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흩날리는 늦은 밤, 가로등만이 쓸쓸이 비추는 길을 걷고 있을 때 문득 당신이 생각 나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밤하늘이 마치 참나무통에 오랜 시간 묵어뒀던 포도주처럼 자주빛이 아주 곱더군요.
당신을 처음 만난 건 매미가 찌르르 울던 여름날이였는데 벌써 이만큼 흘러버린 시간이 참 무섭습니다. 난 처음과 변한 게 없는데 말이죠.
아아, 생각해보니 변한 게 있습니다. 쓸쓸한 가을처럼 텅 비었던 내 안엔 당신과 함께했던 행복이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이 가슴 속에 내리는 중입니다. 보이진 않지만 그 발 밑에는 또 추억이란 게 가득 쌓여있겠죠. 마치 내가 밟고 있는 이 하얀 땅처럼요.
나는 이제 이 행복이란 눈을 멈춰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낍니다. 겨울이 계속 되니 마음이 아주 춥고 시렵습니다. 나는 이제 꽃과 나비가 춤 추는 생명력 가득한 봄을 품고 싶어졌어요.
평소에는 소리도 내지 않고 숨죽이던 발자국 녀석이 오늘만큼은 제 고생을 알아달라는 듯 서걱서걱 울어댑니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슬픈건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나는 당신이 내 맘을 영원히 모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단지 슬플 뿐이죠, 전해지지 못한 이 아득한 짝사랑이. 결국 홀로 남겨진 내 사랑이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랑을 만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사랑 속에서 지금처럼 기쁨이 가득하기를 빌고 또 빕니다.
코트 깃을 여밀고 나는 길을 걷습니다. 이 길의 끝은 어딘지 모릅니다. 그저 당신을 눈밭 위에 하나 둘 씩 떨어트리며 하얀 눈을 밟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하얀, 외로운 길을 따라 나는 봄을 찾으러 떠납니다.
ps. 날 웃음짓게 해줬던 당신에게 이 시를 바칩니다. 좋아했어요 많이.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겨울에 떠나는 내 사랑아 2
10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