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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향기 전체글ll조회 856l 17

•  사투리를 사용할 줄 모르는 탓에 미야즈의 대사 또한 표준어로 표기됩니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미야즈 캐해를 조금 써보자면, 

 

츠무는 이리저리 짧은 연애 자주 할 것 같다. 성격은 전반적으로 그냥 아이 같은 사람으로 해석하고 싶어. 마이웨이 + 자기 주관 뚜렷 + 느끼는대로 감정 표현을 하는 그런 조합. 승부욕도 강하고 입도 험한 탓에 성격 나쁘네 ... 하는 평판은 많겠지만, 딱히 못된 성격은 아니겠지. 사람들은 원래 자기 입맛에 안 맞춰주는 인물을 이기적 이라고 표현하는 편이니까. 그런 탓에 츠무는 사회생활 전혀 못 할 성격이지만 그만큼 매력 넘쳐서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 (물론, 잘생긴 얼굴도 한 몫 함) 자기가 좋아하는 배구에 모조리 다 쏟아붓는 걸 보면 좋아하는 것이든 대상이든 그냥 직진할테고.  

 

그리고 사무는 일단은 과묵한 편. 쓸데없는 말은 안 하고, 딱 할 말만 하는 성격이겠지. 츠무랑은 다르게 말을 돌려돌려 하는 편. 그게 상대를 위한 말이든 (하얀 거짓말) 아니면 도발을 위한 말이든 (비꼬기) 직설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고. 굳이 츠무와 비교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도 얌전한 편이겠지. 츠무나 친구들이 상황에 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그래도 꽤나 정적이고, 얼굴로도 감정표현이 적은 편이지 않을까. 물론, 미야 DNA를 갖고 있으니 장난기도 있고, 승부욕도 강하고, 하도 쌍둥이와 싸우다보니 소유욕도 강하겠지만.  

 

주인 없는 로트와일러 같은 츠무와 자기 자신이 주인인 셰퍼드 같은 사무 ... 라고 하면 좋을까. 

 

아무튼,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 닝이 동갑내기 아츠무를 짝사랑하는 중인게 보고싶다. 꽤나 오랫동안 짝사랑 중인데, 가망이 없는 듯해서 딱히 희망같은 걸 품고 있는 건 아니야. 그냥 친구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하는거지. 

 

그렇게 그냥저냥 옆에서 츠무를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데, 대뜸 정략결혼을 해야 되는거야. 어차피 제 짝사랑은 이루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위태로운 회사를 위해, 그리고 제 가족을 위해 기꺼이 승낙하기로 마음 먹는 닝. 

 

그렇게 오케이하고 말을 하고 상견례 날 만난 상대가 아츠무 쌍둥이인 오사무인거지.


————————


닝의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해보자면,


L 기업의 막내 딸. 나이차이 많이 나는 오빠 하나, 언니 하나가 있는 닝은 늦둥이 막내 딸이야. 그렇지만, 남들이 생각하는만큼 사랑 받고 자라지는 못했지. 아주 어린 시절에는 한창 공부에 정신없는 두 언니오빠를 케어해줘야 한다는 부모님 때문에 유모에게 맡겨졌고, 조금 컸을 쯤에는 회사가 아슬아슬하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못 했어.


그렇다고 두 남매에게 관심 받았냐하면, 그것도 아니야. 나이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닝에게는 관심 줄 틈도 없이 두 사람은 학업에 치였고 일에 치였으니까. 


가족과는 별다른 유대감도 없었지만, 그렇다 해서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어. 언니오빠가 부모님에게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밥먹듯이 듣는 모습을 보고 자란 탓에 오히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지. 


그 탓에 자기만의 작은 세상에 스스로를 가둔 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에 사람이 없어졌어. 그리고 아무도 저에게 다가오려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고3때. 주변을 돌아보며 살걸 그랬나?


됐다.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뭐. 그렇게 고개를 저은 닝은 다시 정면을 바라봤어. 그리고 눈 앞에는 기업의 이사가 된 언니와 의사인 오빠가 보여. 하지만, 저도 그런 자리까지 갈 자신은 없었어.


그럼, 난 뭘 하지? 멀찍이 서 있는 형제들, 그리고 제게 관심을 주기는 커녕 기대조차 하지 않는 부모님. 치명적인 시기에 슬럼프에 빠져버린 닝은 우울감에 흠뻑 젖어버렸어.


“넌 처음 보는데, 누구냐?”


그때 짝으로 만난 사람이 미야 아츠무. 


동갑내기인 츠무는 본인과는 다르게 해맑고, 자기 표현도 잘 하고, 되게 멋있는 사람이었던거야. 내가 죽어도 아무도 관심 없을거야- 라는 생각까지 닿을 즈음에 본인에게 다가와준 그는 구원과도 같았지. 그가 설사 호기심 하나로 조용하기만 했던 자신에게 다가왔을지언정, 닝은 좋았어. 처음으로 긍정적인 방향의 관심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단순히 고마운 마음 하나로 그의 손을 잡은 닝은 그의 주변 인물들과도 친분을 만들기 시작했어. 남의 시선이라곤 하나도 신경 안 쓰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모습이 부러웠던 닝은 츠무를 일종의 워너비로 삼았지. 그렇게 살다보니 우울감에서도 쉽게 헤어나올 수 있었어. 


온통 칙칙한 분위기에 젖어서는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닝이 해사함으로 가득차니까 사람들도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어. 이상한 애인줄 알았는데, 엄청 다정한 애였잖아? 하면서. 그리고 닝도 본인에게 관심을 주는 이들 중 한 사람과 연애도 시작했을 정도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어.


하지만 언제까지고 영원한 행복이란 없는 법이야. 마음을 한 없이 주었던 연인에게 저는 아직 확신이 없으니 몸은 주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는 이유로 상대는 몇달 만에 연애를 끝냈어. 


지금껏 요구해왔던 연인에게 거절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번도 별 다를 바 없겠지 싶었던 닝이 갓 성인이 되자마자 겪게 된 첫 이별.


헌신에 대한 배신.

애정에 대한 배신.

굳건했던 신뢰에 대한 배신.


나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그 첫 이별에 닝은 얻게 된거야. 그리고 닝은 이러다 온 몸이 건조하게 말라 비틀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질 기세로 며칠 간 눈물만 주르륵 흘려대. 나는 언제나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준 마음의 반의 반도 돌려받지 못 하는 것이 그냥 내 운명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


"그 새끼가 나쁜 새끼더라."


그 말로 시작해서는 조금은 험한 말이 이어져. 그 말을 들으며 닝은 조금 진정할 수 있었어. 내 가치가 그 뿐인게 아니지, 그치? 그 놈이 나쁜 놈인거지? 하는 의문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츠무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


"괜히 내가 소개해주는 바람에. 미안."


그렇게 제게 전하는 말이 들려오는거야. 사과를 할 줄 아는 성격이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놀란 눈으로 츠무를 돌아보면 그는 인상을 구겼어. 왜 그렇게 놀란 눈을 하냐면서 궁시렁거리는데, 정말 미안하다는 눈을 하고 있었지. 꼭 본인이 이별하기라도 한듯이 정말 많이 미안하다는 얼굴을 한 채로.


"어떻게 너한테 그러냐. 그런 폐품새끼 내가 한 대 쳐줄까?"


그런 말로 주제를 돌려보려는 시도가 뻔히 보여서 닝은 그저 웃었어. 제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을 기꺼이 대신 해주는 그를 보면서 간질거리는 가슴께를 매만졌지. 그리고 닝은 너까지 잃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그 순간 하고 말았어.


————————


"닝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만으로도 설레였어. 닝은 웃는 얼굴로 츠무를 돌아보았지. 고딩 때도 저보다 한참 컸던 존재는 성인이 되어서도 키가 계속 컸어. 커다란 몸과는 다르게 여전히 어린 애처럼 말간 얼굴에 설레지 않는 게 이상할거야. 그러니까, 더 좋아지고 말았지. 벌써 3년이 넘도록 좋아하고만 있는거야. 


그래도 단 한 번도 고백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계속해서 짧게 연애를 하는 츠무를 보면서도 좋아한다고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없었지. 그의 지난 연인들처럼 본인과도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까봐. 그런 두려움에 굳이 과분한 욕심을 품지는 않았어. 친구로 있는거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말이야.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답지 않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듯한 모습에 닝은 고개를 갸웃거렸어. 무슨 일이라도 있나? 어째서인지 설렘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이 안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뭘 물어보고 싶은걸까, 하면서 기다리니 츠무가 마침내 입을 열었어.


"혹시 XX선배 아냐?"


그를 한 발짝 물러서서 보기만 해온 닝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모를 수 없었어. 그래서, 곧바로 답을 내어줄 수가 없었지. 짝사랑 상대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걸 어떻게 축하해줄 수 있겠어. 그래도, 닝은 어떠한 희망을 품은 채 태연하게 대답했어.


"누군지만 아는데, 왜?"

"그 ..."


답을 내어주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며 닝은 조금 아려오는 심장을 무시한 채로 물었어.


"그 선배 좋아하는거야?"

"... 어."


연애는 많이도 해봤으면서, 처음으로 내어진 쑥맥같은 대답에 닝은 씁쓸하게 웃었어.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드디어, 네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 그 선배인거구나.


"그러면 직접 번호라도 물어보면 되지."

"내가?"

"너라면 줄 걸."


왜냐하면, 나라면 줄테니까. 그리 생각하며 건넨 답에 츠무는 자신감을 얻은듯 아기 여우처럼 눈을 반짝이기 시작해. 역시 너라면서, 그러면 되겠다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닝도 살풋 웃어줄거야. 


"잘됐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많이, 조금 많이 아프지만, 본심이 담겨있는 말이었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네가 보란듯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 그래야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 짝사랑에서, 그리고 츠무에게서 헤어나올 수 있을테니까.


————————


역시나 추진력 좋은 츠무는 망설임 없이 번호를 따냈고,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아주 일사천리로 처리했지. 문자만 오면 배구 리시브하듯이 핸드폰을 집기 위해 몸이 튀어오르고, 전화가 오면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에 닝은 그저 웃어주기만 했어. 잘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렇게 꾸준히 자랑하고 앓아대는 그의 말들을 들어줄 때면 비로소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전까지는 놓아야 하는데, 정말 친구로서만 대해야 하는데, 하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잘 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이제는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능성이 정말 0이 되고 말았으니까,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거야. 그래서 닝은 심장이 계속해서 아려오는 느낌을 무시하며 츠무에게 되레 제게 계속해서 상담을 하라고 부추겼어. 일종의 충격요법이랄까? 자극이 되었으면 한거야. 물론, 이조차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렇게 한참 마음고생을 하며 끙끙 앓을 쯤, 오래간 제게 연락이라곤 안부인사 하나도 하지 않았던 어머니에게서 무려 전화가 왔어.


"... 여보세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으면, 제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는 말이 들려와. 그리고 닝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응했어. 아무리 매정하게도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해도,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 아니,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더더욱 인정받아야 했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제 형제들과 부모님, 닝은 그 일원이 되고 싶었거든. 그래서 다소 무리는 아닐까 싶을 정도의 부탁에도 닝은 흔쾌히 받아들였어. 어머니께서 이렇게 조심스레 부탁하는 건 처음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길고 길었던 짝사랑을 끝내야만 하니까.


————————


정략결혼을 하리라 예상하고 살아온 건 아니야. 언니 오빠는 각자가 선택한 사람들과 결혼을 했으니 본인도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지.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대로,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싶은대로. 그들처럼 저도 대기업 사이에서는 흔히들 일어난다는 정략결혼의 예외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지. 


근데, 오늘 어머니와 한 전화에 의하면 저는 그 가족의 예외인가봐.


가족으로 쳐주지 않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 의사는 중요치 않다는 뜻인걸까.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닝은 제 부정적인 생각들에 곧 고개를 가로저었어. 어쨌건간에 내가 우리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내가 이렇게나마 인정 받을 수 있다면, 결혼 같은 게 무슨 대수겠어. 물론, 자존심도 있고 기싸움 할 줄 모르는 건 아닌지라 몇 년만 버티면 이혼해도 상관없다는 말에 응한 것처럼 굴기는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지. 위태로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의 아들과 결혼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어. 내가 더 이상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안 받아도 된다면, 결혼이 별거겠어? 


"저, 잠시 화장실 좀 ..."


그래, 눈칫밥을 먹는다는 건 이런거지. 한두 번도 아닌데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경멸을 담은 시선들. 그래놓고는 제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저들끼리 웃음소리를 흘려댔어. 나도 당신들 자식인데. 나도 같은 자식인데, 왜 내게만 이러는걸까. 내가 많이 부족한 건 알지만, 정말 별 거 없는 인간이라는 건 알지만 ... 아침에 샵에 데려다주겠다며 직접 와주길래 이제는 인정해주는걸까 싶었는데, 닝에게 돌아온 것은 날이 선 시선들 뿐이었어. 말조차 걸어주지 않았지.


닝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프라이빗 룸을 벗어났어.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닝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지. 어쩌면, 저를 물건 취급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닝아!"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지. 어디선가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해 설레이는 목소리. 닝은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어. 역시나 예상했던 얼굴에 닝은 저도 모르게 환히 웃어버리고 말았지. 역시 내 구세주, 라고 생각하면서. 어째 많이 익숙해보이는 인영을 한 어떤 남자에게 무어라 말을 한 츠무는 제게 성큼성큼 걸어왔어. 귀엽다. 잘생겼어. 반갑다는 듯이 웃는 츠무를 마주보며 닝도 자연스레 웃고 말았어.


"안녕, 츠무."


눈을 도르륵 굴린 츠무는 조금 놀란 투로 말할거야.


"오늘 엄청 꾸몄다. 예쁘네, 오늘 무슨 소개팅이라도 하는거야?"


끝말만 아니었다면, 또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었을 말을 하면서. 무슨 이유로든 간에 결혼을 하게 된 처지에 이런 생각은 그만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닝은 고개를 가로저었어.


"소개팅은 아니고, 그냥 ... 일이 있어서."


선뜻 꺼내기는 어려운 주제인지라 닝은 그렇게 정확한 답을 내어놓는 것을 피했어.


"무슨 일?"

"그냥 ... 그런게 있어. 그러는 너는?"

"나? 나는 상견례 때문에."

"상견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에 닝의 심장은 갑자기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쿵쿵쿵 뛰어대기 시작해. 츠무인가? 그러고보니까, 츠무도 대기업 아들이잖아. 잠깐, 그러면 얘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선배는? 그래도, 음, 그래도 ... 드디어 하늘이 내 소원을 이뤄주는건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닝은 츠무를 눈으로 살폈어.


"어. 상견례. 아, 그러고보니까 너희 아버지께서 L기업 회장님이시라고 했나?"

"응, 맞아."


정략결혼에 엮이게 된 사람치고는 그아 과하게 밝은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닝은 또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아. 네가 내 정혼자라고 말해줘. 마음고생 안 하고, 당당하게 너의 마음을 요구해도 된다고 말해줘. 그런거라고 말해줘. 닝은 그 짧은 찰나에도 속으로 츠무의 답을 재촉해. 불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온 탓이야.


"아, 뭐야. 그럼 너도 상견례 때문에 온거잖아!"

"어? 어 ... 응 ... 그렇지."


닝은 조금 몽롱한 정신으로 답을 했어. 본인이 원하는 답이 그대로 츠무의 입에서 흘러나오길 바라고만 있었거든. 제발 확신을 줘. 제발, 내 마지막 희망아. 그렇게 간절하게 빌었어.


"뭐야, 그럼 네가 우리 집 돼지랑 하는거야? 아니, 오사무랑."


하지만, 닝의 인생에 그런 행운 따위 찾아올리가 없었지. 고딩 때 가벼운 인사 정도는 자주 나눴던 그의 쌍둥이가 제 상대였구나. 츠무가 아니라. 제 상황을 더더욱 절망스럽게 만드는 현실에 무너져 내리는 닝의 속은 당연히 모를 츠무는 오히려 웃고 있어.


"그 돼지랑 누가 하나 했는데, 너였어? 야, 차라리 너라서 다행이다."


언제고 귀엽다 못해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여겼던 그 웃음이 처음으로 절망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어.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그 얼굴이 제일 가슴을 후벼팠지.


"다행 ... 인가?"

"어? 어, 뭐 그래도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 나름 괜찮은 놈이니까. 내가 보기에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걔 좋아하는 애들도 많았으니까."


그렇게 뒷담을 해대던 쌍둥이에 대한 포장을 하는 노력이 갸륵해서, 닝은 그저 입꼬리를 올려보여.


"그래?"

"그래, 너도 알잖아? 우리 고딩 때. 돼지인거 말고는 괜찮은 놈이야."

"뭐 어때. 어차피 몇 년 같이 살고 말건데 뭐."

"엥?"

"정략결혼이잖아. 몇 년 하고 말겠지. 뭐, 설마 평생 갈 것 같았어?"


조금은 자조적인 냉소를 지으며 말하니 츠무가 어깨를 으쓱여.


"난 그랬으면 했지. 그러면 너랑 나랑 사돈 지간 아닌가? 난 그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너무 아프다. 아프다. 정말 아프다. 그 순간, 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어.


"... 뭐야, 너 울어? 아, 하긴 너는 하기 싫었겠구나. 미안. 돼지는 싫다는 말 안 해서 그 생각을 못 했다."


그럼 그렇지,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닝은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지. 걱정하는 얼굴로 우려스러운 말들을 어지럽게 늘어놓는 츠무의 말들은 오히려 가시로 변해 제 가슴을 쿡쿡 찔러대. 


사실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너 때문에 아프고, 너를 미워하게 돼. 어쩌면, 네 말대로 사돈지간으로 선을 긋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어. 


"아냐, 그냥. 순간 ... 미안. 내가 화장실 가려고 잠깐 나온거라."

"아, 그래. 얼른 갔다 와. 미안하다."


사과의 시옷 자도 모르는 것처럼 구는 인간이 제게는 사과를 잘도 건네온다는 사실에 또 가슴이 뛰는 자신을 닝은 자책해. 그리고 츠무에게 손사래를 치며 걸음을 옮기지. 네가 좋아하는 그 선배, 엄청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의 애절한 짝사랑의 주인공이라니. 너무 부럽다. 나는 그런 너를 짝사랑하는 중인데. 


나도, 네 사랑 좀 받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니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닝은 꾹 참아냈어.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낸 닝은 휴지로 물기를 대충 찍어냈어. 기껏 메이크업 받아온건데. 닝은 세면대 앞에 서서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어. 


제 갈색 머리에 걸려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장식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밟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 네게 사랑받지 못하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정략결혼에 불과한 짓인데 왜 꾸민거야. 왜. 내가 관심받고 싶은 대상은 너를 닮은 미야 오사무가 아니라 미야 아츠무, 너인데.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또 속에서부터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에 닝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 봤어. 울지말자. 제발. 이번 한번만 내 말 좀 들어줘. 절대 제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게 닝은 간절하게 빌었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특히나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찬 곳에서 엉뚱하게도 울어버리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었어.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닝은 머리를 조금 매만지곤 다시 룸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저에게 내리꽂히는 시선들과 저를 흘겨보는 가족을 마주하게 되었지.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진정하고 돌아온건데, 벌써부터 울고싶다는 충동이 들었어. 그렇게 눈물을 억누르려 애썼던 제 노력 따위는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 닝은 아츠무의 쌍둥이인 오사무가 제 정혼자라는 사실은 지금 제 손에 쥐여진 문제들 중 가장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어. 더 큰 문제는 제 가족이었지. 


정신차려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인 닝은 자리에 앉으며 미야 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어. 그동안 말을 길게 나눈 적은 없지만, 인사치레 정도는 한 사이였기에 오사무도 가벼운 인사를 건네줄거야. 그에게 어색하게 웃어준 닝이 아츠무에게로 시선을 돌렸어. 그는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본인이 붙잡은 탓에 늦을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을 했다며 뿌듯해하는 얼굴을 해보였어. 그 얼굴을 눈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닝은 그래도 지금만큼은 혼자가 아니라고 자기 세뇌를 계속했어. 먼저 인사를 하라며 명령조로 속삭이는 어머니의 말에 닝은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어. 안녕하세요.


둘이 아는 사이이겠다, 앞으로 같은 집에서 살게 될텐데 따로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미야 부모님의 말에 다들 몸을 일으켰지. 너무 긴장 말라며 제 어깨를 토닥이곤 자리를 뜨는 츠무에게 닝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어. 참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가 오사무를 어색하게 대하는 이유가 너이지만, 그래도 고마워. 하하. 


물론 그 중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고마워와 어색한 하하, 뿐이었지.


어느새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커다란 방에 남은 사람이라곤 오사무랑 저 뿐이었어. 어색해. 특히나 낯을 가리는 닝을 이미 포크에 완벽하게 말려있는 파스타를 계속 돌돌 말고만 있었지. 그래도 제 가족과 있는 것보단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말이야. 그때, 오사무가 먼저 입을 열었어.


"오랜만이네."


전혀 예상치도 못 한 말에 닝은 고개를 들었어. 저를 쳐다보고 있는, 조금은 나른한 두 눈을 마주해. 고등학생 때 미야 쌍둥이를 머리색 말고는 구분 못 했던 시절이 갑자기 생각났지. 저렇게나 다르게 생겼는데, 왜 구분을 못 했던걸까.


"그러게. 2년 전에 보고 못 봤네."

"작년에 봤는데."


오사무의 덤덤한 말에 닝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굳어버려. 오며가며 봤던 기억은 있었는데, 그게 작년이었다니 ... 기억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 많이 미안해졌지. 이런 것조차 실수해버리다니 ... 닝은 또 자책을 하면서 시선을 본인 접시에 고정시켰어. 더 이상 눈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데도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오사무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어. 음, 미안하다는 마음이 사실 더 크긴 했지만.


오사무는 아츠무와 굉장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어. 아츠무와는 처음 만났을 당시 하도 말을 걸어와서 친해지게 됐는데, 오사무는 말이 없었지. 사실 그를 봤던 사실을 기억 하지 못 하는 저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튼 그 뒤로 오사무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분명 아츠무를 향한 짝사랑을 이제는 지워내고 싶은 절박함에 응했던 정략결혼인데, 되레 그 마음을 더 불리고 있는 꼴이었지. 차라리 츠무같은 성격이었으면 더 편했을텐데. 닝도 따지고보자면 말이 없는 편에 드는지라 더 불편했어. 능글맞게 상황을 무마하려한다거나 대화를 이끌어가는 재주 같은 게 없었거든. 


관심 없다는 듯이 말도 안 걸면서. 따가울 정도로 저에게 꽂혀있던 그의 시선이 특히나 거슬렸지. 아무리 그래도 2~3년은 살아야 할텐데, 이런 분위기로 살 수는 있을까 싶어졌어. 차라리 생판 남이었으면 또 몰라, 이도저도 아닌 '말은 하는 사이' 정도에 불과하니 더 어려울 것 같았어. 


저보다 먼저 그릇을 모두 비워낸 오사무가 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지 가만히 앉아서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비어버린 통을 괜히 손에서 놀리기만 하고 있었어. 닝이 기어이 먼저 입을 열게 되었지.


"이제 일어날까요?"


어색하게 묻는 제게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닝은 아직도 일전의 머쓱함이 남아있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어. 최대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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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이라지만, 대기업 사이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혼인관계니까 보여주기 식의 결혼식은 치뤄야 했을거야. 그래서, 정말 성대하고 화려한 식장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게 되겠지. 뻣뻣하게 그리고 어색하게 이루어진 식은 닝이 최악의 기억으로 손꼽을 정도로 끔찍했어.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정략결혼이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서약 후에 오사무와 나눠야 했던 가벼운 입맞춤도,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저를 쳐다보던 가족들의 시선도, 진심이 담긴 눈으로 축하한다고 전하던 아츠무의 말도 모두 끔찍했어. 모조리 다 제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어쩌겠어. 결국에는 제가 선택한 일이었는데. 


그 뒤로는 사무와 닝은 같이 살게 될거야. 말이 없는 두 사람이 같은 집에 살게 된다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어. 방도 따로 쓰기로 했으니 별다른 접점도 없었고, 그냥 마주칠 때마다 인사나 가볍게, 조금은 어색하게, 건넬 뿐이었지. 닝은 그런 생활을 하는 내내 진퇴양난이라는 단어만 중얼거려. 쌍둥이지만, 아츠무와 딴판인듯한 성격탓에 불편함이 커질수록 오히려 아츠무를 향한 애정은 계속해서 커졌고. 그 와중에 아츠무는 좋아하는 선배와 썸을 타고 있다는 둥 징조가 좋다는 둥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거야. 한 순간의 충동에 결정한 일이 불러온 결과였기에, 닝은 그 어느 곳에도 불평 하지 않고 - 못 하고 - 그냥 속으로만 삭혔어. 이제 그만 좋아해야지, 마음 접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학교에서 아츠무를 마주할 때마다 설레이는 마음에 혼자 침대에 누워서 울고, 그러다가도 더 좋아하게 되어버리고. 그동안은 나름대로 무뎌졌다 여겼던 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오랜만에 원망하는 시기가 되었어.


츠무로부터 오사무는 정략결혼을 덥석 받아들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닝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던지라 어쩌면 같은 처지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일종의 도피 정도로 여긴 건 아닐까 하는거지. 


그랬기에 꼬박꼬박 늦지 않게 집에 들어오는 오사무를 마주할 때마다 닝은 놀랐어. 사실, 밖으로 나돌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운동을 위해서든, 친구들을 위해서든, 술을 위해서든 말이야. 


그래서 어느 날, 혼자 끼니나 때우려고 라면을 끓여 먹고 있던 닝은 집에 도착한 오사무를 마주하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어. 집 안으로 발을 들이면서도 저를 가만 쳐다보기만 하는 시선에 닝이 멋쩍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어.


"밥, 먹고 왔어?"

"아니."


젓가락에 걸린 면발을 입에 넣지 못 한 채 눈을 도로록 도로록 굴리던 닝. 그 작은 머리통에서 굴러가는 생각들이 무엇일지 모르는 것도 아닌지라 오사무는 가볍게 말했어.


"나도 알아서 먹을게. 신경 쓰지 마."


그제서야 닝은 작은 깨달음을 얻었어. 어쩌면, 오사무는 저를 배려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하긴, 아츠무가 딱히 비밀을 지키는 성격도 아니고, 보나마나 무슨 말을 했을지 그 장면조차 그려지지. 내 친구가 어쩌구 저쩌구, 너랑 결혼하기 싫은데도 어쩌구 저쩌구 울었고 어쩌구 저쩌구. 두 쌍둥이가 치고박고 싸운다는 사실은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된것인지라 사람 속을 후벼 파는 말도 몇 개 첨가해서 과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큼이나 닝은 아츠무에 대해 잘 알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 사정을 다 알고 있는 닝은 오사무가 제 기구한 인생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찍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방금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그래서 건넨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거야.


"그, 나 혼자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라면 끓인거라 ..."


말문을 여니 오사무는 본인 방에 들어서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어. 아츠무가 떠오르는, 하지만 제 눈에는 한참 다른 얼굴을 마주하며 닝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같이 시켜 먹을래?"


그 날 이후로는 잠도 따로 자고, 생활도 따로 하는 주제에 밥 하나는 꼬박꼬박 같이 먹겠지. 최소한 저녁 만큼은 말이야. 그 덕에 어색함이 조금은 풀렸지만, 닝에게는 여전히 외줄을 타는 듯한 기분이었어. 배려를 해주는 오사무에게 예의를 차려 대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정말, 그 뿐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둘의 관계가 달라지는 계기가 있을거야.


그건 바로 아츠무가 그렇게 쫓아다니던 선배와 사귀기로 한 날이었지. 


언제고 기꺼이 상담을 해준 닝이었으니까, 츠무는 당연히 축하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닝에게 제일 처음으로 달려가 직접 말해줬어. 착하고 좋은 친구에 대한 예의, 바로 그것이었지. 아츠무에게 닝은 정말 좋은 친구였으니까.


"닝아, 네 덕분이다!"


그 선배의 손을 꽉 잡은 채 소개와 더불어 자랑을 하는 미야 아츠무. 그리고 어색하게 닝에게 목례를 하는 그 선배의 인사를 받아주는 닝. 정말, 배구 밖에 모르던 아츠무가 반하게 만들 수 밖에 없게 생긴 그 선배의 다정한 미소에 닝은 터져나오려는 설움을 꾹 참았어. 


이 정도는 괜찮았어. 예상했던 일이고, 저는 이미 결혼을 했고, 오히려 제가 부추겼던 관계니까. 정말, 제가 부추겨서 이루어진 관계였으니까. 새삼스럽게, 정말 새삼스럽게 서러워 할 필요는 없었지. 한두 번도 아니고 말야. 그랬던 찰나, 츠무가 닝을 그의 새로운 연인에게, 그의 첫사랑에게 소개해.


"고3 때 친해졌는데, 지금은 제일 친하다. 그리고 이제는 내 쌍디랑 결혼해서 내랑 사돈지간이고."


웃는 낯으로 제 가슴에 비수를 잘도 내리꽂았어. 츠무가 참 사람 마음에 상처를 잘 내는 타입이라는 걸 그 순간에서야 닝은 느꼈어. 가벼운 말 말이야. 물론 이번에는 상처를 낼 의도라곤 조금도 없는 상태였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에 닝은 울컥하고 쏟아져 나오려는 감정을 참아냈어. 제 처지를 새삼스럽게 꼬집는 말이 더 아팠지. 짝사랑의 가능성이고 뭐고, 이제는 그 감정조차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는 걸 그제서야 타인의 입으로 들은거거든. 그것도 제 짝사랑의 대상에게서. 그래서 ... 그래서 ... 닝은 밝게 웃어보였어.


"그치. 근데, 내가 지금 가봐야 해서. 미안. 아무튼, 축하해. 축하해요, 츠무가 선배 정말 많이 좋아했거든요."


그리 말한 닝은 조금 의아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츠무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줬어. 그 선배의 선한 눈빛을 마주하자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참아낸 닝은 곧바로 몸을 돌리곤 도망치듯이 숨막히는 공간을 빠져나왔어.


가봐야 하는 곳이 있기는 개뿔. 닝은 곧장 집으로 도망쳤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두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비가 쏟아져 내렸어. 


닝은 비를 피할 생각은 커녕 일회용 우산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걸음을 옮겼어.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게 비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 그저, 시야를 가리는 물기를 계속해서 닦아내며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어.


소리는 내지 않은 채,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집에 도착한 닝은 현관문을 닫자마자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서는 펑펑 울어버렸어.


너무 아파. 너무 아파. 너에게 위로 받았던 그 날보다도 아파. 왜 내 사랑은 언제고 이렇게 끝나버리는 건지. 왜 내 사랑은 단 한 번도 좋게좋게 끝나는 법이 없는건지. 어째서, 나는, 왜. 왼편의 가슴께를 손으로 꾹 누르며, 서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어. 어찌나 울었는지 본인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 했지.


"저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닝은 흠뻑 젖은 얼굴로 제 앞의 사람을 올려다봤어. 츠무인가? 그를 향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던 날, 저를 위로해주던 얼굴. 우려심이 가득했던 눈빛. 그것이 떠올라서 밭은 숨을 내뱉으며 멍하게 쳐다보던 닝은 눈을 한 번 깜빡였어. 


눈물이 다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면, 흐릿했던 시야가 말끔하게 변했어. 더는 아츠무가 아닌 오사무라는 사실을 못 알아챌 수 없었어. 묘하게 더 둥글고, 나른한 얼굴. 금발이 아닌 은발. 제 상황이 다시금 분명하게 이해가 되어버린 닝은 다시 울음보가 터져버렸어.


너만을 홀로 좋아했던 그 기나긴 시간들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서, 이런 편법으로조차 너와는 이어질 수 없음이 분명해져서, 울고 말았어.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도, 아까 전과는 달리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듯이 끅끅거리는 소리만을 흘리는 닝을 가만 쳐다보기만 하던 오사무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찬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는 손을 뻗었어. 팔을 잡아당기자, 당기는대로 몸이 따라오는 닝을 품에 안은 오사무는 느리게 그녀의 등을 토닥였어.


그 온기가 너무도 따스해서. 안정감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몸을 조금 기대던 닝은 곧 그 날에조차 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주지 않았던 아츠무를 떠올렸어. 


처음부터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리도 좋아했을까. 처음부터 결말이 눈 앞에 내어져 있었는데, 왜 그리도 마음을 주고 싶어했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위로의 손길에 더 울컥해버린 닝은 오사무의 품 안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 정도로 서럽게 울었어. 


내 인생, 참 가엾다. 자기연민이나 하는 내 꼴도, 참 추하다. 


위로의 포옹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것도, 인정해주지 않는 가족을 위해서 하게 된 정략결혼 상대에게. 단순한 실연이 아닌, 제 인생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닝은 서럽게도 울면서, 제 등을 규칙적으로 쓸어주는 오사무의 옷자락을 손에 꽉 쥐었어.


"괜찮아?"


오사무가 그나마도 진정을 한 건지 들썩임이 잦아들은 닝에게 물었어. 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은 채 제 옷을 꽉 붙든 작은 손의 온기만이 느껴졌지. 한 품에 들어오는 작은 존재의 등을 그는 느리게 토닥여줬어. 품에 파고들려는 듯 몸을 움직이는 이에게 별다른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사무도 그냥 안고만 있었지.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닝이 거슬려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


눈을 떴을 땐, 침대 위였어. 언제 방까지 왔지? 기억을 되짚어보던 닝은 곧 자신이 오사무의 품에서 어린 애처럼 펑펑 울었던 장면을 떠올렸지. 세상에. 오사무는 왜 그렇게 일찍 집에 돌아왔던거람. 괜한 사람 탓을 하며 닝은 몸을 일으켰어. 


내가 미친거지. 내가. 한숨을 푹푹 내쉰 닝은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조심스레 방을 나섰어. 해가 지고 하늘이 온통 새까매진 지금까지도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어. 창문을 한 번 흘겨본 닝은 곧 거실에 앉아있는 오사무를 발견했지. 제 인기척을 못 느꼈는지, 가만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닝은 걸음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어. 탈진이라도 할 기세로 운 탓에 목이 타들어가고 있었거든.


"일어났어?"

"어? 어, 어 ... 방금 일어났어 ..."


컵에 물을 따르던 닝은 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떨곤 고개를 돌려 웃었어. 미안하다고 말해야겠지. 그렇게 사과를 전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였어.


"괜찮은거야?"

"어, 뭐 ... 괜찮지."


대충 얼버무린 닝이 물을 조금 급하게 들이키곤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어. 


"닝."

"응?"

"무슨 일이라도-"

"아니야! 별일 없었어. 그냥 ... 내가 원래 좀, 쉽게 울어."


별일 아니었다고 하기에는 본인이 너무 서럽게 울었다는 사실은 닝도 잘 알고 있었어. 그런 되도 않는 말을 한 닝이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어.


"아까는 미안해. 내가, 그, 경황이 없었어."


미안해하지 말라고 사무가 말할 틈도 없이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닝. 닫힌 방문을 조용히 쳐다보던 사무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몸을 일으켜 본인 방으로 향했어. 닝을 기다리고 있던거였으니까.


————————


오사무는 습관대로 아주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어. 언제나처럼 씻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곤 집을 나섰지. 매일 아침 루틴대로 동네 한 바퀴 가볍게 뛰고 오기 위해서였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무는 사념에 빠졌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있어야 그렇게 서럽게 울 수 있는걸까. 전날 밤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끝에는 숨마저 헐떡일 정도로 울던 닝을 떠올렸어.


그런 일이라면, 나한테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려나. 츠무한테는 얘기했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오사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웬만해서는 그런 질투심 따위를 품지 않으려 했어. 


왜냐하면, 오사무는 닝을 처음 봤을 때부터 혼자서 오해간 좋아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정략결혼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님께 덥석 닝의 이름을 말했었던거니까.


사무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을 목격했어. 어제 저녁, 바들바들 떨기만 했던 몸이 부엌에 서 있었어. 평소 주말에는 기상시간이 늦는 건지, 정오쯤에서야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런 사람이 벌써 부엌에 서 있다니. 그래도 그저 어제 있었을 알 수 없는 일 때문에 그런거겠니 하며 사무는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서서는 본인 방으로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사무가 문을 열려던 찰나였지.


"어, 오사무."


닝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제 이름이 어지간히도 듣기 좋은 것이 아니라서 갈비뼈를 시끄립게 두드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사무는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어. 닝이 조금만 긴장을 안 했다면, 꽤나 상기되어있었음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티가 났지만 말이야.


"아침 아직 안 먹었지?"

"응."


그 답에 닝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어. 그리고 사무는 조금 많이 진득한 시선으로 그 얼굴을 훑었어.


"그러면, 같이 먹을래? 그냥 주먹밥이긴 한데-"

"그래."


조금 급하게 답한 오사무는 내심 당황해서는 본인 방으로 들어갔어. 웃으니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지. 어제의 울던 얼굴보다 훨씬 밝았고, 처음 닝을 마주했던 그 날의 해사한 웃음과 굉장히 닮아 있었으니까.


사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굳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성격이 이토록 다행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츠무랑은 다른 게- 아니, 걔가 왜 또 생각나. 오사무를 보기만 해도 츠무가 떠오르는 거지같은 습관을 고치는 게 꽤나 시급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지. 오사무의 양은 잘 알고 있기에, 2인분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갯수의 주먹밥을 그릇에 담은 닝이 식탁에 큰 접시를 내려놨어. 


컵에 주스를 따른 닝이 컵 하나를 더 꺼냈어. 사무가 괜히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닝은 싱크대에 기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지. 얼마나 기다렸을까, 젖은 머리에 수건을 올린 채 나온 오사무를 보며 닝이 미소를 머금었어.


"마실 거는 뭐 줄까?"

"... 물이면 돼."


고개를 끄덕인 닝은 몸을 돌려 컵에 물을 따랐어. 닝의 뒷모습을 가만 쳐다보던 오사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화장실 앞의 바구니에 던져 넣고는 나왔지.


"어제 미안하다고 하긴 했는데."


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던 사무가 고개를 들어 닝을 쳐다봤어.


"고맙다는 말은 안 전한 것 같아서."

"..."

"고마워."


조금 부끄러운 건지 주스를 마시며 컵으로 얼굴을 가리는 닝을 쳐다보던 사무가 입을 달싹이다 겨우 물을거야.


"무슨 일 있던건지 물어보면, 답해줄거야?"


또 머릿속에 떠오르는 츠무의 얼굴을 지워낸 닝이 머뭇거렸어.


"그냥,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


차마 네 쌍둥이를 짝사랑하고 있어서, 그리고 나는 내 가족의 골칫덩어리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서, 라는 말을 할수는 없어서. 그렇게 얼버무렸어. 하지만, 표정에서부터 모든 근심걱정이 드러났기 때문에 사무도 별달리 캐묻지 못했어.


"싫으면 말 안해도 돼."


그 말이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본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 상처를 계속해서 후벼파던 사람들을 떠올린 닝이 예쁘게 웃어줬어.


"고마워."


그 날은 많은 것들이 바뀌게 해준 계기가 되어줬어. 그 이후로는 말도 편하게 섞었고, 소소한 대화도 더 자주 나눴지. 꼭 식탁 앞에만 앉아야 말을 겨우 몇 마디 하는 사이가 아니라 말야. 부부라기보단 갓 사귄 친구 정도에 가까운 관계였지만, 굉장한 발전이었어. 양쪽에게 말이야.


————————


닝은 여전히 츠무와 마주하는 일을 피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가면 자기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켰어. 그렇게 짝사랑을 조금씩, 느리게나마 접어가고 있었지. 아츠무를 보면 여전히 아팠고, 여전히 설렜지만, 그래도 사무를 마주할 때만큼은 츠무를 떠올리지 않았어. 둘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아츠무를 너무 잘 아는 자신이 둘의 차이점을 너무 잘 꼬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다행스러웠지.


띵동- 


어느날은 저녁을 먹던 중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어. 어느새 서로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행위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 날들 중 하루였지.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종 소리에 먼저 몸을 일으키려는 사무에게 웃어주며 닝은 고개를 가로저었어. 안 좋은 예감이 들었거든. 그리고 제가 그런 촉이 서는 날은 항상 정해진 인물이었거든.


"내가 나가볼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닝을 시선으로 따르던 사무가 고개를 끄덕이곤 엉거주춤하게 일으켰던 몸을 다시 앉혔어. 물론, 닝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은 채로.


종종걸음으로 인터폰으로 향한 닝은 화면에 떡하니 보이는 인물에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어. 안 좋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지.


"누군데?"


경직된 몸을 사무가 놓칠리가 없었어. 그래서 의아한 감정을 담은 채 물으니 닝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답했지.


"아, 그 ... 우리 어머니야."

"그럼 얼른 열어드려."

"어? 어, 그치. 어 ..."


침을 꿀꺽 삼킨 닝이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문을 겨우 열었어. 닝이 이상하게 구는 건 사무도 눈치챈지 오래였어. 상견례날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닝은 부모님과의 사이가 그럭저럭이라는 츠무의 지나가던 말도 다 기억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째 그럭저럭이라는 단어로 표현 될 단어는 아닌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


"왜 이렇게 늦게 여니? 하여간 ..."


닝의 어머니는 닝을 흘겨보았어. 그 와중에도 닝은 그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지. 항상 그랬었어. 단 한 번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 했어.


"너는 말이다, 어째 ... 어머, 미야 상이 있었구나?"


냉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사납게 쏘아댈 것처럼 말을 하던 닝의 어머니는 어느새 식탁 옆에 서 있는 오사무를 보곤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어. 오사무는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애써 무시했지.


"안녕하세요."

"어머, 집에 있는 줄 몰랐네?"


오사무는 닝에게로 시선을 던졌어. 겁에 질린 눈빛은 결코 숨길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지. 역시나, 그럭저럭 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사무가 환히 웃었어. 조금은 쎄하게.


"웬만해서는 닝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요."


저를 향한 두 시선 모두가 혼란에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한 사무는 닝과 눈을 맞추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어.


"워낙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아, 그러니?"


사무의 눈웃음에 조금 긴장을 풀었던 닝이 본인을 돌아보는 어머니에 다시 굳어버리고 말았어. 또, 아무런 대꾸를 내놓지 못했어.


"뭐, 그래. 그럼, 이제 너도 출가외인이구나."


우아하지만 섬뜩한 웃음을 짓으며 하는 말에 닝은 눈물이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 출가외인? 나는 인정받고 싶어서. 나는 당신들의 회사에 기여를 한 당신들의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그래서 정략결혼에 응한건데,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뭐가 되는거야? 나는, 그러니까. 


"... 무슨 말씀 하시려고 오셨어요?" 

“음? 별건 아니고, 잘 지내나 보러 왔지. 이제는 우리 집안 사람도 아니네."


마치 장난인 것처럼. 여느 여성들의 어머니들이 하는 말인 양 하는 투가 너무도 아팠지. 닝이 또 답을 내놓지 못 한 채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서 있자 사무가 입을 열었어. 


"저녁 먹고 가실겁니까?" 

"응? 아니- 저녁은 이미 먹고 왔네. 짧게 얘기만 하고 갈 예정이었어서 ... 그럼, 이만 가보마." 


사무를 보면서는 그리도 우아한 미소를 짓던 닝의 어머니는 탐탁치 않다는 눈빛으로 닝을 위아래로 훑고는 현관문을 열었어.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까딱인 여자는 홱 고개를 돌려 닝을 쳐다봤어. 


"인사 안 하니?" 

"... 조심히 가세요 ..." 


그녀의 어머니는 구두 소리를 내며 또각또각 걸어갔어. 구두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다 더 이상 안 들릴 때까지도 닝은 텅 빈 문만을 쳐다볼 뿐, 문으로 손을 뻗지조차 못했어. 


무언가 있는게 분명했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아니었어. 멍하게 있는 닝의 뒤로 다가선 사무가 한 손으로는 어깨를 감싼 채로 다른 손으로 현관문을 닫았어. 


"밥 먹을까." 


그리 물었는데도 싫다 좋다 하는 답도 없어서 사무가 허리를 숙여 닝의 얼굴을 살폈고, 사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어. 일종의 안도감이 든 탓이었지. 


"닝아?" 


사무가 조심스레 손으로 닝의 볼을 감싸쥐어 올렸어. 금세 울상이 되어버린 얼굴에 망설이던 사무가 손을 내렸어. 


"내, 내가-" 


사무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닝의 등으로 손을 뻗어 토닥였어. 


"미안해."


저보다 한참 작은 존재이기에, 사무는 유릿조각을 다루듯 조심스레 손을 뒷머리로 옮겨 쓸어내렸어.


"괜찮아." 


오늘은 제가 해야 할 설거지를 대신 하고 있는 사무의 뒷모습을 닝은 가만 쳐다봤어. 어째 민폐만 끼치고 있는 기분이었지. 울보로 낙인 찍혔겠네. 사무가 굳이 제 위로 덮어준 담요만 괜히 만지작거렸어. 


"어머님이랑은 사이가 안 좋은거야?" 


그새 설거지를 다 끝낸건지 사무가 손을 털며 묻는 말에 닝이 머뭇거렸어. 츠무한테도 못 한 얘기들인데. 


"싫으면-" 

"아니야,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싶어서 ..." 


저가 정략결혼에 응한 이유들 중 하나를 떠올린 닝은 제 옆에 앉는 사무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렸어. 


"나는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우리 집안의 골칫덩어리였어." 

"늦둥이였다고 들었는데." 

"응, 늦둥이였는데 ... 저희 언니랑 오빠한테 모든 관심을 쏟으셨어서, 더 예쁨 받거나 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웠지. 내가 알기론 내가 실수로 생긴 애라서 날 때부터 구제불능의 골칫덩어리 정도로 낙인 찍혔더라구. 필요 없을 때, 원하지 않았을 때, 생긴 골칫덩어리" 


말을 마무리라도 하려는 투에 사무가 먼저 입을 열었어. 


"더 얘기해줄래?" 


일종의 확신일지도 몰랐어. 제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다가 타이밍 좋게 더 얘기해줄 수 있냐며 의사를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잔뜩 묻어있었음에도 저를 걱정해주는 걸까 싶은 착각이 들어서 생긴 확신. 언젠가는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냥 다 불어버릴까 싶어진 닝은 간략히 말해주겠다며 이야기를 시작했어.


"언니는 이사에 낙하산으로 취임시켜도 될 정도의 능력이 있었고, 오빠는 의사가 됐어. 이제 남은 건 나 뿐이었던거지. 나도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 했어. 쳐다도 안 봐준 가족들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단 한 번도 쳐다봐주지 않았으니까, 가족의 일원이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근데, 두 사람이랑 비교하니까 별거 아니더라. 백점을 맞아와도 상을 못 받았다고 눈 흘기고. 대학을 들어가도 장학금을 못 받았다면서 눈길도 안 주더라. 게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시하는 투로 말씀하시고, 흘겨 보시니까 범죄자라도 된 기분이었어.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도 죄를 지은 듯한 죄책감이 든달까. 지금까지도 그래. 아까 오셨을 때도 아마 이제 남의 가족일뿐이라고 선을 긋는 말을 대놓고 하시고 싶으셔서 오신 걸 거야. 뻔하지 뭐." 


소파의 어깨걸이에 등을 기댄 사무는 닝을 가만 쳐다보기만 하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줬어. 


"정략결혼도 마찬가지야. 먼저 제안을 하신거니까, 받아들이면, 이제라도 인정을 해줄까 싶어서 바로 응한건데 선 그을 생각만 하셔. 꼭, 골 아프게 했던 고물을 해치우기라도 했다는 듯이." 


사무의 얼굴이 조금 구겨져 있었어. 마지막 말 때문인지, 아니면 닝이 간략하게나마 들려준 이야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 


"태어난 게 죄같아. 이럴바에야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많이 서글픈 투로 말하는 닝을 보며 사무가 적절한 말을 고르다가 마침내 나지막하게 전했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저 사탕 발린 말일 뿐이라고, 제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리는 탓에 그를 또 귀찮게라도 할까 싶어서 하는 말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북받혀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 안아줄까?" 


조금 망설이던 닝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상체를 조금 일으킨 사무가 닝에게로 손을 뻗었어. 닝이 불편하기라도 할까 싶어서 다리를 뻗은 그는 그녀를 안고 머리를 쓸어주고 등을 토닥여주었지.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느끼할 법한 말을 담백하게도 하고 안아주냐는 말로 마무리까지 한 사무는 별 다른 말을 더 하는 대신에 입을 다문 채로 닝을 가만 안고만 있었어. 


백색소음외에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닝은 안정감을 느꼈어. 다정한 오사무의 품은 그가 말로 선사해준 따스함보다도 따뜻했고 편안했지.


————————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야네 기업에서 행사를 하나 주최하게 되었어. 그렇게 사무는 내내 닝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지.


닝은 당연히 행사고 뭐고 일단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어색했어. 그 일 이후로는 사무가 너무 신경에 쓰이는지라 결혼식 때처럼 그냥 보여주기 식일 뿐이야, 라고 생각을 하고 말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손을 잡고 모습을 보이는 그런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무의 말 때문에 닝은 응할 수 밖에 없었어.


"이젠 그 집 사람 아니라서 기쁘다고 보여줘야지."


그런 말에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냔 말이야.


화려하기 짝이 없는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무와 닝이 가장 먼저 마주한 사람은 당연히 미야네 부모님이었어. 츠무는 그냥 사무가 정략결혼을 덥석 받아들였다는 사실밖에는 알지 못 하지만, 미야 부모님은 아니잖아. 사무가 먼저 닝의 이름을 꺼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계셨지. 그래서 결혼식 때는 목각인형이 따로 없던 닝이 이제는 사무의 손을 잡은 채 떨어지지 않을 기세로 그 옆에 붙어있는 모습을 보곤 더 살갑게 닝을 반겨줄거야. 닝은 그 환경에서 의존할 사람이 사무 뿐이었기 때문에 그런거였지만, 그런 속내를 아실리가 없으니까 그저 둘이 사이가 좋아졌구나- 생각하셨어.


미야네 아버지는 오기 싫었을텐데 와줘서 고맙다고 저 뷔페 가서 시간 때우라는 농담이나 던지고, 미야네 어머니는 예쁘게도 꾸몄네- 잘 왔어- 하고 반겨줄거야. 그 장면이 너무 이질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좋아서, 닝은 사무의 손을 더 꽉 쥘거야. 낙동강 오리알 취급 받는 게 싫어서 그동안 이런 행사는 기피해왔었는데, 사무 때문에 끌려왔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고마울 수 없었지.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뒤, 저 멀리서 보이는 츠무를 발견한 사무는 이상하게도 그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어. 하지만, 닝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동안 아츠무도 닝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었으니까, 먼저 말을 꺼냈어.


"저기 츠무 보이는데."


그리곤 묘하게 굳는 얼굴과 얌전히 잘 잡혀 있던 닝의 손이 꼼지락거린다는 걸 눈치챘지. 뭐지, 둘이 싸웠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사하기 싫은거냐고 물으려던 찰나였어.


"어머, 닝도 왔구나?"


닝의 얼굴을 살피려던 사무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홱 돌아간 닝의 고개를 따라 시선을 돌렸어. 그러면, 닝의 부모님과 오빠 부부가 보일거야. 


"그렇게 오라 그래도 안 오더니. 미야네 집 사람 다 됐네?"


참고로 말하자면, 닝의 언니오빠가 바쁠 때 대신 오라고 몇 번 물어본 게 끝이야.


이 와중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떠나버리는 아버지와 누가 봐도 아랫사람 쳐다보듯이 흘기는 오빠의 시선에 닝은 미간을 찌푸렸어. 자신이 움츠러들 이유는 없으니까 더이상 울상은 짓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런 힐난에 쿨하게 대꾸할 정도의 용기는 한 순간에 생기지 않았고, 그 탓에 곧바로 반박하지는 못했어.


"이제는 미야가 맞으니까요."


그래서 저 대신 덤덤하게 대꾸해주는 사무를 닝이 멀뚱멀뚱 올려다봤어. 아주 올곧은 시선으로 닝 가족의 구겨진 얼굴에 맞대응을 하고 있는 사무를 보며 찰나의 순간에 닝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어. 자신은 뭘 해도 가족으로 인정 받을 리가 없는 곳과 계약서 하나를 들고 들어서자마자 가족 대우를 해주는 곳 사이에서 원하는 것은 분명했지. 


애초부터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사무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즉, 미야네 기업의 힘이 더 크다는 이야기였고, 제 자신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잘났고 못났고를 떠나서 눈치 볼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닝은 그제서야 깨달았어. 그래서, 닝은 남의 눈에는 소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본인의 의견만큼은 분명하게 표명하는 말을 했어.


"그동안 저는 그 쪽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안 갔던 거예요."


비소를 머금은 채 또 무어라 하려던 어머니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 했어. 아직은 그 정도로 간이 크진 않았지. 하지만, 마치 이를 무시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버린 닝은 사무의 손을 더 꽉 쥐었어. 


"이제는 미야 맞고, 저도 그 쪽이랑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연락도 하지 마세요."


몇 발자국 앞에는 저들을 발견한 듯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이는 츠무가 보였어. 닝은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한 상태라서 츠무를 굳이 마주하는 일은 원치 않았어. 하지만, 졸지에 두 쌍둥이가 도피처가 되어버린 닝은 사무의 손을 잡아 끌 수밖에 없었지.


"츠무한테 인사하러 가자."


먼저 츠무에게 인사하자고 대뜸 끌고 가는 닝의 행동에 사무는 의아함을 느꼈어. 아까는 별로 인사도 하기 싫다는 듯이 굳어버리다니, 갑자기 왜? 더군다나 반갑게도 닝에게 인사를 하고는 언제나 그래왔듯 별 쓰잘데기 없는 걸로 제게 시비를 걸어오는 츠무 때문에 둘이 싸웠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사무는 쉽게 눈치챘어. 그 탓에 닝 혼자 츠무를 피하려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곧 품게 됐지. 


그렇다 해서 딱히 캐묻는다고 말해주는 성정도 아니고, 본인이 하고 싶을 때만 대답을 해줄 닝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사무는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내어 보기로 할거야. 순전히 호기심 하나 때문에.


그렇게 사무는 츠무가 시비를 걸어와도 대꾸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어. 닝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눈에 담아야 했으니까. 츠무는 곧 저 돼지가- 하면서 닝에게 궁시렁거렸어. 사무가 없는 곳에서도 항상 그래왔듯이. 


"그러지 마. 이런데서 치고박고 싸우면 안되니까 그러는거잖아."

"어어? 넌 내 친구인데, 왜 내 편은 안 들고 이 돼지 편을 드냐?"

"오사무가 내 남편인데, 친구 편 드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치사해서 결혼을 하던가 해야지. 하고 또 꿍얼거리는 츠무를 보며 닝은 웃음을 흘렸어. 그리고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무는 몇 가지를 눈치챘어.


제 오른손 안에서 계속해서 꼼지락대는 손과 아츠무가 아닌 저 뒷편의 화려하게 장식된 벽에 고정된 시선, 그리고 미세하게 끝음을 떠는 닝의 목소리. 남편이라는 말과 친구라는 말을 특히나 강조하듯 딱딱하게 발음해내던 말투와 그 모든 이상행동에 화룡점정을 찍는 닝의 붉게 달아오른 두 볼.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것까지 발견해내고 나니, 결론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 저 때문이 아닌 것이 분명한 설렘의 원인을 찾는 일은 쉬웠지.


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리고, 그 사람이 아츠무였구나.


사무는 무의식적으로 닝과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어. 이제는 나를 좋아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너는 이미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근데, 하필 그 짝사랑 상대가 아츠무라니. 제가 처한 상황이 어이가 없는 동시에 모두 이해가 되고 말았어. 그렇게 서럽게 울던 그 날의 이유도. 츠무랑 친한데도 피하려 하던 닝의 행동들도. 모두 무엇 때문인지 잘 알 수 있었지. 너의 모든 노력들이 아깝게도, 너는 아직도 아츠무를 좋아하고 있구나.


"오사무?"


닝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던 사무는 제 쌍둥이는 츠무라고 부르면서, 아직도 저를 오사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또한 알아채곤 손을 움직여서 제 욕심대로 손가락을 엮어서 깍지를 꼈어. 영문을 알리 없는 닝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굳이 반항 않고 순순히 따라주었지.


"밥 먹으러 가자."


돼지랑 사느라 고생 많다면서 또 괜히 틱틱대는 츠무를 평소보다 더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본 사무는 닝을 그대로 뷔페 쪽으로 끌고 갔어. 


저 새끼 또 왜 저러냐는 얼굴을 하는 츠무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인 닝은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사무의 걸음을 따라잡으려 애썼어.


"갑자기 왜 그래?"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닝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우려가 묻어있어서, 사무는 차마 그 순간에 묻지 못했어. 항상 제가 닝을 챙겨주기만 하다가 이렇게 닝이 저를 챙겨주는 순간이 왔는데, 굳이 그 상황을 깨어버리고 싶지가 않았지. 그래서, 지금만큼은 처음으로 밥을 앞에 두고도 밥 생각이 안 났는데도, 사무는 제 입에서 나와도 가장 이상하지 않을 말을 했어.


"배고파서."


그 말에 웃어버리는 얼굴도 좋았으니, 제 의문 정도야 잠시 미뤄두기로 했지.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진 사무가 지루한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저를 힐긋거린다는 사실을 닝도 눈치 못 챌 리가 없었어. 그래도 바로 말을 안 하는 걸 보니, 행사에 대한 불만인 것 같지는 않아서 굳이 묻지 않았어.


두 사람 모두 어떠한 궁금증을 품은 채 서로의 눈치만 봤지. 그러다 집에 가기 위해 차로 돌아온 순간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닝이었어.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거라도 있어?"


좀 크게 움찔거리는 걸 보니,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했나봐. 아츠무와 오사무는 참 다를 뿐더러, 저들끼리 닮았다 말하면 기겁을 하면서도, 저런 사소한 행동들은 닮아 있어서 속을 읽는 행위가 어렵지 않았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도 되는데."


그리 말하면 곧바로 질문을 던질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예상치 못한 말로 사무는 말문을 열었어.


"물어보면, 꼭 답해주겠다고 약속해."


닝은 그 말에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을거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 가정사까지 오픈한 마당에 제가 꺼릴 이야기가 있을까? 굳이 대답해달라고 약속할만큼? 사실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닝은 고개를 끄덕이기로 결심해. 저를 4년 간 봐온 아츠무도 전혀 눈치를 못 챘는데, 설마 사무가 그런 걸 눈치챘겠어? 그것도 지금? 갑자기?


"알았어. 꼭 대답해줄게."


본인을 단순히 친한 친구로만 생각하는 츠무와는 달리 닝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눈에 담고 있는 사무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답이었어.


"너 츠무 좋아하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설을 조금만 더 깊이 담아두었더라면,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절대 대답을 해주겠다는 약속같은 건 하지 못 했을테니까.


확신에 더 가까운 물음에 그대로 굳어버린 닝이 사무를 힐끔 쳐다봤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는 굉장한 의지와 함께 앞만을 쳐다보고 있었지. 그 순간, 닝도 어떠한 사실을 눈치챘을거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주옥됐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지. 


그동안 저와는 전혀 다른 자아를 갖고 있기라도 한듯 움직여대는 마음에 대한 원망은 많이도 했었고, 제 말은 지지리도 않는 제 몸에 대한 불평도 많이도 했었지만, 지금만큼이나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어. 도대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탓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의 눈에 들어올 만큼 제 속이 티가 나고 말았다는거니까. 그것도 마음을 잘도 정리해나가고 있던 와중에.


어쨌거나 저쨌거나, 대답을 해주겠다고 약속은 했던지라, 피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닝은 사무를 따라 시선을 앞으로 옮기면서 간결히 답했어. 


"응."


그리고 정적. 제 복잡한 속사정을, 그리고 잘도 마음을 접을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인물에 대한 말을 어찌 전해야 더 좋을까 고민하던 순간, 사무가 다시 물어왔어.


"언제부터?"

"4년, 정도 됐나."


사무에게로 시선을 던진 닝은 그의 꽉 다물린 아랫턱에 힘이 들어가고, 손등에 드러난 핏줄이 터질 것만 같을 정도로 운전대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눈에 담았어. 그래서 닝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곤 곧바로 말을 이었지.


"그래도 정리중이야."

"..."

"잘 정리해가고 있어. 누구 덕분에."


누군지 묻고 싶어서 입을 달싹이는 사무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며 닝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됐어. 그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지.


"누구?"


닝은 사무의 옆얼굴을 지그시 쳐다보며, 약속했던대로 솔직한 답을 내어주었어.


"너."

"뭐?"


그 어느 때보다도, 짝사랑 때문에 펑펑 운 뒤에 츠무를 그 다음 날 마주했던 순간보다도 심장이 더 아프게 뛰어댔고, 숨이 조금 가쁘게 차오르는듯 했지만, 닝은 애써 제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어.


"네 덕분에 잘 정리해가고 있어."

"..."

"그러니까, 네가-"


침을 꿀꺽 삼킨 닝이 솔직하게 말하지 못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이 불러온 결과들을 떠올리며 제 솔직한 생각을 꺼내보였어.


"네가 나를, 좋아해주면, 그러니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표현해줄 수 있다면, 잘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닝은 이제는 힘이 풀린 사무의 아랫턱과 손을 대답 대신으로 받아들이고 창문에 기댄 채 앞을 바라봤어. 닝은 아마 사무가 끝까지 답을 내어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조용한 이동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했지.


집에 도착한 뒤에 차 문을 열어주겠다며 제 쪽으로 온 사무가 문을 열어주고는 가만히 서 있었어. 내리라는 건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건지.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인 것 같아서 닝은 사무를 올려다보기만 하면서 기다렸어.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는데, 전혀 예상치 못 했던 말이 들려왔어.


"좋아해."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나 변수가 많은건지. 왜 이렇게 예상 못한 일들만, 그것도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건지. 조바심이 났지만, 닝은 이미 목구멍까지 심장이 튀어나온 것만 같다고 생각했어.


"처음부터 좋아했어. 5년 전에, 아츠무가 지 짝지인데, 친해졌다고 소개해줬을 때부터 좋아했어."


사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좋긴 좋은데, 이건 예상 못 했었지. 그래서, 차마 무어라 답을 내놓지 못한 닝은 입도 뻥긋 못 하고 눈만 깜빡였어.


"계속, 혼자 좋아했어. 그러다 정략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먼저 네 이름 얘기했어."


그제서야 그동안 마음을 조금 찝찝하게 했던 의문이 풀렸어. 무너지기 직전인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건재한 기업에서 먼저 건네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가 안 됐었거든. 위태로운 기업이라도 하나 끌어오는 편이 아무리 이득이 된다 하더라도, 굳이 그런 제안을 할 이유가 없었는데, 정말 다른 이유가 있었구나. 더 사적인, 그런 이유가.


사무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해왔어. 그리고 닝은, 아직은 하기 어려운 말 대신에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운 감정을 담은 말을 건넸지.


"고마워."


오랜만에 밝게 반짝이는 두 눈을 마주한 사무는, 그 순간에 제 욕심만을 채우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고개를 틀어 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지. 불편한 자세로 숙이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워서 안아주는 건 나도 좋으니까, 일단 내가 차에서 내리는 건 어떨까? 하고 묻는데도 사무는 오히려 닝을 차 안 쪽으로 밀면서, 닝의 허리를 감아 안아서 본인만 더 불편해지는 자세를 한 채로 작게 속삭여.


"처음부터 좋아했어."


그 말을, 아직은 돌려줄 수가 없어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닝은 특별한 말 대신에 사무를 같이 안아줬어. 그리고 사무는 제 등을 토닥이는 차분한 손길에 얼굴을 닝의 목덜미에 더 뭉개고 말았어. 너무 행복했거든.


————————


그 뒤로는 사무가 정말 직진해오는거야. 일단, 인삿말이 오늘도 예쁘다 + 좋아해인거지. 끔찍한 이별을 맞았던 첫 연애때조차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서, 닝은 그런 말에 면역력 하나도 없어서, 사무를 마주치면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뒷걸음부터 칠거야. 츠무를 마주했을 때의 리액션보다 한참 격한 반응에 사무는 많이 뿌듯해했어. 마음을 접고 있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라고 생각했지.


어느 날은 또 예쁘다 예쁘다 말 하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뒷걸음질 치려는 닝이 방에 숨어버리지 못 하도록 사무가 붙잡았어. 


"내가 좋아하는 얼굴 더 보여주면 안돼?"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무한테 어떻게 아니라고 하겠어. 심장이 터져버리기 직전이라서 당장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은데, 제 팔을 붙잡은 그의 손과 제 발목을 붙잡는 그의 말 때문에 닝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다 느껴지는데도 그 자리에 서 있었어. 이러다 내가 녹아버리는 건 아닐까 따위의 걱정이나 하면서.


"좋아해, 닝아."


그 말에 놀라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사무는 조금 더 욕심이 날거야. 오래간 기다렸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에 닝의 페이스에 맞춰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멀리서만 봐야 했던 제 첫사랑이 이제는 제 마음에 대해서도 알아주고 있고, 이렇게 얼굴을 붉힐 정도로 받아주고 있는데, 조금은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그래서 고개를 숙였어. 얼굴을 가까이 하는데, 몸을 움찔 떠는 닝을 보곤 아직은 아니구나, 하는 이성을 붙잡았지만 말이야. 아직은 욕심 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구부정하게 굽혔던 상체를 다시 피려는데, 닝이 사무의 옷깃을 붙잡았어. 졸지에 멱살 잡힌 꼴이 되어버려서 사무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니까 닝이 머쓱하게 웃고는 사무의 옷깃을 잡았던 손을 놓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어.


"나도 좋아해."

"..."

"오사무."


그리 말하면서, 눈웃음을 짓는 닝을 마주한 사무가 욕심을 더 이상 억누르기는 어려웠어. 그래서 고개를 숙였고, 닝은 맞닿는 입술에 불평하지 않았고, 둘은 조금 오랫동안, 조금 많이 오랫동안 그렇게 서서 같은 템포로 숨을 쉬었어. 결혼식 날의 어색했던, 한 사람의 애정과 다른 한 사람의 서글픔이 숨겨진 찰나의 입맞춤과는 달랐지.


사무는 잠시 떨어지는 순간,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진 채 눈을 마주치지도 못 하는 닝을 향한 감정이 북받혀 올라서 무어라 말하려던 그녀를 막고 또 입술을 갖다 대었어. 고백은 이미 들었으니, 이 쪽이 더 절박했거든.


————————


이미 부부 관계인 사이에서 연인이니 어쩌니 하는 명명 따위 없이도 자연스레 많은 게 바뀔거야. 한 번은, 거실에서 둘이 꽁냥거리다가 닝이 졸려해서 난 먼저 자겠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가려 하니까 사무가 붙잡았지.


"우리 방으로 가면 안되나?"


애초에 우리 방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닝은 벙찐 채 대꾸를 안 했어. 그러고 있으니 사무가 너무 시무룩한 강아지처럼 쳐다봐서 닝이 결국 져주고 말았지만.


"오늘은 사무 방에서 잘까?"

"앞으로는 우리 방에서 자자."


그러니까, 부부는 맞긴 한데, 이게 이래도 되는건가 싶어서 닝은 또 망설여. 이게 그렇게 되도 되는건가- 하면서 눈을 도로록 도로록 굴리다가 다시 사무를 쳐다봤어.


"네 방을 우리 방으로 해도 되는데."


시무룩한 강아지 같은 얼굴을 또 하고 있는데, 닝은 차마 그 얼굴에 대고 응, 안돼- 라는 단호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어. 눈꼬리를 늘어트리고, 입술도 말아 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사무에게 뭐라고 해야하나 고민하던 닝이 마침내 입을 열었어.


"그건 나중에 정하자."


그 말을 하자마자 눈을 반짝이면서 그래그래- 하면서 본인 방으로 손을 잡아 끄는 사무 때문에 닝은 잠깐 혼란스러워져. 내가 속은건가? 에이, 설마- 하는데 갑자기 제 두 볼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해오는 사무. 속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으면서도 닝은 그냥 받아주기로 했어. 


좋으니까.


————————


그렇게 평온하게 잘 풀려가나 싶을 때, 또 일이 하나 생길거야. (이거 보고 싶어서 시작한 썰)


어느날, 닝은 친구 몇 명이랑 술을 마시러 간다고 말했어. 사무는 그저 알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렸어. 이제는 쿨하게 굴고 싶고, 없었던 일인척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있던 일을 없던 일 취급할 수 있겠어. 그래서 한참을 망설이던 사무는 닝이 겉옷을 챙겨 입을때서야 물어봐.


"츠무도 있나?"


가방은 귀찮아서 케이스에 현금 구깃하게 접어 넣어서 핸드폰만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닝이 사무를 올려다볼거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얼굴에는 조금의 불안감이 묻어나있지. 그 불안감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닝은 츠무랑은 원래 자주 봐왔다느니, 이제는 그냥 친구 뿐이라느니 같은 말은 굳이 하지 않았어.


"응. 있어."


그리곤 그래?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사무를 다시 불러서는 웃어줬지.


"이따가 전화하면 데리러 와줄래?"


전화할 정신은 있을 정도로만 마실거라는 약속이자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당부가 섞인 말이었어. 그 속뜻을 헤아리지 못 할 리 없는 사무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꼭 전화해라, 하고 강조해. 강아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는 닝은 사무가 손을 잡아 오는 것에 순순히 끌려가줘서는 뽀뽀도 가볍게 해줄거야. 그래도 성에 안 찬 사무가 한 번만 더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진하게도 입 맞추다가 닝이 겨우 밀어냈어.


"이러다가 나 늦겠어."

"뭐 어때."

"츠무랑만 만나는 거 아니라고 했지."


그 말에도 서너 번 더 입을 맞추고 나서야 사무는 닝을 놓아주었지.


그렇게 보내주기도 했고, 전화 하라는 약속도 받아내었지만, 그렇다 해서 불안감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야. 그래서 사무는 내내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지. 차마 문자라거나 연락같은 걸 하지는 못 하고 그냥 한 손에 계속 쥐고 있었어. 혼자 저녁 먹으면서도 앞에 핸드폰 놔두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기다리다가 마침내! 전화가 왔어. 티비를 보다말고 징징 울리는 핸드폰에 소파에서 튕겨나가듯이 일어나서는 차키 챙겨드는 사무.


"닝아?"

[ 닝 아니니까 그딴 목소리 하지 마라, 돼지야. ]


분명 닝의 목소리를 기대하고 전화를 받은건데, 대뜸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무는 인상을 구겼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면을 다시 확인하지만, [ 첫사랑 ] 이라는 글자들이 분명하게 반짝이고 있단 말이지.


"왜 네가 전화 거는데?"

[ 하도 주접 떨어서 주소 못 말할까봐 내가 했다. ]

"뭐?"

[ 됐어. 주소 불러줄테니까, 빨랑 데려가. 힘들어 죽겠어. ]


그러고는 불러주는대로 주소를 머릿속에 집어 넣으면서도 여전히 주접 떤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 못 한 사무. 뭔 주접? 하고 물어도 지 입 드러워져서 말 하기 싫다는 말이 또 이해 안 돼. 그래서 꼬치꼬치 캐묻는데, 그냥 닥치고 운전이나 하라는 말에 또 빡돌아서 싸우다가 싸우지마ㅠㅠㅠ 왜 싸워ㅠㅠㅠ 그러게 내가 전화한다고 했잖아ㅠㅠㅠ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겨우 전화를 끊었지.


뭐, 대충 자기 제어할 정도의 정신은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조금은 안심했지만, 여전히 도대체 뭔 상황인 건지 이해 안돼서 가속페달 밟는 사무. - 물론 준법정신은 있습니다 -.


그렇게 순식간에 고깃집에 도착한 사무는 가게 앞에 차를 세웠어. 문 밖에서부터 풍겨오는 고기 향에 나중에 닝이랑 둘이 와야겠다- 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지. 그리고 제 눈에 보이는 장면에 사무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어. 


"아 왔네. 닝아, 저기 돼지- 아니, 오사무 있다. 절로 가라."


닝이 츠무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 사무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버렸어. 그러거나 말거나, 츠무는 닝을 떼어내면서 강제로 사무 쪽으로 얼굴을 돌려줬지. 그랬더니 닝은 수줍게 웃어.


"사무다. 사무, 내가 전화한다고 했는데, 아츠무가 주접 듣기 싫다고 뺏었어. 나빠."


핸드폰 만지작거리면서 울상 짓는 닝의 팔을 잡아 당기는 사무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츠무를 노려보면서 닝을 제 품 안에 넣었어. 쌍으로 주접 떤다면서 츠무는 얼굴 구깃, 사무는 방금 그 장면이 진절머리 나게 싫어서 얼굴 구깃. 


"뭘 꼬라보는데."


언제나 시비를 먼저 거는 사람은 츠무. 언제나처럼 먼저 입을 여는 츠무에 또 받아치려던 사무는 제 품에 안긴 닝이 웅얼거리면서, 나 졸려- 우리 집에 가자- 하고 웅얼거려서 다시 입을 꾹 다물었어. 그 모습에 저게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 궁시렁거린 츠무는 제발 꺼져달라며 고개를 돌렸고, 사무도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보여 주고는 닝을 데리고 차로 향했지.


"사무, 와줘서 고마워-"


안전벨트 매주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닝 때문에 사무는 순식간에 화가 풀려버렸어. 안 그런듯 보여도 꽤나 단순한 편이지. 알딸딸하니까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또 사랑스러워서 사무는 또 별 말 못 해.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잖아."


그렇게만 말할 뿐이야. 그런 대꾸에도 친구들이랑 만나서 뭔 얘기했구, 고기도 맛있었으니까 다음에 둘이서 오자- 하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닝 때문에 사무는 또 웃어버렸어.


그래도 아까 본 장면이라던가, 전화를 왜 츠무가 건 것이냐에 관한 의문은 아직 안 풀렸잖아. 그래서 사무가 그거에 대해 언제 물어볼까, 지금 물어봐도 되려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제 옆자리에서 웅얼거리던 소리가 안 들려와. 잠들었나? 하는 마음에 슬쩍 돌아보면, 닝이 창문에 기댄 채로 잠들어있는 모습이 보였지. 그래, 술 깨면 물어보면 되지. 그 생각에 사무는 새어나오는 미소를 굳이 참지 않은 채 차를 몰았어.


그렇게 주차장에 부드럽게 차를 멈춘 사무가 자리에서 내려서는 반대편으로 걸어갔어.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어준 다음에 깨울까 말까 고민하던 사무는 그냥 안아서 데려가기로 해. 팔 하나로는 닝의 허리를 감고, 다른 팔로는 다리를 받힌 채 차에서 닝을 꺼낸 사무는 차키를 다시 넣을 수도 없어서 닝의 주머니에 넣고는 걸음을 옮겼어. 제 어깨에 기댄 머리는 꽤나 안정감 있게 뉘인채라서 흔들리지도 않았지. 평온하게도 새근새근 자고 있는 닝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사무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 채 엘레베이터를 기다렸어. 


그때까지도 좋았지.


엘레베이터가 도착하면서 기계음이 들려왔고, 또 버튼을 누를 때 삑- 하고 울리는 소리에 닝이 움찔거렸어. 사실 씻고 옷 갈아입고 하려면 깨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난 사무는 조심스럽게 닝의 얼굴을 살피는데, 정말 그 소리에 잠이 깬 건지, 닝의 눈이 반쯤 떠졌어. 


"잘잤어?"


그렇게 물으니 닝은 입을 오물오물. 무언가 말하려나 싶어서 꿀 떨어지는 눈으로 사무는 가만히 닝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기다렸어. 그 때, 닝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발음해냈어.


"츠무 ..."

"..."

"츠무 ... 고마워 ..."


흐흫 웃으며 얼굴을 어깨에 비비적거리는 닝과는 달리 사무는 그대로 굳었지. 제 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는 엘레베이터가 없었다면,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려서 동상이 되어버렸을지도 몰라.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로 몇 시간이고 서 있었을지도 모르지. 


"좋아해 ..."


왜냐하면, 그 뒤에 이어진 말에 누군가 제 뒷통수를 망치로 치기라도 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러곤 또 웅얼웅얼거리는데, 들리는 말은 몇 개 없었어. 츠무. 사무. 츠무. 츠무. 츠무. 좋아해. 고마워. 사무. 사무. 츠무. 그렇게 이어지는 불분명한 구조를 가진 단어들의 나열에 사무의 머릿속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어. 


"너두 나 사랑해?"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닝이 마침내 완벽한 문장을 이룬 말을 했어.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어 웃는 모습에 사무는 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닝의 몸을 더 꽉 쥔 채로 대답을 내어줬어.


"사랑해."


그 말에 만족한 닝은 한 번 더 흐흫-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어. 


이리저리 어지러워진 머릿속을 정리해보려 애쓰면서도 사무의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어. 우리의 방이 된 곳에 위치한 커다란 침대에 닝을 내려놓고, 그 옆자리에 걸터앉은 사무는 이불을 끌어안은 닝을 가만 내려다봤어.


나를 좋아해주는 줄 알았는데. 사랑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근데, 너는 나를 안 좋아하는구나.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알딸딸한 정신만으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을 토해내는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표현한 게 아닌데.


너는, 나에게서 다른 사람을 비추어보고 있었구나. 


너는, 아직도 아츠무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오사무인데."


정작 씻어야 할 닝 대신 화장실로 들어와 샤워를 하는 내내 사무는 생각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보았어.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원망스럽고, 지금까지 저들이 쌓아온 감정들과 관계는 무엇인가 싶은 마음에 회의감도 들고, 이해도 가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만큼은 확실했어. 정작 씻어야 할 닝 대신에 화장실로 들어와 샤워를 하는 내내 생각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본 사무는 확실한 단 하나의 결론을 내렸지.


오사무는 아직도 닝을 좋아해. 아니, 사랑해. 


그래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임에도 사무는 바깥 냄새가 온 몸에 배어버린, 술 냄새가 배어버린, 그리고 저를 사랑하지 않는 닝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어. 우는 것은 제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들까봐 눈물은 꾹꾹 참아낸 채로.


————————


닝이 눈을 뜬 시간은 아침이 아닌 4-5시 쯤의 새벽이었어. 옆에서 느껴지는 너무도 뜨거운 온기와 몸을 꽉 감은 무력 때문에 깨었지. 취하도록 마신 건 아닌지라 머리는 멀쩡했고, 거슬리는 것이라곤 숨만 쉬어도 맡아지는 알코올 냄새뿐이었어. 눈을 깜빡거린 닝은 어두운 창 밖을 한 번, 그리고 협탁에 있는 디지털 시계의 빨간 숫자들을 한 번 쳐다본 뒤에 일단은 씻긴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지. 


침대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닝은 꿈틀거리며 제 몸을 감은 사무의 두 팔을 벗어나려 하는데, 그를 깨우지 않고서야 못 일어나겠는거야. 그렇다고 이렇게나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저가 다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 하는 마음에 사무의 손가락 하나하나 떼어보려고 닝은 꼼지락거렸어. 그때, 사무의 손이 덥석 닝의 손을 잡아왔어.


당황한 닝이 고개를 돌려 사무를 쳐다봤어. 형형한 눈을 마주한 닝이 사무의 볼을 쓸어주었지.


"깨워서 미안."


답은 돌아오지 않았어. 술이나 마시던 저를 데리러 와줬는데, 잘 자던 그를 깨우고 말았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닝은 웃으면서 다시 눈을 감겨주려고 했어. 물론, 사무가 고분고분 눈을 감아주지 않았지만.


"나 씻고 오려구. 다시 자도 돼."


그리 말하면서 사무의 품에서 빠져나오려는데, 오히려 더 꽉 감아오는 두 팔에 닝은 당황했어. 잠결이라 그러나 싶어서 사무를 어찌 달래야 놔주려나 생각하는데, 잠 때문에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와.


"나를 좋아해주면 안되는거야?"


자다말고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이미 침대에서 몇번이나 뒹굴었으면서 얘가 뭔 소리를 하나 싶었어. 내가 분명 사랑한다고- 문득 떠오르는 고깃집에서의 제 주정이 떠올라서 닝은 인상을 찌푸릴거야. 그리곤 뜬금없는 사무의 말에 미간을 더 찌푸렸어. 그럼 너 말고 누구를 좋아하냐고 말하려는데, 사무가 다시 입을 열었어.


"츠무 놈 말고 나 좋아해주면 안되나? 왜 걔만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해줘."

"...?"

"나는 너 좋아하잖아. 나는 너 사랑해. 그러니까, 걔말고 나 좋아해줘."


나 좀, 나 좀 좋아해줘. 


그리 말하면서 더 이상은 덜 깬 잠 때문이 아닌 설움 때문에 갈라지는 목소리에 닝은 잠이 다 깰거야. 약간 남아있던 술기운마저 다 깨버렸지. 얘 울어? 그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어.


그 와중에 사무는 닝을 더 꽉 끌어안으면서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을거야. 나 좀 좋아해줘. 나를 좋아해줘. 내가 널 사랑하니까, 나 좀 봐줘. 그런 말들을 반복하면서. 


닝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어. 전 날의 기억이 다 남아 있는데,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건지 이해가 안됐거든. 누가보면 사무가 술이라도 마신 줄 알 지경이야. 이리저리 고민해보다가 혹시 츠무 껴안고 술주정 한 것 때문에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아츠무 껴안고 있던 것 때문에 그래? 그거는-"

"네가 걔가 좋다며."

"뭐?"

"네가 그 놈이 좋다며. 네가 ..."


차마 너도 나 사랑해? 라는 말에 대해서는 제 입으로 할 수가 없어서, 사무는 입을 꾹 다물었지.


"내가 언제?"

"네가 어제 엘레베이터에서 ..."


말하다 보니까 사무는 더 서러워졌어. 그 동안 계속 좋아해왔던 것부터, 지금껏 닝의 모든 애정표현이 오로지 저에게서 츠무를 비추어 본 탓이라는 생각에 더 말을 못 했어. 해명이라도 얻어보려다가 자기가 더 비참해지고 있었거든.


닝은 입을 꾹 다무는 사무를 보면서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볼거야. 분명, 사무가 데리러 와서 차에 타서 잠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었어. 아무래도 중간에 잠결에 뭔 말을 한걸까- 하는 가능성 밖에는 떠오르지 않지. 뭔 해명을 하려 해도 뭔 일이었는지 알아야 해명을 할테니까, 닝은 사무에게 캐물었어.


"내가 엘레베이터에서 뭐라고 했는데? 잠결에 한 말인거야?"


말하기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 닝은 새삼 사무가 츠무랑 다르다는 걸 깨달아. 츠무는 지가 못 참겠으면, 일단 생각나는대로 다 내뱉는 성격이었거든. 얼마 전에도 츠무랑 잘 사귀고 있는 그 선배의 연애 상담을 들어줬는지라 잘 알고 있었지. 신경을 긁으면 아주 줄줄이 다 늘어놓는다는 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도 그러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건 아닌가봐. 그래서 닝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어.


"얘기를 해야, 내가 설명을 해주지."

"..."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설명 해줘. 응? 오사무."

"사무라고 해줘라."


아주 강아지가 따로 없지. 입꼬리를 올린 닝은 애같이 구는 사무의 요구를 고분고분 따라줬어.


"사무야, 내가 뭐라고 했는지 얘기해주면 안될까?"


그제서야 입술을 꾹 말아문채로 있던 사무가 이야기를 해줬어. 뚝뚝 끊기는 꼴이 어지간히도 그 상황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대강 맥락은 짚어낼 수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츠무를 좋아한다고 했고. 그 다음에는 너도 나 사랑해? 라고 물었다는거였지.


고깃집에서 츠무에게 오래간 늘어놓은 주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닝은 제 머릿속이 어떠한 사고회로를 거친 건지 쉬이 알아낼 수 있었어. 그래서, 제 알딸딸한 정신이 늘어놓은 말들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무에게 더 미안해졌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럼 그런 뜻 말고 뭐가 있는데."


틱틱거리는 말투에 미야는 미야구나 싶으면서도, 닝은 사무의 볼을 살살 쓸어주며 말을 이었어. 어쨌거나 죄인은 자신이었으니까.


"츠무 덕에 너를 알게 된거잖아. 츠무 덕에 너도 나를 알게 된거고. 츠무 덕에 이렇게 너를 만났으니까, 너랑 사랑하고 있으니까 고맙다고 한거야. 그래서, 친구로서 좋다고 한거고. 꼭 연인 관계로 바라봐야만 좋아한다고 하는 거 아니잖아."

"니 방금 뭐라고-"

"사랑한다고 말했어."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잘도 보이는지라 닝은 웃음을 흘렸어.


"내가 어제, 술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주정을 많이도 늘어놨거든. 술에 취하니까, 아츠무가 너로 보이는 거 있지? 기겁 하는 애 껴안고 사무야, 오사무, 사랑해. 오사무 내가 많이 사랑해. 진짜진짜 사랑해. 라고 계속 말했어."

"..."

"하도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라고 쫓아내려길래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가 또 전화에 대고 몇 시간 동안 주정 떨거같다고 츠무가 폰도 뺏어가서 전화한거야. 츠무한테는 절대 안 말할 거긴 한데, 사실 걔 말이 맞아. 나 전화 들었으면 술김에 사랑고백 늘어놓느라 집에 못 왔을 걸."


그의 얼굴을 만지는 제 손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나는 것에 대해서 닝은 굳이 코멘트를 하지 않았어. 본인도 사무가 너무 좋고, 사무에게 너무 고마워서, 밤중에 혼자서 많이도 울었었거든.


"아마 술김에 널 츠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가, 다시 너인거 알고 너도 나 사랑하냐고 물은걸거야. 술이 문제지, 술이."

"나 좋아해주는거야?"

"사랑한다니까."


그 말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어. 굳이 답은 필요하지 않아서, 닝은 그동안 꾹꾹 아껴왔던 말을 그제서야 해줄거야.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용기 내서 말 할 걸, 이라는 작은 후회를 하면서.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

"정말이야, 고마워."


어느새 제 손에 익숙해진 얼굴형을 따라 눈물을 닦아주면서 닝은 어둠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사무의 눈을 곧게도 마주했어.


"내가 많이 사랑해, 오사무."


그 말에 사무는 닝의 얼굴을 두 손에 쥐고, 위치 정도야 눈 감고도 아는 입술을 찾아 깊은 입맞춤을 나눈 다음에서야 답을 돌려줬어.


"사랑해."


그 뒤로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 연신 말을 반복하는 사무를 닝은 한참동안 달랜 후에야 겨우 씻으러 화장실로 향할 수 있었지. 물론,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서는 사무를 말리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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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 사이다니 뭐니 하기에는 닝이 굳이 싸워서 이기자! 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딱히 대면하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가족이라는 인간들이 참 구질구질한지라 괜히 우월감 느끼려고 어떻게든 영향을 뻗치려 했을거야. 왜? 오사무가 다 말해버렸거든. 뒤끝이랄까. 그래서 이미 미야 부모님 선에서 커트해버렸지. 투자 빠져도 좋으면, 어디 한 번 닝한테 가보세요 ^^ 상황이 된거야. 폭삭 망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의 리스크를 걸리가. 그래서 남남으로 깔끔하게 살아갈거야. 어차피 닝에게는 가족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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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아들 하나 낳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들은 오사무를 닮았어. 그래야만 해. 성격도 오사무랑 비슷하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닝도 섞였으니까 사무가 어렸을 때처럼 천방지축 미운 5살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거.


그래도 장난기는 마찬가지라서 과격하게 놀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덕에 잘 놀아주는 츠무랑 쿵짝이 잘 맞을거야. 가끔은 츠무가 놀러와서 아들이랑 짜고 사무한테 장난 치는 바람에 뒷목 잡는 거 보고싶다. 계속 뭔 말만 하면 왜? 왜? 왜? 왜? 하고 묻는다거나, 종이 찢어서 작은 공 만들어서 던지는 그런 유치한 장난.


닝이 와서 아빠 괴롭히지 마- 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집을 지저분하게 만들면 안되지- 하고 말하면, 또 고분고분 듣는 사무네 아들과 츠무. 근데, 사무가 말하면 아무리 뭐라해도, 닝이 화낼거라고 말해도 안 듣는거지.


아들은 사랑둥이였으면 좋겠다. 닝은 사무 닮았다고 신기해하면서 무한정으로 예뻐해주고, 사무는 닝이랑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아서 퍼주지 않을까.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닝은 가족이 너무너무 소중하고, 자기가 관심 못 받고 컸으니까, 엄청 예뻐할거야. 부둥부둥,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다 박수쳐주고 예뻐해주고 칭찬해줘.


한 5살? 쯤에도 집에 있을 때는 아주 옆에 끼고 살지. 주말이 되면, 닝이 사무는 쳐다도 안 보고 아들한테 집중해. 책 읽어주고, 놀아달라면 놀아주고, 그림 그려서 가져온 애기한테 너무 잘 그렸다고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하고. 사무는 아무리 봐도 저게 공룡인지, 불인지, 코끼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들 예뻐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딱히 별 말 안 하고 지내는데, 어느 날은 사무도 닝과 붙어있고 싶은 욕심이 유독 커진거야.


내 연인인데, 내 아내인데, 내 사랑인데. 왜 나는 둘이 홈데이트조차 한 기억이 까마득한 것 같지? 하는 의문이 들고 만거지. 붙어있는 시간이라곤 고작 밤에 방에서인데, 그때도 닝은 너무 피곤하다고 하니까 금방 재우게 되는 일이 다반사인 탓이야.


“아들.”

“웅?”

“아빠가 엄마 좀 빌려가면 안될까?”

“시러!”

“왜?”


아들도 미야인데다가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란 덕에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어.


“엄마는 나를 더 좋아하니까!”


그동안 츠무한테 유치하네 어쩌네 했던 사무지만, 자존심이 긁혀버리고 유치한 마음이 커지고 말았어.


“엄마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데?”


그렇게 자존심 배틀이 시작되었지.


“엄마는 날 더 좋아해!”

“아니야.”

“그치만, 엄마는 나랑 더 오래 있잖아!”


닝의 이성을 물려받은 아들은 그 와중에 사실만을 말해버려. 그리고 정말 닝은 사무랑 보낸 시간보다 아들이랑 보낸 시간이 더 긴 상황이라서 사무는 차마 반박을 하지 못 했어.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더 좋아해.”

“아닌데? 왜? 왜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해?”

“아빠가 엄마 더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


그렇게 유치함의 극을 달려버리는 사무와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얼굴이 어두워지는 아들. 아빠가 ... 엄마랑 더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면 어쩔 수 없는데...!!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닝은 제 눈 앞에 보이는 이상한 장면에 고개를 갸웃거렸어. 제 남편은 왜 아들 앞에 앉아서 저렇게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거지? 그것도 저렇게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애 앞에서? 둘이 뭐하고 있던거냐고 물을 틈도 없이 아들이 달려왔어.


“엄마!”

“응?”

“엄마는 왜 아빠 더 좋아해? 나 더 좋아해줘! 내가 엄마 더 좋아하는데!”


닝 품에 안겨서는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아들 때문에 사무가 더 당황했어. 아니, 울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한편, 닝은 애가 참 지 아빠같은 이유로 운다 싶었지.


“네 아들이 맞긴 하네.”

“어?”

“아냐 ...”


그렇게 닝이 한참동안이나 우는 아들을 안아 달래주면서 아니야- 엄마가 우리 아들이랑 아빠 둘 다 좋아해- 하고 말할거야. 물론, 둘다 말고 날 더 좋아해줘! 하고 선언해버리는 아들에게 그래그래- 하고 일단 눈물부터 잠재우기 위해 대답해준 닝 때문에 사무는 또 괜히 상처받았지.


아들은 어리지만,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얻고 싶은 답을 얻어낸 뒤에는 눈물을 뚝 그쳤지. 사무는 어이가 없었지만, 닝이 이런 거로 울지마- 엄마는 우리 아들 사랑하니까, 알겠지? 라고 말하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어.


그래놓고 아들 잘 때, 딱 둘만이 남았을 때 어떻게든 자기를 더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사무는 온갖 수를 다 쓰지. 그리고 처음에는 아들 사랑하는 거랑 남편 사랑하는 거랑 어떻게 똑같아 ... 하면서 한숨을 쉬다가도 닝은 기어이 사무가 원하는대로 사무 더 사랑하지, 사랑해, 하고 말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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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선댓후 ㄷ감상하겠숨다!!!!(๑`・ᴗ・´๑)
3년 전
독자2
선생님,,,너무 좋아요,,,,,ㅎㅏ,,,,,ㅠㅠㅠ❤❤❤
3년 전
독자3
선생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3년 전
독자4
흐헤 간지러워
3년 전
독자5
와 센세👀✨
오늘부로 제 최애썰로 바꼈어요..!!!!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 이런 갓썰을 써줘서 감사합니다🥺💖

3년 전
독자6
센세 정말...... 첨에 캐해부터 썰까지 전부 완벽해요 빛난다 썰이..... 진짜 너무 ㅠㅠ 오늘부터 제 최애썰.... 매일출첵할게요 하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 오사무 퓨ㅠㅠㅠㅠㅠㅠ 퓨 😭😭😭❤🧡🧡💛💛💜🧡❤🖤
3년 전
독자7
와●˙^˙● 이거 제 최애썰이였는데...감사해요 센세😭😭😭😭
3년 전
독자8
으어어어어ㅠㅠㅠㅠㅠ 오사무 최애녀 죽어요 죽어 ㅠㅠㅠㅠㅠ 사랑한다 오사무 백년해로해라ㅠㅠㅜㅜㅜㅜ
3년 전
독자9
하앙하앙 글잡 오셨군요 대애박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3년 전
독자10
센세... 나 울어... 이런 갓썰이라니... 흐어어어ㅓ어ㅓ어 ㅜㅠㅜㅠㅜ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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