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온앤오프 성찬 엑소
봉블리 전체글ll조회 1629l 1

[성재/민혁] 아레스 (Ares) - 01 | 인스티즈

 

 

 

 

 

[육민] 아레스 (Ares) - 01.

 

 

 

 

Author - 봉블리

 

 

 

 

 ※ 본 팬픽은 센티넬버스 세계관과 네임버스 세계관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기본설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세계관과 다른 부분도 있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

 

 

 

 

 

01.

 

 

 

"에... 자, 오늘은 아레스의 탄생과 쇠퇴.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 입은 영향이다. 어서어서 책들 펴."

 

-"드르륵...드르륵..."-

 

 


 지긋지긋한 역사 시간이었다. 창문을 아무리 활짝 열어 놓아 보아도 산들산들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은 교실에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차들의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빵빵거리며 바람의 빈 자리를 조금은 불쾌하게 채우고 있을 뿐 이었다. 창가쪽에 앉은 아이들은 아무도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눈부시게 바라볼 태양이 없어서 였고, 기분좋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없어서 였으며, 이런 자연경관을 모두 배제하더라도 눈에 띄는 건축물 하나 없는.

이곳이 두더지 소굴의 가장 밑바닥 이라는 레벨6 구역이라서 그랬다. 창밖을 바라보지 않는 아이들은 이 사실이 익숙해져서 전혀 슬프지도 않다는 듯 선생님의 눈을 피해 휴대전화 메세지를 주고 받는다던지, 부족했던 잠을 보충한다던지, 레벨 6구역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아테나'에 가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학업에 몰두한다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모든것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책상위에서 펜만 드르륵, 드르륵. 무의미하게 굴려대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민혁처럼.

 

 


창가 제일 끝자리에 앉은 민혁은 다른 아이들 처럼 반 팔 셔츠를 입지 않고 긴 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 귀로는 창밖으로 시끄럽게 흘러 들어오는 도시의 소음을, 한 귀로는 자꾸만 에...에.... 거리며 짜증스러운 말 습관을 자꾸만 반복하는 역사 선생의 소음같은 목소리를 흘려흘려 들으며 얼굴 아래에 팔을 괸 채로 책상 위에 납작 엎드려있었다. 다 아는 이야기 두 번 듣는것이 짜증스럽다는 듯, 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듯. 민혁은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펜만 책상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차라리 누구처럼 잠이라도 왔으면 좋겠건만, 지랄맞게도 이 고통스러운 역사시간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후우 - 한숨을 푹 내쉰 민혁이 눈길을 힐끗 들어올려 흰 셔츠에 가려진 손목 부근을 바라보았다. 얼핏얼핏 비치는 검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잔뜩 구기고는 다시 자신이 굴리던 펜을 초점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에... 아레스 - AR600은 대한민국이 탄생시킨 최상의 전쟁무기로써,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처럼 사고하는것 까지 가능한 가장 치명적인 무기이다. 에.... 정복 전쟁이 일어난 시기인 2112년에 아테나 연구팀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수호자와 함께 13년동안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한국의 승리로 이끌다가 수호자가 사망한 뒤 36년이 지난 현재까지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에.... 이에 현재 정복 전쟁 사회 체제 속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입지가 낮아지고 있으며...."

 

 


그 놈의 아테나, 아레스, 전쟁.... 늘 같은 소리의 반복이었다. 잔악한 인간들이 추잡스럽게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정의며 의무라고 귀에 박히도록 떠들어 대는것이 세계의 방식이었다. 이제껏 책상에 납작 엎드려 펜만 이리저리 굴리던 민혁이 책상 서랍에서 낡은 MP3를 꺼내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닳고 닳아서 빛이 바랜 MP3를 꺼내들었다는 이야기는, 이젠 흘려서라도 더이상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다 닳아 표시가 없어진 전원버튼을 누르고 누렇게 때가 타버린 흰 색 이어폰을 귀에 꽂자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음악이라고는 아테나 광고가 전광판에 나올 때 흘러나오는 딱딱하고 무거운 음악이 전부인 이곳에서 민혁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있는 음악이었다. 고작 하나. 이 하나의 음악을 민혁은 10년동안 듣고 있었다. 질리지 않았다.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민혁이 할 수 있는 작은 반항이었으니까.

 

 


민혁이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있자, 이 모습을 힐끗 바라 본 창섭이 자신의 노트 귀퉁이에다 끄적끄적 무언가를 적었다. 샤프펜슬의 샤프심이 종이와 맞부딪히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내 다 적었는지 그는 샤프펜슬을 책상에 가만히 내려놓더니 공책을 민혁의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러고는 민혁의 팔을 가볍게 톡.톡.

 

 

 

'매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똑같은 노래 들으면서 자면 안지겹냐?'

 

 

볼펜으로 가지런히 쓰여진 글씨들과는 다르게 샤프펜슬의 글씨는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민혁은 여전히 엎드린채로 필통을 뒤적거려 샤프펜슬을 찾았다. 그러고는 그 비뚤어진 글씨 밑에 자신도 비뚤하게 한 줄 적었다.

 

 

'아테나 광고 듣는 것 만큼 지겹겠냐.'

 


간단간단히 무성의하게 한 줄을 적은 후 민혁 역시 창섭의 팔을 가볍게 톡톡 쳤다. 반 팔 셔츠를 입은 그의 흰 살이 긴 팔을 입은 민혁과는 다르게 서늘했다. 노트 위의 비뚤하고 무성의한 한 줄을 힐끗 바라본 창섭이 그 아래에 또 한 줄.

 

'너 그렇게 계속 수업 안들으면 평생 레벨 6에서 못벗어난다.'


'왜 그렇게 아테나에 집착하는건데.'


'우리 가족 레벨 6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점쟁이가 아테나에 있다잖냐. 아직도 못찾은 내 소울메이트.'

 

 

 

창섭의 마지막 말 까지 모두 읽은 민혁이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창섭에게 공책을 내밀었고, 그걸 받아든 창섭은 지우개로 샤프펜슬 글씨를 모조리 지우더니 다시 펜을 잡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민혁은 엎드려서 가만히 창섭을 바라보았다. 쉬는 시간에는 그렇게 난리를 피워대면서 수업시간만 되면 꽤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는 아테나에 가고싶어 하니, 어쩌면 이중적이다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제 짝의 무표정한 옆 모습만 바라보던 민혁이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펜을 잡은 오른손 손목이 유난히 희게 보였다. 그리고 손목과 유난히 대조되는 검은색 이름이 보였다. 문신처럼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글자는 흰 손목의 가운데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고 '신동근' 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민혁은 한참 동안이나 신동근이라는 이름 석 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너에게 그 글자는 소망이구나. 기분좋은 것이라.... 소울 메이트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나...?

 

한참 혼자만의 이야기를 머리속에서 톡톡 내던지던 민혁이 시선을 옮겨 머리위에 있던 자신의 팔, 정확히 말하자면 손목을 바라보았다. 흰 셔츠 너머로 얼핏얼핏 검은색 자국이 비쳤다.

 

 

소울메이트.

 


민혁이 정의한 소울메이트와 네임의 존재는 딱 한 단어였다. 낙인.
영원히 벗어 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존재의 사실을 인정하기도 싫은 낙인. 시원스레 귓가를 타고 흐르는 선율의 사이로 어느새 듣기싫은 소음이 섞여들었다.

 

 


"에... 이건 사담인데 말이야. 안전지대에 아레스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인간 사이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던 소울메이트가 아레스 같은 전쟁무기에도 가능하다는게 의아하기는 하다만... 에.... 어찌되었든 간에 요즘 감시가 부쩍 심해진 것도 그것 때문이야. 궁지에 몰린 아테나가 상황을 뒤집을 만한 방법은 최종병기의 부활 밖에 없을테니.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전쟁무기 아레스 - AR600의..."

 

 

 

민혁이 MP3를 집어들어 소리를 높였다. 시원스러운 음악은 더 크게 울렸지만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앞으로는 손목을 다친 척 하면서 붕대 같은걸 감고 다녀야겠다. 그러면 내가 노네임드라는 것을 믿어줄지도. 아니, 속아줄지도 모르겠다. 한참 흰 셔츠 뒤로 희미하게 비치는 검은 글자를 바라보던 민혁이 눈을 감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렇다고 소울메이트까지 있는 사람을 전쟁무기라고 취급하는건 심하잖아..."

 

 

창섭은 낮게 들려오는 속삭임에 민혁을 힐끔 돌아보았다. 눈을 감고있는것을 보니 또 자는 모양이었다. 아까 중얼거린 말이 무엇인가는 나중에 물어보아야겠다. 속삭임이 수업을 진행하는 역사선생의 말소리에 묻혀버렸으니 말이다. 창섭이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창섭이 앞을 돌아볼때 쯤, 민혁의 귓가에는 시원한 선율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
.
.
.
.

 

 

 


4교시 역사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마자 창섭은 자는 듯 책상에 납작 엎드려 조용히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민혁에게 해가 중천에 떴어. 일어나 일어나. 하며 민혁의 오른팔을 붙잡고는 사정없이 흔들어 대었다. 이미 수업이 끝났음을 알았던 민혁은 자신의 팔을 부서져라 흔들며 밥먹으러 가자는 창섭의 아우성에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수많은 욕지기들을 애써 깔끔하게 삼켜내고는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병신아, 여기 해가 어디있냐. 그 순간부터 창섭은 징징거리며 민혁을 원망하기에 바빴고, 민혁은 애써 창섭의 호소를 무시해가며 그를 억지로 끌고는 학교 급식실까지 용케도 도착했다. 지금은 민혁, 창섭, 그리고 옆반에서 자고있던 것을 깨워 억지로 끌고온 홍빈까지, 셋이서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홍빈이 자신의 소울메이트인 원식이 오늘 아파서 학교를 오지 못했다며 울상을 짓건 말건, 식판 한 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콩자반을 본 창섭이 반찬이 이게 뭐냐며 투정을 부리건 말건. 젓가락으로 밥을 떠서 열심히 입으로 가져가 넣던 민혁의 귓가에 시끄러운 급식실의 소음을 뚫고 언제 징징거렸냐는듯 사뭇 진지해진 홍빈의 목소리가 꽂혔다.

 

 

"아. 맞다. 너네 택운이 이야기 들었냐?"


"아니. 왜. 그 독종이 아테나라도 들어갔데?"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한다는 듯 분위기를 잡는 홍빈의 모습을 힐끔 바라본 민혁이 식판 귀퉁이에 놓인 콩자반을 집어 입에 넣으며 대수롭지 않다는듯 이야기했다. 택운은 항상 아테나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난 놈이었다. 심장질환을 앓고있는 자신의 소울메이트인 학연이 열악한 환경의 레벨6 구역을 벗어나서 더 나은 의료지원을 받길 원한 택운은 안전지대에서 유일하게 구역을 옮길 수 있는 수단인 아테나에 들어가겠다는 목표 하나로 모든것에 완벽하도록 자신을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아테나에 입사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일은 아닐것 같았다. 아테나 이야기를 빼면 시체인 놈일텐데, 아테나 이야기가 아니면 무엇일까.

 

 

"헐.... 뭐야 이민혁. 돗자리 깔아라."


"진짜? 정택운 진짜 아테나 합격했어?"


"그럴 줄 알았어."

 


민혁에게는 이미 한 번 본 영화를 다시보듯 뻔한 결과였는데, 이 둘에겐 아니였나보다. 홍빈은 자신이 듣고 엄청 놀랐던 소식인데 민혁이 이렇게 담담히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받아들이자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대기 바빴고, 창섭은 택운에게 졌다며, 그 상실감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 진정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민혁은 국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더니 그대로 숟가락을 식판위에 놓아두고 앞자리에 앉은채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있는 둘을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후우... 그래그래. 고등 학생이 아테나는 어떻게 들어갔다는데?"


"놀랍지도 않은 소식이 왜 궁금하실까?"

"야이씨. 아, 놀랍고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좀 알려주겠니 홍빈아."

"그래! 그 정택운 배신자가 어떻게 아테나에 들어간건데?!"

 

 


딱딱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연기였지만 효과가 있었나보다. 비록 홍빈은 민혁의 말을 비아냥 거리기는 했지만, 어느새 배신자로 호칭이 변해버린 택운을 찢어죽일듯이 외쳐대며 창섭도 홍빈의 말에 집중을 하고있으니 말이다. 단순한 홍빈은 이들의 반응을 보고는 만족한 듯 씨익 웃으며 다음말에 귀를 기울이는 창섭에게 말할까 말까하는 유치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제서야 시끄럽던 머리속이 정리된 민혁이 다시 숟가락을 쥐더니 밥 한 술을 떠먹었다.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주위가 진정되니 먹을만은 했다.

 

 

"이번에 법 개정되서 17살 부터 입사시험 볼 수 있다고 한참 떠들어 댔었잖아. 그거 알자마자 바로 지원해서 들어간 것 같던데."

 


아. 몇달 전 한참 중앙 전광판에서 새로 개정된 입사조건을 떠들어대는 바람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을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지상 위의 아테나가 위태로워 아이들까지 데려가려하니 나라가 곧 망할 것 이라며 불안함에 수군거렸다. 그나저나 정택운. 대단하다. 수천대 일을 뚫고 아테나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민혁은 밥알을 씹으며 독종이라 불리면서까지 아테나 입사에 열정적이던 택운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잠시간 했다.

 

 

"대박. 다들 실력이 쟁쟁해서 고등학생 따위가 낄 틈도 없어 보이던데."

"말도마라. 아예 수석으로 들어가셨단다."

"포지션은?"

"SA. (Special Agent / 특수 요원, 특별 수사관)"

 

 


택운이 아테나에, 그것도 가장 힘들다는 포지션 SA에 수석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는 창섭의 떡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고, 이제껏 얌전히 식사를 하던 민혁의 젓가락질마저도 멈추게했다. 수석에 SA일 줄은 몰랐는데. 이번 소식은 예상치 못한 민혁이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토끼눈을 하며 얼어붙자 홍빈은 이것봐. 너도 놀랬잖아. 하며 통쾌하다는 듯 한바탕 웃어보였다. 창섭은 배가 아픈지 밥 맛 다버렸다며 입을 삐죽 내밀고는 손에 들고있던 젓가락을 소리나게 식판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차학연은 살판났지 뭐. 이제 아테나 SA 소울메이트라고 레벨 2구역으로 이사갈거 아니야. 그럼 학연이 아픈것도 많이 고치겠지? 거기는 의료지원도 빵빵할테니까."


"그렇겠지.... 으악! 짜증나!"

 

 

창섭이 테이블을 툭 하고 걷어찼다. 얇은 나무로 만든 볼품없는 테이블이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고, 그로 인해 민혁의 식판에 담겨있던 멀건 국까지 요란스레 이리저리 튀었다. 야이씨! 결국 민혁에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창섭이었고, 홍빈은 대놓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창섭이 민혁에게 머리를 맞다가 힐끗 위로 시선을 옮겼다. 민혁의 흰 셔츠안 가려진 손목부근에 검은색의 문양이 얼핏 비치는 듯도 했다.

 


"아 맞다. 이민혁."


"왜?"

"너 아까 혼자 중얼거린 말이 뭐야?"

"무슨 말?"

"역사시간에 중얼거리면서 잤잖아."

"그러니까 무슨 말."

"아이씨! 몰라!"

 

 

문득 아까 민혁이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 난 창섭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민혁에게 말을 꺼내었다. 그러자 민혁은 창섭의 눈치를 보면서도 애써 태연한척 어색하게 연기를 해대었다. 긴 셔츠에 가려져 있다고 너무 방심한 모양이다. 혼잣말 이라면서 너무 크게 떠들어댄 모양이다. 그 누구도 알아선 안되는데 말이다. 민혁이 긴장감에 진땀을 흘려가면서도 자신이 내뱉은 혼잣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딱 잡아떼자 성질을 버럭 내던 창섭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민혁이 안도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다음부터는 정말 조심하고 다녀야겠다. 아테나의 눈에 띄는 날이면 아마도 이런 소소한 일상들을, 힘들게 지켜 온 소중한 사람들을 다 포기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
.
.
.
.

 

 

 


청소시간. 창섭은 민혁과 함께 분리수거를 하러 학교 뒷뜰 분리 수거장에 나와있었다. 오늘은 뭘 이렇게 많이들 쳐먹었데. 하며 창섭은 음료 캔들을 분리수거 하고 있었고, 뒤따라오던 민혁은 그럴수도 있지 뭐. 하며 종이 쓰레기가 가득 든 마대 자루를 끌고 분리 수거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민혁을 흘끔 바라보다가 다시 음료 캔을 분리수거 하려던 참이었다.댕그랑 하는 음료수 캔들이 맞부딪히는 소리들 틈으로 갑자기 민혁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종이들이 쏟아지는 소리, 쿵 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들었다. 창섭이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을땐, 왼쪽 손목에 분리수거장 바닥에서 깨어진채 아무렇게나 뒹굴던 유리 조각들이 깊숙히 꽂힌 채로 붉은 피를 분수처럼 흘리고 있는 민혁이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감싸쥔채 바닥에 나뒹굴듯 쓰러져 있었다. 선명한 붉은 피가 분리 수거장 바닥은 물론이거니와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흰 종이들 까지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창섭이 다급하게 민혁의 몸을 일으켜 세울 때 쯤에야 그는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떴고, 눈 앞의 광경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깊숙히 찔린 자신의 손목이 아닌,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가 아닌, 팔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 흰 셔츠를 흠뻑 적시는 피. 그 때문에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있는 셔츠 아래에 숨겨진 글자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얼른 자리를 떠야했다. 짜증스러운 민혁의 머릿속은 모른채, 창섭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민혁의 왼손을 부여잡으며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이게 뭔일이래. 괜찮아? 얼마나 다친거야? 보건실에 재생연고 있어?"

 

 

민혁의 손목에 아무렇게나 박힌 더러운 유리조각들과 그로 인해 벌어진 살점들이 창섭의 눈가를 한껏 구겨지게 만들었다. 쉴세없이 흐르는 붉은 피가 민혁의 팔과 바닥을 적시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창섭의 손바닥까지 흥건하게 적시려들었다.
젠장. 심각하잖아.
창섭이 낮게 읊었다. 조심스럽게 쥔 민혁의 왼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워낙 몸이 약한 녀석이라 재생연고라도 빨리 바르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병원하나 없는 레벨 6에서 민혁은 큰일이 날 것이 뻔했다. 적당한 천이라도 찾아서 지혈이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유리조각이 더 깊숙히 박혀버릴까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재생연고가 있는 보건실이라도 가야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창섭은 민혁의 오른손을 왼쪽 손목에서 떼어 자신이 꽉 붙잡고는 민혁을 일으켜 세웠다. 민혁의 몸이 휘청거리며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묵직하게 끌려 올라왔다. 그런 민혁을 걱정스럽게 앞으로 끌려던 찰나에 창섭의 손이 공허해졌다. 창섭이 뒤를 돌아보았을때는 민혁의 손은 이미 창섭의 손을 빠져나와 자신의 왼쪽 손목으로 돌아간지 오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리가 박힌 부분 아래, 이제껏 흐릿하게 숨겨져 있던 글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그 부분을 민혁은 움켜 쥐고 있었다. 마치 들켜서는 안되는 자신만의 비밀을 다급하게 숨기는 사람처럼.

 

 

"건드리지마."

"...뭐?"

"건드리지 말라고. 보건실에서 재생연고 하나만 바르면 되는 것 가지고 호들갑 떨거 없으니까."

 

 

민혁이 뱉어낸 말소리가 꽤나 시렸다. 차갑고 딱딱한 말투 때문인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때문인지, 둘 사이의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창섭은 그런 민혁의 태도에 할 말을 잃은 채 헛웃음만 지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이 다쳐서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호들갑 떨 것 없으니까 건드리지 말라니. 하지만 민혁도 민혁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였다. 창섭이 같이 보건실에 가서 민혁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면, 분명히 자신의 왼쪽 손목에 낙인처럼 찍힌 네임을 볼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제껏 자신은 노네임드라며 사람들을 속여왔건만, 자신의 정체가 고작 유리조각 때문에 탄로 난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민혁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최대한 손목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유리조각이 핏줄을 잘못 건드렸는지 유리가 박힌 것 치고는 아직까지 피가 너무 많이 솟아 올랐다. 왼발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딛자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피를 더 흘리기 전에 빨리 보건실에 가서 치료를 끝낸 다음, 이 보기 싫은 검은 네임위에 붕대라도 감아야 겠다. 그렇게 생각한 민혁은 창섭을 밀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민혁은 자신이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창섭의 눈에 비친 민혁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힘겹게 방향을 찾아 앞으로 가고 있었다. 핏자국이 민혁의 뒤를 이어서 어지럽게 늘어졌다. 창섭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주 조그만 꼬마였을 때 부터 친구였던 자신에게까지 숨기고 싶은 저 왼쪽 손목에는 도대체 누구의 이름이 쓰여있을까. 노네임드라는 말에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는 했지만, 저 손목에 남아 있는 것이 네임이 아니면 무엇일까. 비틀거리면서도 혼자 가겠다는 민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창섭은 바닥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작은 유리조각들과, 어지럽게 흩어진 종이 조각들부터 치웠다. 뒷처리라도 대충 해놓고 따라갈 심산이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던 붉은 피가 흰 종이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비릿한 냄새가 올라와 이마에 저절로 주름이졌다. 창섭의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팔랑거리는 종이들이 플라스틱 상자안으로 다 정리가 되고 나서야 창섭은 민혁이 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민혁이 이쪽으로 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붉은 핏자국만 길게 남아있을 뿐, 민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쓰읍...하....!"

 

 


고통스럽고 짧은 신음 소리가 조용한 1층 복도를 가득 울렸다.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왼쪽 손목이 점점 더 쓰라려왔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보건실 문 앞까지 겨우겨우 다다른 민혁을 반기기라도 하는 듯 보건실 유리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보건실 안으로 민혁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 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울렸고, 투둑- 투둑- 하는 피가 떨어지는 소리도 동시에 울렸다. 보건실 문은 민혁이 발걸음을 옮기자 소리 없이 닫혔다. 민혁은 그제서야 왼쪽 손목에 껌처럼 붙어 있던 오른손을 떼내고는 주위를 살폈다. 보건 선생이 퇴근한 시간이었고,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있는 학생도 없는 것 같았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어지러움에 그가 벽을 짚었다. 흰 보건실 벽에 그의 붉은 피가 낙인처럼 선명하게 찍혔다. 내일 아침 보건 선생이 와서 이 광경을 본다면 펄쩍 뛰며 흰 벽에 피를 칠한 범인을 찾겠지만, 지금 민혁에게는 그런 보건 선생의 반응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약이 잔뜩 들어 있는 선반을 찾아 열었다. 흰 손잡이에 민혁의 피가 잔뜩 묻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반을 열자 제일 먼저 푸른색 통에 가득 담긴 소독약이 보였다. 그 뒤로 재생연고, 화장 솜, 핀셋, 그리고 보건 선생 책상 위에 있던 스테인레스 쟁반까지 찾은 민혁이 제일 가깝게 보이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보건실 문쪽에서 등을 돌린채로 침대위에 걸터앉자 삐걱- 하는 낡은 소리를 내며 침대가 약하게 들썩였다.

 

 


"아...!"

 

 

유리조각과 상처위에 소독약을 붓자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터져나왔다. 소독약이 들어간 자리는 순식간에 거품이 일었다. 뚝뚝 흐르는 핏물과 뒤엉켜서 투명한 소독약 방울들이 스테인레스 쟁반에 담겼다. 거품을 어느정도 닦아낸 민혁이 핀셋으로 유리조각들을 뽑아냈다. 작은 유리조각부터, 살점을 긁으며 꽤 길게 뽑혀 나오는 큰 유리조각까지 민혁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유리조각을 뽑아내자 피부 아래의 살점들이 흉하게 벌어진 채로 피를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민혁은 그 광경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여전히 핏물을 흘리고 있는 왼쪽 손목을 힐끗 바라 본 민혁이 재생연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뚜껑을 열자 튜브형인 재생연고의 용기안에 담겨 있던 끈적한 액체들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꾸만 피가 차오르는 왼쪽 손목에 그가 재생연고를 짜넣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피가 멈추더니 흉하게 벌어진 살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점점 아물어가는 상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민혁이 아직도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중에 보건실을 나갈때 철분제라도 하나 챙겨먹고 나가야겠다. 스테인레스 쟁반에 담긴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피와 소독약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민혁이 시선을 옮겨 화장 솜을 집어들었다. 화장 솜에 대충 소독약을 묻힌 후, 민혁은 피로 물든 왼쪽 소매의 끝자락을 조심스레 잡았다.

 

 


"하아...."

 


 
쓰디 쓴 약을 먹기 전에 긴장하는 어린아이처럼 한숨을 깊게 내 쉰 민혁이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왼쪽 소매를 걷었다. 피로 얼룩진 왼쪽 손목에는 흉한 낙인이 검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름치고는 꽤 긴 낙인이었다. 그는 한시라도 더는 그 낙인을 보고 싶지 않은지 소독약을 잔뜩 묻힌 화장솜으로 그 위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닦아내었다. 핏자국은 말끔하게 화장솜으로 닦였지만, 낙인은 아무리 닦아내어도 닦이지 않았다. 팔꿈치 부근까지 핏자국을 닦아내느라 화장 솜 한통을 거의 다 쓴 것 같았다. 민혁은 화장솜과 핏물이 담긴 스테인레스 쟁반을 발 아래로 내려두었다. 그러고는 보건 선생의 책상 서랍 어딘가에 자리 잡고있을 붕대를 찾으러 일어서려했다. 그 때 까지였다. 민혁의 비밀이 온전히 민혁 혼자만의 비밀로 남았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레스....AR....600....?"

 

 

 

민혁의 온 몸이 굳었다. 바로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팔목에 찍힌 낙인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주 어릴 적, 꼬마 시절부터 지금 까지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그 목소리....
민혁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민혁의 뒤에는 그를 바라보며,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왼쪽 손목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창섭이 홀로 서있었다. 

 

 

 

 

 

----------------------------------------------------------------------------------------------------------------------------------------------------------

 

 


더보기

이 팬픽은 다른 곳과 동시 연재 중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구요!!

오타는 애교로!!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귀엽게 봐주세용!!

2화는 완성되는 대로 다시 오겠습니다! 프롤로그를 못보신 분들은 프롤로그도 봐주세요!

 

신알신 필수!!!  댓글 필수!!!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독자1
짱이에요ㅠㅠㅠ 완전 제스타일!!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9년 전
봉블리
감사합니다!!! 2화에서 봐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05.01 21:30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 퓨후05.05 00:01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633 Claire de lune 11.06 01:53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525 Claire de lune 11.04 21:55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428 Claire de lune 11.02 22:49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325 Claire de lune 11.01 22:35
비투비 [빝/운광/정치물] 국민의 남자-14 유얼썬샤인 10.31 19:49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245 Claire de lune 10.30 21:13
비투비 [섭광] 시다바리 018 10.30 20:13
비투비 [운광] 인연에서 연인 만들기 Ep1.짱개&돌아이의 연인만들기 0184 Claire de lune 10.30 14:02
비투비 [섭광] 시다바리00 (마이너의 세계로 꼬몽꼬몽)3 10.24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