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 참 대단한 거 같아. "
" 뭐가요? "
한빈아 너가 이제 몇 살이지? 19살이요. 알록달록한 책가방을 매고 대학을 걱정하고 1년 남은 학교 생활을 즐길 나이의 한빈이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닌 공사장이다.
아직 어린티가 벗겨지지않은 얼굴은 공사장의 흙먼지를 맞아 까만색으로 물들었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자잘하게 다친 상처들이 빼곡하게 얼굴에 남았다.
아내와 결별한 뒤 한 번도 얼굴을 보지못한 아들이 한빈과 동갑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빈을 보면 괜히 명치가 저릿하고 코 끝이 찡하였고,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니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한 번 가는 눈길이 한빈에겐 두 번이 갔고, 남들에게 하나를 챙겨줄때 몰래 하나를 더 챙겨주었다. 그럴때마다 한빈은 감사함에 발을 동동 거렸지.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항의를 하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어린 한빈이 안타까워서도 있지만 한빈의 눈물나는 사정 때문에 다들 양 손으로 눈을 가렸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봐. 끝나려면 2시간이나 남았는데요. 일찍 가라면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 제 눈치를 보며 어물쩡 거리는 한빈의 뒷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얼얼한 뒷통수를 손톱으로 벅벅 긁다가 말은 그리 했으면서 미리 싸뒀는듯한 가방을 어깨에 걸쳐매고 안전모를 벗는 한빈의 뒷모습에 코 끝이 찡했다.
한빈아. 네? 학교를 자퇴하기 전에 물들였다던 빨간색은 머리카락 끝자락에 희미하게 남은 한빈의 눈을 마주보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가방끈을 쥔 한빈의 새끼 손가락이 없는 왼손을 바라보다가 차라리 한빈의 눈을 보면 이 저릿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더 먹먹해졌다.
또래의 순수함과 장난끼가 도는 눈이 아닌 사회에 찌들어 녹이 쓸어버린 눈을 하고 있는 한빈에 괜히 코 끝이 찡해져 코를 쥐었다가 놨다가를 반복 하였다.
" 언제나처럼 병원 계좌에 돈 넣으면 되는거지? "
" 네. "
" 혹시 아닌가 싶어서 불러봤어. 안부 전해주고 "
" 감사합니다. "
허리를 여러번 숙여 인사를 하고 가는 한빈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듬직하고 어른스러워 너무나도 미안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한빈에게도 병실에 있을 그 아이에게도.
*
" 형 나 왔어 "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진환의 손목이 가죽밖에 남지 않아 하루종일 물로 채운 속이 더부룩해짐을 느꼈다.
형은 제가 가져다준 저 화분을 무척 좋아했다.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병원비와 생활비를 제출하고 얼마남지 않는 짬돈을 긁고 또 긁어모아 사다준 제 화분을 말이다.
흙이 잔뜩 뭍어 제 색을 잃은 조그마한 5천원짜리 화분은 구매자인 저 처럼 볼품없고 초라했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진환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화분을 진환은 애지중지 하였다. 팔다리에 마비가 와 움직이지 못 하게 되기 전까지는 힘든 몸을 일으켜 직접 물을 주고, 안부도 물었을 정도로 말이다.
의사 선생님이랑 이야기 했는데 형 많이 괜찮아졌데. 다행이지?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방을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 보조 침대에 앉아 최대한 해맑게 웃어보였다.
형 오늘 말도 잘 들었다면서? 착하네 우리 형. 꾹 닫혀있던 형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입꼬릴 슬 올리는 것에 신이나서 목소릴 높혀 이야기를 이어갔다.
학교에서 김지원이랑 송윤형이 장난을 치다가 창문을 깼다는 이야기, 오는 길에 고양이를 봤다는 이야기, 오늘 급식 이야기.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형은 신이난 나의 이야기가 재밌는 것인지 차인 숨을 뱉듯이 웃음 소리를 뱉어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해 주었고, 나는 굳어버린 형의 손에 깍지를 꼈다.
형 손톱 깎아야겠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에 코 끝이 찡한 기분에 코를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지만 형은 나의 코 먹는 소리에 눈치를 챘는 듯 하다.
" 형 난 괜찮아. "
" 정말로 다 괜찮아. "
나는 형이 있으면 정말로 다 괜찮아. 결국 참아내지 못한 눈물을 터트리며 형의 손을 더욱 꽉 잡아 손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형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