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해진 너를 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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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캔버스 위 바쁘게 움직이던 연필이 움직임을 멈춘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책장을 넘기던 로빈 데이아나도 함께 숨을 멈추고 이 쪽을 힐끔 바라본다. 나는 올곳이 나의 피사체에 집중한다.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는 캔버스에 담기 아주 적합한 톤이다. 그것을 사랑한다. 더불어 뜨겁게 타오르다 식은 목탄 같은 검은 눈동자도, 곧게 뻗은 코 밑 반듯한 입술도, 그리고 아아, 가는 선을 타고 밑으로 뻗은 저 목덜미. 저 흰 목덜미를 입은 검은 셔츠를 찢어버리고 싶다. 아니, 끝까지 채운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리고 싶다. 모르는 새 손바닥이 오므렸다 펴졌다 했다. 노트르담의 꼽추가 사실 성 불구자라 했나? 그것은 그 가련한 자가 로빈 데이아나와는 동시대 같은 곳에 태어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핏기없는 뺨을 마음껏 농락해 달아오르게 하고 싶다. 혀로 핥고, 물고, 빨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다. 저 뺨은 그리해도 더럽지 않다. 저것은 아마 타인의 손길 하나 허락치 않는
처
녀
성
일 테니까.
"...뭐해?"
로빈 데이아나가 읽고 있던 책을 덮는다. 수상 쩍은 눈길로 내게 다가온다.
"그냥 좀, 손목이 아파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콧등을 찡그리며 웃는다.
"그럼 내일 마저 그리자. 나 이젠 집에 가 봐야 해."
나는 알았다고 화구를 정신없이 챙긴다. 로빈의 손에 들린 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성 경'
야속하리만치 손때가 가득히도 묻어있다.
"안녕, 내일 보자."
로빈이 가볍게 내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화방을 빠져나간다. 차가운 손이 닿였던 자리가 발그레졌다.
훗날 혹시나 신을 만난다면 사죄하겠다. 그 동안 그대의 자녀를 상대로 무수히 많은 자위를 했다고. 그러나 전지전능한 당신은 어째서, 날 벌주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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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셔츠를 상대할 바엔 알몸이 낫겠다고, 아랫도리가 우겨대는 통에 과감히 목 아래를 희게 이어나갔다. 붓 끝이 닿는 자리마다 수도 없이 상상해왔던 붉은 가슴이나, 잘록한 허리가 연성되었다. 완성된 그림은 로빈에게 선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것을 로빈에게 내밀자, 뜻 밖에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누드화네?"
순수하기도 하여라, 나의 님펫. 그저 그려진 자신의 성기가 웃기다는 듯 해맑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다만 뒤편에서 벌거벗은 채 매달린 예수께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황급히 성당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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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집에 가고 있는데, 문득 모레 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와 그 준비물이 생각났다. 아마 성당에 두고 온 듯 했다. 로빈에게 전화할까 싶었지만, 성당에선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로빈이라 전화를 안 받을 것 같았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다시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가 없는 시간이지만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확 문을 열어제끼려는 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어린 고양이가 내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나는 문을 살짝 열고 그 틈으로 눈길을 향했고,
"흐으...으..."
주 앞에 무너진 하얀 육체를 보게 되었다. 로빈 데이아나는 존경해 마지 않는 신부님이 늘 예배를 드리는 그 자리 위에 엎드려서, 내 그림을 무릎 밑에 두고 신성한 처녀지를 제 손으로 강간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신의 자녀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로빈 데이아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 나의 님펫은 그 동안 우리의 원죄를 홀로 감당하고 있었나. 진심어린 탄복이었다.
잠시 후 굳은 결심을 한 나는 그 굳은 문을 당겨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