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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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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락에 올라가면 어렸을 때 네가 쓰던 물건들 있을 거야."
분주히 내 짐 정리를 도우며 내게 건넨 엄마의 목소리에
책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다락으로 몸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다락을 열고 올라가자 어렸을 때 그 모습 그대로지만
세월이 흘러 먼지가 쌓이고 조금 낡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번지는 웃음을 얼굴에 담고 다락에 발을 내디뎠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인형들이 눈에 보이고
내 머릿속에도 스르르 잠깐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늘 안고 자던 곰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락 한구석에 놓여있는 먼지를 가득 덮어 쓴 작고 낡은 라디오가 눈에 띄었다.
라디오를 들어 올려 입으로
후- 먼지를 불어내고 자리에 주저앉아 콘센트를 꽂았다.
작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위에 겹쳐진
작고 여린 목소리들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뭐야- 너 때문에 옷 더러워 졌잖아."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화났어?"
스피커에 흘러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내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의 목소리는 기억이 날듯 말듯 귀에 익은 음성이 흘러나왔고,
난 다리를 팔로 감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어보며 천천히 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제는 훌쩍 자란 내가 어릴 적 추억이 가득 담긴 라디오 앞에 앉아
어렸을 때의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꿈처럼. 어제 이야기 인 것처럼.
어린 내 목소리가 이젠 어른이 되어버린 내 귓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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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사왔다!"
"아! 차학연! 자꾸 치대지마!"
"지금 나 무슨 취급하는 거야?"
"취급은 무슨 취급. 빨리 여기 앉아."
아이스크림 내기에 진 학연이가
매점에 다녀오는 동안 나는 운동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학연이가 아이스크림 사 들고 나타나 내 목을 조르듯 장난을 쳤고,
난 그런 학연이의 팔을 때리며 말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학연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이거나 먹어."
치대지 말라는 내 말에 상처 받은 듯
학연이는 삐진 말투로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어, 콘 비싸다고 안 사준다더니."
"네가 그거 좋아하잖아."
콘 아이스크림 껍질까지 까서
네게 건네면서 투덜거리는 학연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와 학연이의 뒤통수를 칭찬하듯
두어 번 쓸어주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와 진짜 맛있다! 네가 사줘서 더 맛있는 거 같아!"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말하는 내 모습에
학연이는 삐죽거리던 입술을 집어 넣은 채
얼굴에 스르륵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우리 학연이 없으면 난 어떡하지?"
"가식덩어리"
"가식 아닌데..."
좋으면서도 민망함에 틱틱 거리는 학연이에게
우울한 척 말하자 학연이가 내게 슬며시 어깨동무를 해왔다.
"나도 우리 00이 없으면 어떡하지?"
"됐거든-"
"오- 안 통하네?"
팔꿈치로 옆구리를 살짝 치며 밀어내자
학연이는 세게 맞은 척 장난을 치며 내게서 떨어졌다.
어느덧 학연이와 난 친구가 된지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린 7년이란 세월을 함께하며
그만큼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사이고,
그 세월이란 배경으로 표정만 보아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았기에 우린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다.
"00아, 우리 셀카 한 장 찍자!"
"갑자기 무슨 셀카야. 안 돼. 나 지금 못 생겼어."
"못 생겨서 사진을 못 찍으면 넌 평생 못 찍을지도 몰라."
"아오! 죽을래?"
"하나! 둘! 셋!"
핸드폰을 들고 설치는 학연이에게
거절을 해 보았지만 학연이의 일침에 주먹을 쥐어 보였지만
핸드폰 액정에 나오고 있는
내 모습에 주먹을 펴고 웃으며 브이를 그려 보였다.
"안 찍는다 더니! 000 웃은 거 봐라."
"너 이리와. 죽었다 차학연 너 이리와!"
찍힌 사진을 확인하며 웃음을 터트린 학연이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학연이는 저 멀리 도망을 가버린 상태였다.
7년 전만해도 넌 나보다 작았는데,
어느새 너는 나보다 한 뼘이 넘게 커버렸다.
초등학생이었을 땐 내가 너보다 힘도 셌는데,
이제는 네가 조금만 힘을 줘도 내가 아파하잖아.
우리가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마 언젠가 먼 훗날엔 지금 이 모습도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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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옆에 놓여있던 작은 상자를 열었을 때
빛 바랜 사진들이 있었고, 사진 속 너와 나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세월이지나 낡아 버린 사진과,
반짝반짝 빛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빛을 잃어버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시 불러보고 싶다. 네 이름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운 그 날들을.
거짓말처럼 새록새록 피어나는 기억에 마치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 기분이 들었다
오랜 상자 속에 잠든 너와 나의 어린 시절.
옛날 얘기처럼 꺼낸 너와 나의 어린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