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즈앱 대입 시험을 망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던 길이었어. 그게 내 마지막 시험날이었거든,
그 날도 여전히 내 답안에 만족하지 못해서 ‘망했다’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터벅터벅 걸어서 아 끝났다. 후련하다.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오는거야.
겨울인데 왠 비야 생각했어. 시험보러 왔던 고등학생들이 하나같이 부모님 차로 뛰어가더라고, 부모님들은 우산들고 기다리고.
근데 난 혼자 왔었어. 우산도 없었고.
가방에 책들이 젖을까 앞으로 매어 부여 안고는 어디 지붕아래 들어가서 비를 피할까 하다가 괜한 청승이 떨고싶었는지 비를 피해 뛰던걸 멈추고 터벅터벅 편의점으로 걸었어.
비를 맞으면서.
편의점에 들어가서 우산을 보는데 만원이 훌쩍 넘더라고, 비닐 우산은 사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원하는 3단 우산은 비싼거야.
갑자기 짜증이 팍 나더라. 신경질적으로 편의점 밖으로 나와 주저 앉아서 엉엉 울었어. 뭐가 저렇게 비싸! 하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헐떡거리고 울고 있었어. 난 분명 우산 때문에 울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산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내 입에서는 나 어떡해. 떨어질거야. 엄마 아빠 미안해. 나 이제 어떡해. 이런 소리만 터져 나오고 있더라.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런거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난 터뜨리며 울다가 다시 색색 숨만 쉬며 가라앉히다가를 반복했어.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나. 눈물이 이제 어느정도 멎었을 때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멍하니 아무곳이나 쳐다봤어.
그 때, 편의점에서 누가 나오더라. 딸랑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데 웬 남자랑 눈이 마주친거야.
그 사람은 편의점을 나오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멈칫 하더니 다시 돌아 들어갔어. 그제서야 나도 힘없이 잃어나서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다시 튀어나오더니 저기요 하고 불러. 편의점에서 파는 3단 우산을 슥 내밀더라. 이제 막 샀나 비닐 포장도 된 거로.
난 표정없이 그 우산을 손에 턱 쥐었어. 이제 눈물이 안난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난거였는데 다시 눈물이 차오르더라.
멍하니 손에 쥔 우산을 보고 입만 떼서 감사합니다. 말하려고 했는데 목이 매이는거야.
추하게 다 갈라진 목소리로 ‘감사합’까지 말하는데 그 남자가 날 와락 껴안으면서 어, 저기, 고생 많았어요. 하더라.
내 머리가, 내 온 몸이 잔뜩 젖어 있었는데도. 그리곤 우산을 펴서 내 손에 쥐어주고 저 멀리로 사라졌지.
누구였을까.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내가 시험본 이 대학의 학생인지 아니면 나와 같이 시험을 본 수험생인지 정말 우연히 여기를 지나가다 날 보게 된 행인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 후로 한달 가까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지냈어.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나. 오늘도 비가 왔잖아.
우산을 폈는데 녹이 슬어있더라. 하긴 편의점에서 파는 우산이 다 그렇지.
근데,
이 우산.
녹이 슬어 살이 나가고 망가진다해도 난 버리지 못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