놀라움에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는 , 인어였다. 그가 왜 아름다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비늘로 쌓여져 있는 꼬리가 그것을 확연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나는 우선 그를 짊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너무나 가벼워서, 한 팔로도 그를 들수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짊어진채로 사다리를 탔다. 그를 떨어트릴뻔한 위기도 몇차례있었지만, 바깥으로 나올수있었다. 바깥은 어두웠다. 밤이었다. 내가 보았던 빛줄기는 가로등의 불빛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바로 근처가 집이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그를 똑바로 안아들었다. 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였다. 왜 인어가 하수구속에 -인어가 있다는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쓰러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신고는 할수없었다. 그가 정말 인어라면 온갖 검사를 당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우선 욕실로 들어갔다. 내 집안에는 그를 넣을 만큼 커다란 어항이 없다. 그를 욕조에 넣고 물을 틀었다. 인어니까 물이 없어서 아파하는 걸지도 몰라. 내 추측이 맞았는지, 욕조에 물이 반쯤 차오르자 그의 눈커플이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떠지는 눈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눈동자가 환상적이었다. 그는 나처럼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의 칙칙한 눈빛과 다르게 깨끗하고 영롱했다. 그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더니 베시시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
그것이 그가 내뱉은 첫마디었고, 나는 그 목소리에 빠져들어갔다.
2.
물이 다 차오른 욕조는 그가 헤엄칠수 있을정도로 넓지는 않았지만, 몸을 푹 담글 정도는 되었다. 그는 마치 잠수하듯 온몸을 물 안으로 가득 넣었다가 고개를 빼들었다. 축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이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방긋방긋 웃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이 너무나 따가와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어색해하며 욕실안을 이리저리 배회하자, 그가 내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왔다. 김준면, 그게 그의 이름이었다. 아름다운 인어의 아름다운 이름. 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에게 어째서 하수구 속에 있었냐 하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두루뭉술했다. 그도 자기가 어떻게 하수구속에 쓰러져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왜 물에 안들어가고 거기서 그렇게 쓰러져 있었어요?"
"하수구 물은 너무 더러워. 들어가면 일분도 안돼서 죽고말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배설물과 폐기물이 들어오는 곳인 그럴만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곧 있으면 비가 올것 같아서 그곳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결국 비가 오지 않아서 물부족으로 아파했긴 하지만 내가 자기를 구해줬다며 고맙다고 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작은 입술로 조잘대며 내게 말했다. 그는 한군데도 모난곳이 없었다. 목소리도 아름다웠다. 바다의 선원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목소리 같았다. 그가 오히려 인어라는게 당연할 정도로, 인어가 아니라면 저런 아름다움을 누가 소화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될정도였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습지만, 그랬다. 그는 혹시 인어가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악마가 아닐까? 그만큼 그는 매혹적이었다.
나는 일하는 시간외에는 모든 시간을 그와 보냈다. 그가 들어가 있는 욕조의 물을 갈아주고, 그의 비늘 하나하나를 손수 닦아주었다. 준면은 내가 그의 비늘을 닦아줄때면 가끔 베시시 웃으며 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그는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기때문인지, 내게 의지했다. 그도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랬으면 좋겠다.
3.
그도 날 사랑하는 것 같다. 내가 그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했을때, 그가 날 피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하얀 두 볼을 붉게 밝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부끄러워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나는 그가 그럴때면 일부러 더 많이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가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속에 들어가있는 그의 꼬리가 물장구를 쳤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싶어했으며 나는 그런 준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자세하게 말해줬다. 그가 좋아했다. 우리는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못했지만 그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우리는 행복했다. 그때까지.
큰일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물도 매일 갈아주고 비늘도 닦아주는데, 그는 너무 아파했다. 다친곳도 없었고 물도 깨끗한 물만 사용했는데 도대체 왜 이런거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통증을 호소하던 그는 숨쉬는 것도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거친숨을 내뱉으며 끙끙 앓는 그를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도와줄 수 방법을 몰랐다. 준면조차도 자신이 왜 이런건지 몰랐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그의 상태는 좋아지기는 커녕, 더 심해졌다. 그가 몸을 담구고 있는 욕조안의 물은 매 시간마다 갈아주지 않으면 역한 냄새를 풍기며 변색되었다. 하수구 물 같은 색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욕실안은 생선썩는-그에게 이런표현을 쓰고싶진 않지만-냄새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의 꼬리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썩어들어가는 그의 꼬리를 더 정성스럽게 닦았다. 내가 할수있는게 이것뿐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4.
"이야기 들었어요? 그 미친놈 이야기"
"듣고 말구요, 어떻게 사람이 그런데요. 아우 소름끼쳐. 그런 사람이랑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니...어휴"
"그러니까요. 아파트 값 떨어지면 어쩌죠?"
"어휴 진짜.."
[단독] "엽기적인 살인사건 발생"
[단독] "엽기 20대, 애인살해 후 넉달간 욕실 내 시체 은닉"
[단독] "엽기 20대, 애인살해 후 넉달간 욕실 내 시체 은닉"
[리포트]
아파트 주변으로 잇따라 들어서는 경찰차.
지난 5일 서울 모동에서 발생했던 "아파트 욕실 시체 은닉사건" 현장입니다.
20대 남성 A씨는 2년동안 알고 지낸 20대 남성 B씨를 흉기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사망한 B씨를 다시 자신의 집 욕실에 은닉했습니다.
피해자 지인의 제보로 A씨와 B씨는 2년간 애인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로 좋은 관계를 이어가던 중 A씨의 집착이 점차 거세졌고, 그 집착을 견딜 수 없었던 B씨는 A씨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별통보는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죽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인터뷰: 김민석/서울경찰서 형사과]
"피고인이 검거 될 당시 현장은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피고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시체냄새가 외부로 새어나왔습니다. 저희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 후, 강제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정말 참극의 현장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있던 욕실 속 욕조에는 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피해자의 부패된 시신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정확한 얼굴윤곽도 알아보기 힘들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그런 피해자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미친놈이죠 정말"
[인터뷰: 김종대/서울경찰서 형사과]
"피고인의 정신이 온전치가 않아요. 피해자가 인어라나 뭐래나. 피고인은 현재 자신의 범행 행각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찰은 A씨를 살인 맟 시체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채널 EXO 뉴스 김수녀입니다.
5.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정말 둘도 없이 사랑하는 애인이 한명있었다. 남자의 집착이 보통사람들보다 약간 심해, 둘 사이는 위태롭긴 해도 평화로워보였다. 하지만 여타 다른 연인들이 그러듯, 그들 사이에도 마찰이 생겼다. 남자의 연인은 남자의 집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고, 남자에게 집착을 그만둬 달라고 요청했다. 남자는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의 요청에 집착의 세기를 약간 줄이듯 했으나, 멈추지는 못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난 후 약간 주춤했던 집착의 세기는 예전보다 더 거세졌다. 결국 집착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남자의 연인은 메신저를 통해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연인에게 일방적 이별통보를 받은 남자는 미쳐버렸다. 분노한 남자는 아주 계략적으로 행동했다. 이별을 통보한 자신의 연인에게 제발 얼굴은 보고 헤어지자며 애걸복걸했다. 남자의 연인은 이제까지 사귀어온 기간도 있고, 쌓아온 정도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부탁에 마음에 약해진 그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남자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을 집앞으로 불러낸 후, 재차 애원했다. 제발 다시 생각해달라고, 제발 번복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남자의 연인은 그런 남자의 행동에 정이 떨어질때로 다 떨어져 버렸다. 남자의 연인은 그에게 다시 한번 통보했다. 헤어지자고. 그리고 미쳐있던 남자는 도를 넘어버렸다. 남자는 만약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았던 칼로 자신의 연인은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그리고. 마침 하수도 공사때문에 열어놓았던 맨홀 구멍속으로 자신의 연인을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때 남자의 연인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는 떨어지는 순간에도 남자를 붙잡아 같이 하수구 속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남자와 남자의 연인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남자의 연인은 하수구 속에서 바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죽었다.
남자의 뒷 이야기는 알지 못하나, 후에 남자는 연인과의 기억을 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아, 그리고 남자의 연인의 이름은 김준면이라고 한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김준면이라는 사내였다고 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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