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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년 전 (2014/10/01) 게시물이에요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이 사랑을 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특정한 문화적 시기, 

어디에서나 감상적인 마음을 찾아내 숭배하는 문화적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의 동기가 된 요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사회가 아니었을까?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라면 내가 그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알랭 드 보통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벚나무 밑에서
한 젊은 여자가 울부짖고 있다
제 가슴을 쥐어뜯는다
얇은 나일론 블라우스가
몰려 서 있는 은빛 안개를 흔든다

아침이 그치고
여기저기 젖은 창마다
푸시시한 얼굴들이 내걸린다
기웃거리는 은빛 안개

젊은 여자가 길고 높은 목소리
벚나무 굽은 가지를 흔들며
젖은 창마다 급히 달려가다가
오만하게 솟은 벽에 부딪혀
부스스 부서져 내린다
피가 흐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젖은 창들이 스르르 닫히고
여자의 옆에 팽개쳐진 잡동사니 그릇들에
이제 일어선 햇빛
핏빛으로 반짝이며 고여 들 뿐,

우리들의 벽은 튼튼하고 튼튼하다


- 한 여자가 있는 풍경 / 강은교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깊은 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처럼
험한 기슭에 꽃 피우길 무서워하지 않는 꽃처럼
길 떠나면 산맥 앞에서도 날개짓 멈추지 않는 새들처럼

그대 절망케 한 것들을 두려워 하지만은 않기로
꼼짝 않는 저 절벽에 강한 웃음 하나 던져 두기로
산맥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기로


- 다시 떠나는 날 / 도종환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가슴으로 걸어오던 목소리 
그리움 삼키며 기다리는 밤 
기억에서 두근대는 아득한 음성이 
하늘빛 환청으로 걸어왔다
  
어둠에 귀를 세운 기다림을 비추다 
하얗게 지쳐버린 달이 잠들면 
회상으로 놓인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목소리 / 이일영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99퍼센트의 연인 만약99퍼센트의 연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1퍼센트의 부족함 때문에 미쳐버릴지도 몰라.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이 사라졌을 때처럼 

온 마음이 그 1퍼센트에만 쏟아져서, 

99퍼센트의 사랑을 놓쳐버릴지도 몰라. 

만약 49퍼센트의 연인을 만난다면, 

부족한 51퍼센트보다 충족된 49퍼센트에 대해 감사할지도 몰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 모른 척도 하면서, 

따로 또 같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알아, 인간은 99퍼센트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거. 

알면서도 나는 왜 바라고 있는 걸까. 

어째서 포기가 안 되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더욱.


- 생각이 나서 中 / 황경신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사랑이 식은 후 그 사람의 표정이, 몸짓이,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느냐고 나는 통탄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정신과 감각을 뒤흔드는 바이러스가 

어느 날 저절로 빠져나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잠시 우리는 감염되었고 사랑이 그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아우라를 드리웠다.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내 앞에 가져다준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죄가 없고 차라리 사랑에 감사하기로 했다.


- 나라는 여자 中 / 임경선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한 섬의 보채는 아픔이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에게로 가네

한 섬의 아픔이 어둠이라면 
다른 섬의 아픔은 빛

어둠과 빛은 보이지 않아서
서로 어제는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지었네

지었네
공기는 왜 사이에 흐르는가
지었네
바다는 왜 사이에 넘치는가
우리여 왜
이를 수 없는가 없는가

한 섬이 흘리는 눈물이 
다른 섬이 흘리는 눈물에게로 가네

한 섬의 눈물이 불이라면 
다른 섬의 눈물은 재

불과 재가 만나서 
보이지 않게
빛나며 어제는 가장 따스한 
한 바다의 하늘을 꿰매고 있었네


- 섬 / 강은교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 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그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 


- 적멸 / 강연호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심장을 만듭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색칠을 합니다

원래의 심장은 
지난 여름 장마때 
피가 모조리 씻겨 빠졌습니다

그리고 장마 뒤의 불볕 속에서 
내 심장 
빈 껍데기만 남은 그것은 
허물처럼 까실까실 말라버렸습니다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된 심장 
구겨 뭉쳐 쓰레기통에 내버린 심장 
한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심장을 달랍니다

드리고 말고요 
어렵잖은 일입니다

당신의 맘에 꼭 드는 
예쁘장한 심장 

어두운 가슴 속에 
감추어 둘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쩨쩨하게 혼자 
독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 둥둥 하늘에 띄우는 심장 
떠다니다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심장 
오늘 나는 그 풍선 심장에 
곱게 곱게 색칠을 합니다


- 풍선 심장 / 이형기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다시 설레는 봄 날에 / 김용택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너를 바라보고 살고 있다
너를 생각하고 
너를 사랑하면 
나에게는 희망이 다가오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내것이 된다

내 마음속에 
눈빛 스치며 웃고 있는 너를 
못견디게 못견디게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하기 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너를 사랑하지 못하면 
내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작아지고 
초라해져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 짙은 그리움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어디를 떠나도 달 곳이 없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캄캄한 어둠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다
나는 내 마음을 물들이는 
그대의 사랑을 받고 싶다


- 내 마음을 물들이는 그대의 사랑 / 용혜원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그리움도 이렇게 고이면 독이 된다
네가 떠나면서
나는 흉가로 남아
황사의 날들을 지나며 한 방울
독의 힘으로 눈뜨고 있었다
첫아이를 위한 태교처럼
그리움을 다스렸다 이슬을 보면
아지랭이를 떠올렸다 바람에 날리는 
풀씨를 보며 산맥의 뿌리를 생각했었다
일어나는 먼지를 들판의 기침으로
여기기도 했었고
그러나 흉가에서 내 몸 속에 고이는 
물은 피가 되지 못하고
독으로 변하고 있었다 불똥만 닿아도 
폭발하고 만다는 그 푸른 독으로
눈물 만큼 고이고 있었다
봄날은 고단하게 그렇게 지나갔다
독은 아직 고요하다


- 적막강산 / 이문재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그래그래 그때 그가 말했다.

나는 너를 영원히 마음에 껴안고 갈 거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그래.

그때 그가 말했다.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날들이 

아주 오래 이어진다고 해서 

이를테면 십 년쯤 소식만 겨우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너를 잊은 건 아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그래. 

그때 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벗지 못할 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켜갈 모든 것에 네가 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그래. 

순간은 진실하다. 

그리고 순간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그래그래.


- 생각이 나서 中 / 황경신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목숨 다한 낙엽의 
젖은 흐느낌 

그렁그렁 바람을 타고 
알싸하게 
단풍향기 비처럼 담기며 
가을이 가네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세월에도 
흔들리는 마음 들키지 않으려 감추어 보지만 

마른 풀처럼 
애틋한 기억들 그대를 부르며 
무심히 밟고 가는 가을의 발자국 

더는 아프지 말라고 
알싸하게 바람에 안기어 

수줍은 가슴은 
그저, 
세월의 작은 도랑을 건너 
마음으로 앓는 계절이어라


- 가을 앓이 / 안경애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번개가 피뢰침을 타고 내려오듯 
사랑도 눈을 타고 내려온다
와서 다짜고짜 불을 질러놓고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다가 
마침내 눈을 멀게 한다


-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 이재봉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때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도 한다는 

진부한 운명론적인 말을 결코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 겨울과 봄을 거치며 시간의 흐름이 확실히 나를 

그 이전과는 다른 장소에 가져다놓았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냥 ‘묵혀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세월의 흐름이 안겨준 재생력에 겸허히 감사해야만 했다. 

스물두 살의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 나라는 여자 中 / 임경선




징검다리 건너 가슴으로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다 | 인스티즈


'우리 이제 헤어져요' 
지난 여름 뜨거웠던 사랑은 
빛 바랜 추억에 입 맞추고 
낙엽으로 이별을 하였다 
사랑이 낙하하였다 
바닥까지 떨어짐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 낙엽 / 공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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