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소설은 White Christmas 님의 소설을 리메이크 한것입니다.
※ BGM 관련 문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일년에 다섯남자
파릇파릇한 12학번.
자랑스럽지 아니 할 수 없다.
내가 드디어! 후줄근한 고삼을 벗어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학생이 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캠퍼스 생활, 각종 동아리, MT……, 그리고 제일 중요한 CC까지. 설레이는 스무살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무지 설레었는데.
그렇게 설레이던 대학생활은.
-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들어간다 들어간다
- 쭈욱~ 쭉 쭉 쭉
첫날부터 술독에 빠져야했다.
신입생 환영회라고 해서 뭣도 모르고 즐겁게 왔는데 눈앞엔 세숫대야를 연상시키는 그릇이 놓여져 있었다.
사발식이라니 뭐라니 마시라고 내게 건내줄때는 정말 선배고 뭐고 멱살을 잡을뻔했다.
술이라 하면 마셔보지 않은것도 아니였다.
졸업식은 당연하며 고등학교 들어서면서 부터 시험이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과 간혹 심심찮게 마셨으니.
그런데 소주 자체는 아직 내게 많이 버겁다. 특유의 알싸한 맛도 싫고, 알콜 향도 싫어서 음료를 타먹거나 과일주를 마시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소주를 세숫대야, 아니 사발채로?
것도 도수가 높은 화x트? 차라리 죽어라고 하지 그랬어요?
손에 들린 소주에 머뭇거리기도 잠시, 나는 결국 눈을 꼭 감고 잔에 찰랑이던 소주를 모두 비웠다.
첫날부터 선배들에게 밉보일 순 없지 않은가? 그도 그럴것이 내가 여기서 내빼기라도 하면, 후의 분위기를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헌데 역시나 주량 초과였을까……, 속이 뜨거운게 곧장 정신이 아롱거린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다간 선배들에게 주사라도 부릴것같아 휘청이며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누가보면 취권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나 지금, 장난 아니에 스탭 밟고있다.
“얼씨구, 아주 제대로 갔네.”
“……에? 네에?”
“술 취했으면 곱게 앉아있지. 뭐하러 취객처럼 휘적이고 다니냐? 어쩐지 아까 너무 무리한다고 했어.”
“흠……, 누구세요?”
“니 선배다.”
“……아, 선배구나아. 아……, ……아? 네? ”
“아까 졸고있었어? 4학년 김준면이야.”
“ㅁ,맞다! 선배 안녕하세……, 끄악!”
반말 안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허겁지겁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다 그대로 앞으로고꾸라져 버렸다.
“괜찮냐?”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정수리로 내려앉는 선배의 한심스런 목소리에 얼른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아이코, 아퍼어. 하며.
그러자 선배의 표정은 그 옛날의 내 성적표 만치 구겨져있었다.
“근데 선배는 왜 나오신 거에여어…….”
“그렇게 춤을 추면서 나가는데, 뭔 일 낼것같길래. 근데 너 진짜 괜찮은거 맞아? 이마에서 피나는데”
“아……, 괜찮ㅅ……, 네?! 피요?!”
“……어. 정신 사납게 하지말고 이마 대봐. 내가 정말, 이 반창고만은 아무한테도 안주는건데”
“……네에?”
알수없는 말을 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키티 얼굴이 요란하게 박힌 반창고였다.
무슨 남자 취향이 저렇냐. 혹시 변태?
어느새 길 모퉁이에 나를 앉히고는 허리를 숙여 내 이마에 반창고를 붙혀주는데 이제보니 이 선배 되게 말랐다. 여자 몸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잠깐을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었더니 이제 다 됐다며 내 이마를 아프지 않게 툭 때려버린다.
아프지는 않은데 기분이 나빠서 술 취한 와중에도 미간을 잔뜩 구겼다.
“왜 때려요? 선배다 대수야아?!”
“아. 말버릇 봐. 대수다, 어쩔래”
“다른 건 없고 고맙다구요!! 고마워요!!”
“참……. 이렇게 까부는 신입생은 또 처음보네”
“나 집 들어가고 싶……, 우욱!”
아까부터 속이 뜨거운게 괴롭더니 결국 토를 쏟았다. 불행중 다행인건 다행이 김준면 선배의 발치에.
옷이나 얼굴에 뱉었으면 내 대학 생활 얄짤 없을 뻔 했다.
“죄, 죄송ㅎ……, 욱!”
“허이고, 가지가지 해. 가지가지, 어?”
허탈한 웃음을 뱉으며 내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나, 대학 생활이 그렇게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 같은 과 졸업반 선배 김준면(24)
집에 어떻게 돌아온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지 꽐라가 됐었다는 것.
자취를 해서 망정이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으면 등짝이 남아나질 않았을 거라는 것?
그러니까 그 선배가 끝까지 나를 챙겨주고 그랬던 건 기억이 듬성 듬성 나는데……, 집엔 어떻게 들어왔더라?
아냐, 뭐 분명 그 선배가 데려다 줬겠지.
“욱!”
넋을 놓고 천장만 보며 누워있다 다시 구역질을 했다. 속이 아프다, 갈증도 나고. 주말이라서 되게 다행이다.
물을 마시고 씻고 다시 한참동안 누워있다가 복도에서 크게 울리는 소음에 눈을 떴다. 아니, 소음이라기 보단 굉음에 가깝겠다.
쾅! 하며 현관문 닫히는 소리. 여전하다, 앞 집 사람은. 입학하기 한달 전부터 자취를 했는데 처음 이사를 오고부터 줄곧 저 소리가 거슬렸다.
살짝 닫으면 될 것을 현관문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건물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닫는단 말인가. 자다가도 저 소리면 전쟁났나 싶어 눈이 번뜩 뜨인다.
이제 집에 들어온 듯 한데……, 오늘은 정말로 한마디 해야겠다.
숙취 덕에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터라 오늘은 도무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 앞집남자 박찬열(22)
“무슨 일이세요?”
대충 손에 잡히는 외투를 걸치고 나와 노크를 두세번 하니 망설임없이 문이 열린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께. 오늘 처음 본 남자는 키가 무지하게 컸다. 아니. 내가 작은건가?
서울에는 키 큰 놈이 많구나. 새삼 씁쓸해지는걸 깨닫기도 잠시 얼른 그를 올려다 보며 쏘아 붙혔다.
“저기요, 현관문 좀 살살 닫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시끄러워서 자다가도 깜짝 놀라잖아요.”
“에? 그래요? 전 못 느끼겠던데.”
“……고막에 문제 있으신거 아니에요?”
“그런가, 아무튼 죄송하게 됐어요. 거슬린다니……, 몰랐네. 최대한 신경 써볼게요.”
“네, 그럼 신경 써주세요. 부탁 드릴……, 욱!”
……미쳤다, 미쳤어!!! 도경수 니가 드디어 일을 치는구나. 나름대로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왜 하필 거기서 오바이트가 쏠려가지고.
원치않게 남자의 집 앞에 토사물을 잉태해버렸다. 좆됐다. 천천히 그를 올려보자니 역시나 표정이 장난없다.
“……아무리 거슬린다 하셔도 이렇게 복수를.”
“아니에요!! 그런게 아니라! 어제 너무 과하게 마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느새 갑과 을이 바뀌어 버렸다. 그냥 오늘만큼은 집에 조용히 박혀있을걸 그랬나보다.
시도때도 없이 토가 올라오는데, 이걸 어쩌리…….
“얼굴이 곧 토하실 얼굴이시긴 했는데, 알아챘으면서 얼른 집에 돌려보내지 않은 제가 잘못이죠.”
“그런게 아ㄴ……, 아니 근데 곧 토할 얼굴은 뭐……, 하!! 제가 치울게요! 치울테니까 상관 안쓰셔도 되요!”
그새 표정을 굳히며 침울하게 말하는데 그게 또 괜스레 미안해져서 얼른 손사레를 쳤다.
그러니 갑자기 쿡쿡 거리며 웃더니 곧 이어 웃음을 터뜨려 버리는 남자다.
“뭐가 그렇게 심각하세요, 웃겨죽겠네. 괜찮아요. 장난 한번 쳐본거에요”
“자,장난요……?”
“네, 근데 저건…….”
“ㅈ, 제가 치울테니까 제발 들어가계세요. 그게 매넙니다.”
“아! 고마워요.”
고맙긴 또 뭐가 고맙다는거지.
밝게 말하면서 은근하게 사람을 까는 재주가 있다. 게다가 이런 것 가지고 장난을 쳐?
분명 우린 오늘 처음 마주친 사인데, 이런 짖꿎은 장난이 가당키나 할까? 아오 초면에 되게 심했다. 생긴 건 멀쩡한데 사람 정신이 조금 아픈것같다.
그나저나, 저 토사물을 언제 다 치우지…….
***
# 까칠한 배우님 김종인
“안색이 되게 안좋아 보이네. 그냥 오늘 접고 집에가서 쉴래?”
“아니! 아니야, 할 수 있어.”
온종일 집구석에서 골골대다가 알바 자리가 하나 비었다는 친구의 연락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알바 자리가 그리 궁한 것도 아니고, 돈이 그렇게 궁한 것도 아닌데 왜 구지 나섰냐 하면…….
“보조, 커피 좀.”
그냥 일도 아니고 촬영장 보조 일이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는 어렸을때 지방 공연 왔었던 이름도 모르는 트로트 가수밖에 본적없었던 나에겐 상당히 흥미로운 자리였다.
보조라 하면 정해진 일은 딱히 없다. 정해진 일은 없기로서니 할일은 무지하게 많다.
촬영장에 있는 잡다한 일이란 일은 보조가 다 맡으니까. 고급스럽게 승화시켜 보자면 스탭이라고들 부르더라.
“어이 안들려?”
“네?”
“몇번을 말해, 커피 좀 갖다 달라니까”
- 경수씨 정신 똑바로 안챙기고 뭐하는거야?
…… 근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일화가 조금은 맞나보다. 싸가지가, 아니 싹수가, 아니 성격이 까칠하다.
무심한 듯 툭 쏘아붙이는 말투에 옆에 있던 매니저도 거든다.
……연예인이니까 이정도에서 참는거다. 연예인이면 됐잖아, 촬영현장 보는것만으로도 되는거야. 그럼!! 되고 말고.
“장난해? 이게 뭐냐.”
“네? 커피…….”
“하, 짜증나게. 누가 이딴 걸 마신데? 카페 커피를 사오라고, 카페 커피를”
“카…카페 커피. 네에…….”
하기사. 연예인한테 믹스 커피는 좀 아니였지? 내가 잘못 한거일거야…….
속도 쓰린데 괜스레 화까지 나려고 하길래 꾹 삭히며 카페로 향했다. 이쯤되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TV와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로 만족할것을 그랬다. 환상이……, 내 환상이!! 부서지고 있다!!
“뭐야 시럽이 왜 이렇게 많아? 카페에 있는 시럽 다 넣어왔냐? 나 단거 무지 싫어하는데.”
“……바꿔올까요?”
“응.”
환상이 부서졌다!
그 후로 카페에 서너번 쯤 오고 가서야 김종인에게 커피를 건내줄 수 있었다. 물론 그것 조차 투덜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한달은 꾸준히 나오라고 하던데, 한달은 무슨 하루도 못버티겠다. 방송일 하는 사람들이 기가 쎄다고 하더니 정말 기에 눌려서 어깨조차 못 필 정도다.
그냥 내일부터 잠수타고 학교나 잘 다녀야지.
- 경수씨! 소품상자 좀 갖다 줘!
“……네!”
쉴 겨를도 없고. 안나와도 될 것을 구지 나온다고 했다.
숙취 해소도 제대로 못했는데, 하아! 눈물 쏟을 지경이다.
“열심히네.”
“네?”
아이고야, 심장 멎을 뻔 했다. 소품차에 들어서려던 와중에 소품차 뒷편에 있던 김종인과 마주쳤다.
담배를 푸려고 나왔던 것인지 주위엔 아직도 담배 연기가 뭉긋뭉긋 피어있었다.
순간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고 깜짝 놀라 굳어서 그를 건너다 보기만 하다가, 주위에 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얼른 답했다.
“……네! 여, 열심해 해야죠”
“뻥치고 앉았네. 내일부터 때려쳐야지. 하는 표정인데”
“무, 무슨요!”
귀신이네. 그런 표정도 보인단 말이야?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내려다 보는데 그 모습에 또 약간 소름이 끼쳐온다.
“그러지말고 꾸준히 나와.”
“가, 갑자기왜 그러시는데요?”
“내 팬이라며. 니가 원하는 팬서비스 지겹도록 해줄게.”
으스대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행동에 헛웃음이 새어나오는걸 꾹 눌러 담았다.
그래도 뭐. 이런것도 나쁘지 않네.
“물론 촬영할때는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서, 이만큼 잘해주진 못하겠지만.”
방금 한 말 취소.
음. 고민이 조금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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