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만 틀면 떠들어대는 얘기는 온통 가정폭력 피해자 어린 딸이
의붓어미 매질에 숨졌다는 얘기였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뒤집어엎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과
자신의 일 인냥 눈물을 흘려주는 이웃들의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온다.
집 근처 큰 도로 한편에도 딸을 죽인 의붓어미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플랜카드와
어린 딸에 대한 연민을 표하는 플랜카드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플랜카드를 볼 때마다 연민이 담긴 한숨을 짓지만 난 오늘도 어른들의 겉치레뿐인 계몽에 한숨짓는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한숨은 더 탁해져 짙어진다.
집 대문은 이미 다섯 발자국도 채 남지 않았지만
가방끈만 고쳐 쥔 채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멎기를 기다린다.
술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몸을 들였다.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눈 옆을 스쳐 지나가며 날카로운 소릴 내며 깨지는 술잔이 날 위협했다.
잠들지 않았구나 하는 사실을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나는 다시 위험으로 둘러싸였다.
큰 손은 높은 언성은 나를 위협하는 현관은 막다른 길이었고
결국엔 또 피로 물드는 셔츠를 내려다보며 술에 취해,
제풀에 지쳐 저 괴물이 잠들 때까지 눈만 꾹 감고 버텼다.
경찰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사람들은 날 위해선 울어주지 않는다.
세상은 바뀌는척하지만 드러난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매질했다.
셔츠에 핏자국이 선명한데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방안에도 지친 몸을 맘 편히 기댈 곳이 없었다.
숨을 곳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낡은 옷장 문을 열곤 그 안에 기어올라가 다리를 접어안은 채로 눈을 꾹 감았다.
주위가 온통 어두웠고 조용해졌다.
눈을 꼭 감고 엄마를 생각했다.
그다음엔 내 모습을 보고 걱정해줄 재환이의 눈을 생각했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내 공간을 생각했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더니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져 눈 뜨기가 힘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것 같은 눈두덩이를 매만지다가 천천히 다시 긴장을 잡고 옷장의 문을 열었다.
.
.
.
눈앞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하얀 벽과 바닥 온통 하얀 방에 유일하게 칙칙한 내가 옥에 티같이 느껴질 정도였기에
무작정 눈앞에 보이는 하얀 문을 열고 나가니 또 온통 흰색이다.
처음 본 거리와 처음 보는 사람들
이상할만치 고요한 이곳은 정말 페인트를 쏟아부은 듯 흰색뿐이었다.
긴장되는 느낌에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길 한가운데서 눈동자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는데
문득 나에게 닫는 시선을 느꼈다.
하얀 세상은 그를 위한 배경인가 싶었다.
구릿빛 피부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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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앞으로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걱정되지만
잘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