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김민석 - 너에게
(오류 나네요.. 복구할게요ㅠㅠ 어쨌든 이 곡 추천드립니다!)
<남사친의 클리셰>
001. 참 좋은 친구
이진혁을 처음 본 건, 햇수로 따지면 8년 전 쯤. 내가, 아니 우리가 다니던 중학교 앞 문방구였다. 정확히 말하면 문방구 앞에 있던 철권 오락기 앞.
당시 나는 철권으로는 가히 우리 동네 간판을 맡고 있었다. 웬만한 남자애들도 다 이겨먹을 정도로 철권 잘하기로는 동네에서 유명했단 이야기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나보다 철권 잘하는 애들은 본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동네 번화가에 있던 큰 오락실에서 서른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저씨한테 한 번 지긴 했지만, 어쨌든 내 또래 중에서는 내가 제일 잘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사건이 발생했다.
"오오오!! 야!!! 전학생이 윤미주 이겼어!!!!"
서울에서 전학왔다던 전학생 한 놈이 세기의 빅매치에서 나를 이겨버린 것이다.
전학생은 뉴페이스고, 나는 이 동네 철권의 고인물이었기 때문에 당시 문방구에는 나한테 참패를 겪은 남자애들이 죄다 그 빅매치를 보겠다고 몰려 있었다.
여유롭게 츄파춥스 딸기 맛을 물며 게임에 집중하던 전학생, 그러니까 이진혁은 첫 판부터 내 주캐릭터를 처참하게 뽀개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판까지 완전히 제 페이스에 말리게 만들어 보란듯이 나를 이기고 말았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름 철권으로 동네 짱을 먹었다는 것에 프라이드가 대단하던 나는 신경질을 내며 그 자리를 박차고 바로 학원으로 간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냐는 학원 선생님의 말에 차마 '전학생한테 철권 졌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 야 이젠 좀 져줄 때도 되지 않았냐?"
"져주는 거 싫어하잖아, 너. 승부는 정정당당하게."
그랬던 이진혁과 무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고 있을 줄이야.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며, 그럼에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나는 녀석에게 꾸준히 철권을 졌다. 물론 이긴 적도 몇 번 있긴 하다. 손에 꼽히지만. 이진혁이 왜 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실력 탓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렇게 동네에서 나를 제패한 이진혁은 나아가 동네 오락실에서도 짱을 먹었고, 더 나아가서는 더 큰 오락실에서도 어른들을 이겨버렸다.
쟤는 밥 먹고 철권만 하나.. 싶기도 했는데, 알수록 그건 아니었다. 전학 온 뒤 처음 본 기말고사에서 단번에 전교권에 들어 선생님들의 주목을 끌었으니까.
어린 마음에 그마저도 질투가 나서, 나는 녀석을 별로 안 좋아했다. 오히려 꾸준히 따라다닌 건 녀석 쪽이었다.
"한 판 더 할래?"
"싫어."
"왜. 딱 한 판만 더 하자."
"내가 너 이기려고 탕진한 돈이 한두 푼이냐. 됐어. 날도 더운데 맥주나 마시러 가."
아쉬운듯 입을 삐죽이는 이진혁이다. 개구지게 생긴 얼굴에도 이제는 좀 시간이 흐른 티가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온 시간이 짧지는 않으니까. 아마 녀석이 보는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앞장서서 걷고, 이진혁은 뒤를 따라왔다. 키가 한참 큰데 다리도 길어서 휘적휘적 조금만 걸어도 나를 금방 따라잡을 걸 안다.
중학교 땐 나랑 키가 비슷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를 내려다 본다. 한때는 그것도 좀 자존심 상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키 좀 컸다고 오빠인 체 하는 게 재수 없었기 때문이다.
"맥스로 주세요. 생맥이요."
"저도요."
생맥주로 맥스 500cc를 시키고 나서야 자리에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너무 자주 와서 한동안 안 오면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동네 술집이었다.
아아... 빨리 종강했으면. 앓는 소리를 내는 나를 이진혁은 빤히 쳐다봤다.
요 근래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이진혁은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았는데, 나름 복학생이라며 다가오는 무게감이 꽤 큰 것 같았다.
하기사, 돌아오면 곧 3학년이고 안 그래도 빡셌던 전공은 더 빡세지기 시작하니까.
2학년 마치고 1년 쉰 게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나는 이진혁을 위로한답시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1학기 마치고 가서 다행이야, 넌. 거 뭐냐, 누구냐, 걔. 1학기 다니다 중간에 간 애. 그런 애들은 더 힘들지."
"학교보다는 뭐.. 취준이나 그런 것도 좀 고민이고. 그냥, 생각해서 답 안 나오는 고민들 있잖아. 그런 거."
이진혁이 수시로 철썩 붙은 우리 학교, 우리 과에 나는 추합 2차로 거의 문 닫고 들어갔다. 중, 고등학교를 하도 붙어 다녀서 대학 때에는 좀 떨어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1학년 내내 동기들 틈에 섞여 같이 다니고(절대 둘만 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끔찍이 여긴 편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면서 이진혁은 군대에 갔다.
중간에 내가 1년을 쉬었더니 복학한 이진혁과 또 타이밍이 맞아 다음 학기부터는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마 이진혁한테는 확실히 다행이지 않을까.
우울해진 이진혁 때문에 분위기가 쳐지려는 찰나에 주문한 맥주가 나왔다. 나와 이진혁은 짠, 소리를 내며 맥주잔을 부딪혔고, 그렇게 한 모금 머금은 맥주는 곧바로 크으, 소리를 이끌어냈다.
아, 시원하다. 했더니 이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본안주인 강냉이를 물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너 그럼 알바는? 구하려고?"
"응. 돈 벌어야지. 근데 요즘 구하기 어렵더라. 자리가 없어."
"그렇더라. 그래도 기말 끝나면 애들 다 구하려고 하니까 지금 딱 구해야 될 걸. 일단 뭐라도 있으면 면접 함 가봐."
"그래야지. 호텔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재밌을 것 같던데."
"나는 그런 데는 안 해봤는데, 거기 다니면 십중팔구 연애한다더라. 너 여친 생길지도."
그러냐. 하며 이진혁은 웃었다. 뭐... 굳이 말하자면 지내온 세월이 세월인 만큼 누가 서로를 지나쳐 갔는지 정도는 다 꿰고 있었다.
이진혁은 새내기 때 사귄 여친과 입대 전에 헤어졌고, 나는 짧게 두세 명 정도 만났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이래저래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진혁은 학교 회장이었던 데다 인기가 많았으니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렇고 그런 엮임이 많았고, 나는 꾸준히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든, 대학에 와서든, 사람들은 우리 둘에게 너네 둘은 왜 안 사귀냐며 물어왔지만 나는 애초에 이진혁과 그런 관계가 되리라는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곤 했다.
딱히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냥... 그랬다. 너와 나는 친구니까. 그게 우리를 규정하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맥주를 마시며 한 두 시간 정도를 이렇게 저렇게 소재를 바꾸어가며 실컷 떠들었다. 나도 그렇고, 녀석도 말이 없는 편은 아니라 일단 떠들기 시작하면 두 시간은 기본이었다.
있다 보니 진혁이네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에 할머니댁 가기로 했다며, 들어와서 짐 좀 챙기고 아빠 차에 기름 좀 넣어달라고 하셨다.
진혁이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고, 슬슬 들어가 봐야겠다며 자리를 정리했다. 원래 우리 집과 이진혁네 집은 거의 붙어 있었는데, 진혁이가 군대를 가면서 진혁이네 부모님이 이사를 가셔서 지금은 걸어서 한 15분 정도 차이가 났다.
"데려다 줄게."
"됐어. 친구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늦어서 그래. 열한시 넘었잖아."
"여기서 몇 년을 살았는데. 안 위험한 건 내가 알아."
"야. 그러다 너 무슨 일 생기면 너네 엄마한테 내가 혼나."
"...그건 맞긴 한데. 아 몰라. 난 괜찮다고 말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제대하고 나서는 만날 때마다 이진혁이 나를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멀기도 멀고, 만날 때마다 늦은 시간에 만나게 되어서 그랬다.
곰실거리게 누가 누굴 데려다 주는 것 자체가 좀 별로였는데, 이진혁은 우리 엄마를 이야기하며 내가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알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거리를 걸었다. 이제는 사뭇 공기에 여름 냄새가 섞여 여름밤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슬슬 기말고사 공부는 해야 하는데, 여름밤 공기를 느끼니 기말고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만 싶었다.
이진혁은 차도 옆에 붙어 걸었다.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교복 입고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 와서 보니 녀석의 좋은 습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댁 가서 언제 와? 이제 아롱이 데려오는 거야?"
"어.. 엄마가 이제 데려와도 된대. 한 3일 있겠다."
"아롱이 오면 보여줘. 산책 시켜줄 테니까."
"당연하지. 여름에 더워서 힘드니까 내가 아아 사줄게. 너가 좀 시켜."
"야씨..."
하하하, 이진혁은 소리내어 호탕하게 웃었다. 아롱이는 이진혁이 중학교 다닐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였다.
이진혁이 군대 가 있는 시기에 부모님도 자리를 비우시는 시간이 많아서 아예 할머니댁에 맡겨두었다가, 이진혁도 돌아오고 했으니 집에 다시 데려올 모양이었다.
아롱이 이야기를 좀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에 다다랐다. 3일 못 보는 거면 다음주쯤 봐야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롱이 사진 보내. 했더니 이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라. 손을 흔드는 이진혁을 향해 나도 손을 흔들었다. 어. 조심히 가.
심심할 때 불러내어 오락실에 가고,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동네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내게 있어 이진혁이 참 좋은 친구라는 확신도 들었다. 너한테도 그럴까. 아마도 맞겠지. 하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남사친의 클리셰>
001. 참 좋은 친구. Fin.
이진혁 데뷔해!!!!!! |
이진혁 데뷔해!!!!!!!!!!!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 먼저 티오피미디어 이진혁 연습생 사랑합니다.♡ 프듀 보면서 항상 아... 증맬루 남사친적이야... 하면서 끙끙 앓았고, 그러다 익예에 문방구에서 초딩들이랑 게임하는 어른 이미지에 찰떡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어서 글잡으로 왔어요. 얼마나 자주 올지 정말 장담이 안 되지만.. 꾸준히는 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글 재밌게 보셨다면 이진혁 연습생 투표해주세요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이진혁 데뷔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