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 봄날, 벚꽃 그리고 너
< Lilac >
겨울 동안 곳곳을 하얗게 덮었던 눈이 봄의 따스함에 녹아내릴 때면 우리 집 앞에는 푸르른 라일락이 봄의 시작을 알렸다. 그해 봄에는 유독 라일락 내음이 진하게 배어 있었던 것 같다. 너 때문이었겠지, 라일락 향이 스며있던 너, 봄과 같던 너, 내 첫 연정. 사춘기 소녀의 한때 불타오르고 끝날 짝사랑이라기에는 그때의 나는 일찍 철이 들어있었고, 밤을 지새우며 가슴앓이할 절절한 짝사랑이라기에는 그때의 나는 아직 사랑에 가슴앓이할 줄 아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 중간쯤에서 설레어 하고 조금은 부끄러워하며 나는 너의 세상에 들어가고 싶었다. 너의 일과부터 작은 습관이나 말투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고, 그저 너라는 존재가 있음에,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너라는 존재가 내 삶의 이유가 된 마냥 말이다.
성인이 된 지금, 아주 사소한 것에 기뻐하던 순수한 그 마음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 더는 그런 사소한 것에 기뻐할 나이가 나이었다. 많은 세월 동안 변했으니까. 지금의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 세상은 너였는데, 나는 네 세상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였을까? 졸업한 후 문득 떠오른 그 생각 때문에 네게 연락할 용기조차 없었다. 정확히는 나 없이도 잘 살아가고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가정을 꾸려나갈 널 지켜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너 없이 살아가는 게 힘겨웠는데 너는 잘 살아가겠지. 사회에 뛰어들고 잘 살아가면서도 너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 잊었다며 연락할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거짓을 핑계로 너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려오는 가슴 한 편을 감췄다.
너는 왜 내 첫사랑이어서 내 가슴을 아직도 먹먹하게 만드나.
내 첫사랑.
봄이면 어디선가 네가 라일락 향을 흠뻑 풍기며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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