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수야, 우리 오늘 안 만나?
- 어.
- 진짜? 빨간 날인데? 진짜로? 허무하게 보낼 거야? 정말로? 레알? 진심으,..."
- 어!!!!!!!!!!
깝 x 벽
(시험 기간 편)
빨간 날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글날 귀한 줄 모르고 저런 막말이나 하고 앉았고. 쯧쯧. 책상에 휴대폰을 다시 올려놓고 경수는 샤프를 집어들었다. 한창 시험 기간인 지금, 자신의 취약 과목인 국어 때문에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세종대왕 님, 이왕 자신의 뜻을 백성들이 알기 쉽게 만드실 거면 조금만 더 쉽게 만들어 주시지... 괜한 위인 탓을 하는 자신도 백현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문제집에 집중했다.
선생님이 이 문법 조심하랬는데. 중얼거리며 공부하는 것은 버릇이 되었다. 답안을 체크하며 하나 둘 씩 그어지는 빨간 빗줄기에 점점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카톡왔숑. 익숙한 메신저 알림, 그리고 누가 보냈을지 뻔한 지라 휴대폰을 잡을까 싶다가도 온통 빗줄기 투성이인 자신의 문제집에 무참히 휴대폰은 꺼지게 되었다. 디바이스 종료음에 경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바보 같은 놈.
누구는,... 안 만나고 싶어서 그러나.
문제집도, 자신의 마음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주륵주륵.
***
"어쭈? 이제 카톡도 안 봐?"
"도경수 좀 그만 괴롭혀라. 걔가 무슨 죄야."
"뭐?! 이게 괴롭히는 거야? 이건,"
연인 사이에 정당한 사랑 방식이라고, 이 무식한 새끼야!
백현의 정강이 차기 스킬을 당한 찬열은 욕을 뱉음과 동시에 두 손을 정강이에 갖다댔다. 저 개새끼 진짜! 아픈 부위를 문질문질 대도 아픈 건 나아지지가 않았다. 괜한 말을 했다 화풀이 대상이 된 찬열은 눈물이 찔끔 나려는 걸 꾹 참고 백현을 노려봤다. 자신을 보며 킁, 코웃음 치다가도 쇼파에 퍽 누워버리는 백현이다.
"공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참나."
"뭐가 그렇게 좋다고 문제집은 맨날 들여다보고."
"얼씨구."
"설마 나보다 공부를 더 좋아하나."
"너보다 싫어하는 건 없다에 천 원 건다."
더 맞고 싶나봐? 맞는 게 취미여? 그런겨?
백현의 으르렁 대는 것과 같은 읊조림에 저도 모르게 정강이를 지키기 위해 손을 무릎으로 갖다댔다. 그러자 찬열의 머리를 강타한 후 주섬주섬 재킷을 입는 백현이었다. 아오 씨발. 저 개보다 못한 새끼. 찬열의 울먹임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신발장으로 갔다. 치킨 시켰잖어, 어디 가는데! 찬열의 화 섞인 물음에 백현은 운동화 끈을 재빠르게 묶은 후 아주 오글스런 한 마디를 뱉고 밖으로 나섰다.
"니 혼자 다 처드세요. 난 내 거 보러 간다!"
***
"우리 경수는 뭘 먹고 그렇게 예쁘지?"
"솔직히 말해 봐. 너 이슬만 먹고 살지. 나랑 밥 먹을 때 빼고는 이슬만 먹지."
"공부는 싫은데 공부하는 모습은 왜 이렇게 또 예쁘대... 으윽. 심쿵."
백현의 원맨쇼에 경수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저 미친 놈이 갈수록...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오금이 지릴 정도로 닭살스런 백현의 말에 경수는 한숨을 푹 쉬며 샤프를 던지듯 놓았다.
"어? 공부 그만하게?"
"백현아."
"응, 자기야!"
"...존나, 심쿵하든가!"
경수는 말을 끝내자마자 꽉 진 주먹으로 백현의 심장 부근을 매우 세게 쳤다. 아아악!!! 백현의 단말마성 비명에 아무렇지 않아하며 다시 샤프를 들었다.
역시 집으로 들이는 게 아니었어...
경수의 고향은 지방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고향에서 살았으나 수도권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바람에 가족들의 걱정을 뒤안고서 홀로 자취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편하게 경수의 집에 오는 편이었는데, 특히 특별한 백현은 더 자주, 많이 왔다.
그리고 20분 전, 마구잡이로 찾아와 문을 쾅쾅 대며 자신을 들여보내달라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어락을 풀어버렸다.
"겨, 경수야... 심쿵이 너무 심해... 흐엉."
"지랄도 정도가 있어. 진짜 조용히 안 하면 당장 쫓겨낼 거고,"
"...그리고?"
"시험 끝나고도 너랑 안 만나."
그때부터였나요, 백현의 조잘거림이 멈추게 된 게.
***
시계침이 8을 가리키고도 한참 후에서야 경수의 공부는 끝이 났다.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백현에게 시선을 두었다. 경수의 협박을 듣고 제 옆에서 약간은 산만스럽게 앉아있다 결국 알아서 이불을 피고 뒤척거리다 잠이 든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송글송글 피어오른 경수는 백현이 잠결에 차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준 후 백현의 옆에 앉았다. 협박은 좀 심했나. 항상 말부터 뱉고 보는 것에 상처를 받는 것은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게 문제였고, 또 백현이 이해해 주기에 별 생각 없이 넘겼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미안했다. 잘 때나 예뻐해 줘야지. 경수의 손이 백현의 머리로 향했다. 그리고 곧,
"도경수."
"으억."
갑자기 눈을 뜨고선 경수의 상체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탓에 경수는 놀람과 동시에 백현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아오. 깜짝 놀랐잖아."
"흐흐. 잘 때 만지니까 좋았냐? 엉?"
"지랄은......"
갑작스런 백현의 공격(?)에 부끄러워진 경수는 험한 말과 다르게 빨개진 것 같은 얼굴을 숨기기 위해 더 파고들었다. 으악, 귀여워!!! 카와이!!! 백현은 목구멍으로 나올 뻔한 말을 꾹 참고 큭큭 웃어대기만 했다. 저번에 오타쿠스러운 말을 했었다가 차가운 분위기가 됐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 버리고 잘도 공부했겠다, 이번에도 전교 일 등?"
"너보단 잘하겠지."
"예, 예. 암요. 그러시고 말고. 근데 경수야, 나 배고파."
"눈 뜨자마자 배고프냐."
"나 박찬열이 같이 치킨 먹자는 것도 무시하고 왔어. 어때, 오빠 좀 잘했,"
오빠 소리 한 번만 더 해 봐, 아주.
살벌한 그, 경수 덕에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거참... 드립 한 번 쳤다고 그러기야? 이불 속에서 장난스레 경수의 옆구리를 툭툭 치다가, 슬금슬금 티셔츠 속으로 파고드는 손을 바로 캐치해 저지했다.
"뒤질래? 아주 막 나간다?"
"엥? 파고든 게 누군데 이러셔?"
"아 됐어. 나 일어날래."
"에헤이~"
그렇게는 안 되지! 경수가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잽싸게 경수 위로 올라탄 백현은 서서히 경수에게 다가갔다.
곧 입이라도 맞출 듯 가까워진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배, 배고프다며."
"안 고파. 난 경수가 고파."
"뭐래. 나 오늘 일어나서 세수만 했다고."
"그래도 예뻐."
"그 말이 아니잖아!"
얼굴부터 목까지. 점점 붉어지는 경수가 귀여워 얼굴을 한 번, 또 목선을 한 번 훑었다. 하지 마아... 경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백현의 손은 이리 저리 옮겨다니기 바빴다.
"경수야, 오빠 믿지?"
경수를 괴롭히지 말라던 찬열의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만큼은 눈 앞에 있는 사람만 생각하기로 하자.
마우스 투 마우스. 야릇한 소리가 방안을 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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