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긴 눈을 자극하는 따가운 빛에 눈을 떴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멍멍했던 귓가에는 작은 새소리만이 들릴 뿐이였고, 쑤시고 아팠던 온몸은 어느샌가 멀쩡하게 나아있었습니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달라진 몸의 상태에 의문을 갖기도 잠시, 저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학교에 늦겠다며 허겁지겁 제 몸을 잡아 흔드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아려왔습니다. 그 변화를 알아채신 어머니께서 왜 그러느냐고 놀란 목소리로 물으심에도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눈물이 왈칵 나올 뿐이였습니다.
저녁에는 상추쌈을 먹을 것이니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아침밥을 먹는 저의 귀에 쿡 박혔습니다. 상추쌈, 상추쌈.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마음을 어찌도 그리 잘 아실까요. 꾸역꾸역 남은 밥을 입안에 전부 밀어넣고 입을 우물거리자 어머니께서 제게 물을 건네셨습니다. 저만치에 있는 찬 옹달샘에서 퍼다 온것이라는 그 물은 정말 이가 시리도록 차 목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였습니다. 어머니께 다녀오겠다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서자 유난히도 푸른 하늘이 보였습니다. 하늘이 파란 것은 당연한데, 그것이 왜 이렇게 신기한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친구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친구들의 얼굴은 왜 그리도 반갑고 또 반가울까요. 답지 않게 살가운 척을 해대니 왜 그러냐며 장난스레 저를 밀치는 친구들의 행동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나무 내음 짙은 교실 안에 북적북적한 친구들.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이 풍경이 전에는 문득 그리운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왜인지 가슴이 조금 저릿해집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눈에 담아놔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잠시 놀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접어들자 상추쌈 생각에 절로 기분이 들떴습니다.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로 집에 들어서니 형제들이 이미 상추쌈을 입 안 한가득 넣은 채로 저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치사하게 나만 빼놓고 먼저 먹고 있었느냐고 무어라 하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다 방 한구석에 개켜진 흰 내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에 저런 내복도 있었던가요? 내복을 펼쳐들어보니 제 몸과 딱 맞아보였습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 내복.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이 기분. 저는 고개를 한번 갸웃, 하고는 그 내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여전히 무언가 찜찜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어머니가 싸주시는 상추쌈은 언제 먹어도 맛있습니다. 입안 가득 들어찬 상추쌈에 절로 웃음이 지어져 그렇게 웃고 있으니 어머니가 저를 보시고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아, 따뜻합니다. 저를 쓰다듬으시는 어머니의 손길이, 저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눈빛이 그 무엇보다도 따뜻해 웃음이 더 나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평화롭습니다. 평생토록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잘 자라며 불을 꺼주시는 어머니에 계속 뜨고있던 눈을 감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뿐인데 오늘은 왜인지 너무나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고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오늘은 참 이상한 날입니다. 한참 머릿속을 생각들로 가득 채우다 점점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습니다.
내일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살아야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국군 제 3사단 소속 이우근 학도병
1950년 8월 10일 전투 중 사망
BGM - Remember Vividly :: 생생히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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