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침부터 아려오는 아랫배 탓에 겨우 화장실로 향한 나는 바지를 내리자마자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지와 속옷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란 엄마는 화장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 내어 운 것이 그 이유였다. 딸의 초경을 반겨주는 부모 따위는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내게 부모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었을까. 그 날, 나는 팬티를 세 겹이나 껴입고 학교에 갔다.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줄줄 새는 피 탓에 양호실에 끌려갔지만 그래도 나는 세 겹의 팬티가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그 때 양호선생님은 내게 여자가 된 걸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젠 아기도 낳을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아기, 아기……. 나는 다짐했다. 아기 같은 건 절대로 낳지 않으리라고. 나는 부모가 될 자격도 없는 존재라고.
그 못난 사람들도 부모랍시고 나는 내가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애당초 나를 향한 인사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기에 나는 자연스레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피투성이의 엄마와 계단 아래에 고꾸라져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을 때, 내 부모는 생을 마감했다. 내 나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2.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옥상같이 외진 곳은 여전히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굳게 닫힌 문은 내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녹슨 똑딱 핀을 꺼내 문고리를 후벼 판 후에야 열렸다. 문을 닫자마자 나는 그 앞에 그대로 주저앉아 뺨을 어루만졌다. 나쁜 년. 손톱이라도 좀 깎지……. 긴 손톱 탓에 생채기가 난 뺨에서는 피가 묻어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흩날리는 머리칼 탓에 시야가 점점 더 좁아져가고 있었다. 아프다, 머리카락이 닿은 뺨도, 마음도. 모든 것이 아파 죽을 것만 같다.
“왕따야?”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 옆쪽 벽에 기대있구나, 싶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왕따야? 하고 묻다니. 사실이긴 하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남자는 옥상 바닥에 대충 담배를 대충 던지고는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대답 왜 안하냐고 물어보려고 왔는데, 다쳤네.”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생채기가 난 뺨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남자. 그의 오른쪽 가슴에는 ‘박찬열’ 이라고 쓰인 명찰이 달려 있었다. 남자- 아니, 그러니까 박찬열은 자신의 손목에 붙은 밴드를 떼더니 내 뺨에 붙였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움찔했지만 한 손으로 내가 뒤로 피하지 않도록 등을 받친 박찬열 탓에 나는 그대로 몸을 굳혀야 했다.
“미안. 밴드가 이거 하나라서.”
“……이런 거, 안 해줘도……”
“알아. 안 해줘도 되는 거.”
“…….”
“거절은 호의를 베풀기 전에 했어야지.”
그렇게 박찬열은 옥상을 나갔다. 채 꺼지지 않은 담배 불씨가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분명히 방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따뜻하다.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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