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1
방송용 리액션.
[어머~알베르토씨, 너무 미남이세요! 연예인 하셔도 되겠는걸요? ]
방송용 미소.
[하하, 아니에요. 저같은 사람이 연예인하면 우리나라 연예계 주가가 폭락할겁니다. 절대 안되죠. 세영씨야말로 제가 본 여자분들 중 최고로 미인이신데요.]
능글능글 아주 말은 잘해요. 여자들 좋아죽네, 죽어.
북적북적한 집 안, 거실쇼파에 삐딱하니 누워 티비를 보던 에네스는 알베르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린다는 듯 입술을 삐죽대며 화면 속의 그를 씹어댔다.
"시끄러! 다니엘, 괴상한 노래 그만 부르고 방에들어가! 할머니도 들어가서 주무시고요.어떻게 이놈의 집구석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어."
에네스를 포함한 8명의 대가족. 에네스의 다섯 동생과 어머니,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까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에네스의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할머니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었으며, 그의 어린 동생들은 철딱서니없고 막무가내였다. 이것을 보면 에네스가 일을 시작한 후부터 10년간 편두통을 앓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네~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오늘 나와주신 알베르토씨에게 박수한번 주실까요?]
힘찬 박수소리와 함성소리. 와아아!
"우우우!"
[지금까지 피아트 재단법인의 차기 이사장이시자 대세 사업가이신 알베르토 몬디씨였습니다. 감사합..]
띡. 에네스는 예의 그 삐죽거리는 표정으로 티비를 끈 후 리모콘을 쇼파 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작업실로 내려갔다. 작업실이라 해봤자 일층의 쓸모없는 창고를 개조한 것이었지만. 몇 달 후에 있을 자신의 새로운 전시회를 위해 캔버스 앞에 앉은 그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근 며칠간의 일을 회상했다. 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 '알베르토 몬디'.
에네스가 31년 인생을 살면서 신조로 삼은 것이 3가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근에 신조로 삼은 것.)
첫 번째, 부모님의 능력 또는 재력으로 용이 된 사람들을 재수없게 여길 것.
"에네스, 축하해. 그동안 묵혀두었던 작품들을 드디어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됐네. 잘 보고간다."
"에네스, 축하해요."
"에네스씨, 축하드립니다."
이리저리 인사를 받으며 분주한 에네스에게 기자들 몇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다.
"에네스씨! 이쪽 한번만 봐주시죠. 지금 소감이 어떻습니까?"
"네, 뭐. 얼떨떨 하기도 하고. 어쨌든 기분 좋네요. 오랫동안 바라오던 제 꿈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신 피아트 재단법인 이사장님 로바토 몬디 씨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바로 그 때, 기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180은 훌쩍 넘어보이는 큰 키와 남자다운 근골격, 강렬한 인상을 가진 훤칠한 얼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된 세련된 분위기까지.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같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와우.."
걸어오는 그를 보고 에네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에네스의 옆에 서있던 그의 동생 , 둘째 줄리안이 에네스의 귀에 대고 그 남자에 대한 정보를 읊었다.
"에네스, 저 사람이 바로 형을 후원해주겠다고 한 로바토 몬디 씨의 아들, 알베르토 몬디 씨야. 피아트 주식의 35퍼센트를 소유한 대주주에다가, 현재는 피아트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경영수업도 받고있다지 아마? 그리고 또 로바토 몬디 씨가 사후에 아들에게 재단법인을 증여한다는 유언장을 썼다는 소문이 파다해. 뭐 거의 기정사실화 됐다고 보면 돼. 그럼 재단법인 이사장에, 대주주에, 피아트 회장에, 거기다 연예인 비주얼까지. 와.."
줄리안의 말을 들은 에네스는 열등감인지 질투인지, 알 수 없는 짜증스러움이 솟구쳐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그런 인간들 딱! 재수없어. 부모 잘 만나서 인생 핀 인간들. 뭐 잘생기긴 했네."
그 순간 그들 가까이로 걸어오던 알베르토가 에네스를 쳐다보았다.
"..엇."
그는 몹시 당황한 에네스의 앞으로 걸어오며 계속 에네스와 눈을 맞췄다. 들은거 아냐? 왜쳐다보지? 인사를 해야하나? 고민하던 에네스가 자신의 가까이로 온 알베르토에게 살짝 목례를 했지만 알베르토는 에네스를 쳐다보던 시선을 단칼에 거두고 그대로 휭하니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두 번째, 그렇게 얻은 자신의 능력과 지위를 맹신하며 오만하게 구는 사람들을 재수없게 여길 것.
"에네스, 그래도 인사는 해야하지 않아? 후원해주시는 분 아들인데. 그리고 나중에 후원 끊기지 않으려면 잘보여야될걸."
"후, 나도알아. 좀 조용히해봐."
골치 아프게 됐잖아. 아오. 에네스는 까짓거, 라는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그림들이 걸린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있는거야?'
에네스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알베르토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정사각형의 구조로 되어있는 갤러리의 중간에는 직사각형의 큰 기둥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맞닿아 있었는데, 에네스는 혹시 알베르토가 그 기둥 너머에 있을까 싶어서 코너를 돌아 그 뒤로 가려고 했다. 기둥을 돌아 가려는 찰나, 에네스는 기둥 뒤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기둥의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알베르토. 가만히 있지만 말고 그림좀 감상해봐. 보니까 꽤 괜찮아."
"오기 싫은거 억지로 온 거 알면서 그래? 그림같은거 취미도 없고."
"이번 기회에 관심좀 가져봐. 앞으로 너도 이런 일 해야되잖아. 경험 쌓는 셈 치고."
"글쎄. 그러기엔 내 눈을 끄는 그림들이 너무 없는데. 지루한 것만 모아놓은 갤러리인가."
'...뭐?'
셋째, 게이와는 상종도 하지 말 것.
"아, 힘들어."
집으로 돌아온 에네스와 줄리안은 거실 쇼파에 몸을 뉘었다.
"에네스, 맥주마실래?"
"야."
"아~미안미안. 에네스 술 안마시지."
저게 진짜.
에네스는 쇼파에 비스듬히 누운 상태에서 배에 올려놓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머뭇거리던 손가락이 천천히 검색창에 누군가의 이름을 써넣는다.
'알베르토 몬디.'
별 것 아닌 기사들. 대부분 알베르토의 상속, 피아트의 후계자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재수없는 자식. 지가 그렇게 대단해?'
무미건조하게 스크롤을 내리던 에네스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다시 위로 스크롤을 올려 한 기사의 제목을 찾았다.
[상속 재벌남 '알베르토 몬디', 알고보니 동성애자?]
"뭐어어어?!"
"왜왜왜!무슨일이야 에네스!"
에네스가 소리를 지르자 줄리안이 재빨리 거실로 달려왔다. 한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탁! 에네스는 자신이 그를 검색해보고 있다는 것을 줄리안이 알게 된다면 왠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재빨리 노트북을 닫았다.
"아무 것도 아냐."
"뭐야! 에네스 수상해~"
..설마. 알베르토 몬디, 너 게이?
원래 고전으로 쓰고싶었지만 너무 원작이랑 비슷해질것같아서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