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을 위한 지침서 05]
나는 쉽사리 손잡이에 손을 올릴 수 없었다. 꼭 남의 집인 것처럼, 더 분명하게 말하면 이홍빈의 집인 것처럼 나는 집안과 마주하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입술 새로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그렇다고 집 앞에서 밤을 샐 생각은 없었다. 결국 난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손을 뻗어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몇 자리 되지 않는 번호를 전부 누르고 도어 록을 닫으려 하자 기계덩어리 주제에 내 마음을 아는지 뻑뻑해 잘 내려가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는 낭랑한 소리와 함께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찬 손잡이가 손에 닿으며 미지근해졌다.
방안은 깜깜했다. 열어둔 창문 때문에 바닥이 차갑게 식어있었고 누가 봐도 반나절 사람 빈 집이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침대에 주저앉았다. 가방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 듯 내려놓았다. 가방의 버클이 바닥에 부딪히며 큰소리가 났다. 소리에 반응하듯 가느다란 빛이 새어나왔다. 빛의 근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울컥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기운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침대 근처에 컴퓨터를 놓은 것이 편하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멍청해서 눈물이 났다.
부팅은 전부 끝났을 것이다. 얼굴을 가리느라 화면이 지금 무슨 상태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다. 불을 켜지 않은 것은 잘 한 짓이었으나 이홍빈이 나를 못 볼 리가 없었다. 이홍빈이 밝히는 나는 충분히 그에게 비추고도 남았다. 좁은 방안에 피할 공간은 없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가를 소매로 닦아냈다. 길게 마신 숨은 급하게 날숨으로 토해졌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불안한 입술을 열었다.
“밖에 추워서 콧물이 다 나네. 네 말 안 듣고 짧은 거 입고 나갔으면 진짜 추웠겠다.”
일부러 과하게 양 손으로 팔을 쓸어대며 연신 춥다고 중얼거렸다. 내가 그러는 동안에도 이홍빈은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보고만 있는 게 확실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허공에 말한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벗으며 옷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반나절동안 그렇게 듣고 싶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옷 갈아입고 나와서 나랑 이야기 좀 할까?”
나는 응, 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춥다니,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니, 별의 별 것은 보고하듯 줄줄이 읊어댔지만 이홍빈의 말 한마디로 어설픈 거짓말이 벗겨졌다. 가끔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무서웠는데 지금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나는 편한 차림으로 다시 이홍빈을 마주했다. 옷을 갈아입으며 지운 눈물자국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반나절 동안 누나 못 봐서 심심했나.”
“어, 심심했어.”
어색하게 짓던 웃음은 사그라지고 난 의식 없이 웃을 수 있었다.
“나도 네 말 안 듣고 따라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래 큰일 났겠지. A 그 놈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내가 화를 내고, 너도 화를 냈겠지. 그리곤 미안하다고 사과 하는 내게 너는 물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미안하냐고, 혹시 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냐고. 그럼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지. 그것에 부정을 못하겠지. 나는 혼자 생각을 이으며 왜냐고 물었다. 이것은 순전 내 생각이고 난 이홍빈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
“네 친구라기에 보고 싶었는데 친구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일반적인 친구랑 다르긴 했지.”
“너 입장 곤란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나는 의자에 몸을 뉘이듯 기대어 앉고 책상을 쳐다보았다. 내 입장이 곤란해지는 거라면 이홍빈을 남들에게 내보이는 것인가? 이홍빈은 그런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한 것인가? 아직도 그 날의 밤에 자신이 한 말을 어딘가에 담아둔 것 같았다.
“지금 피곤하고 힘들 거 아는데, 말 짧게 할게.”
“아냐, 길게 해도 돼.”
마음을 고쳐 잡았다. 다시 그렇게 물어온다면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대답할 거다. 네 존재가 부끄럽지 않다고. 그렇게 대답할 것이었다. 설령 잠깐의 그런 마음을 품었더라도 지금이라면 또렷하게 말 할 수 있었다.
“배운다는 것에서 혼란이 많았어. 내가 느끼는 그게 뭔지. 확실하게 딱 정의 내려져 있는 것을 느꼈을 땐 아, 이게 이거구나, 싶어서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뭐라고 뜻을 매길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있더라.”
“그게 뭔데?”
“뭐라고 말할 수도 없어. 말하면 너무 길어. 여러 가지가 섞인 것 같아.”
“나한테 말해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이홍빈보다 백배 멍청하다고 해도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못해도 내가 좀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었다.
“보면 좋아. 그런데 가끔 미워질 때가 있어.”
“어디서 그런 걸 느꼈어?”
“잠은 엄청 많아가지고 만날 깨우게 만들고, 집은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취미인데다 잘 씻지도 않아. 빨래도 자주 안하고. 그러면서 입을 옷 없다고 투덜댄다.”
이홍빈은 내 말에 대답하는 것 대신에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대답 대신의 말, 난 그가 누굴 가리키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소한 거에도 소탈하게 잘 웃고, 보면 기분 좋아지게 하고. 걱정 시키는 동시에 자꾸 생각나게 하고. 다른 일을 해도 생각나고. 내가 그 사람한테 바라는 것도 생기고.”
“그래서, 그 사람 예쁘냐?”
“아니, 못 생겼어.”
나는 화면을 한번 툭 쳤다. 빈말이라도 예쁘다고 해주면 어디에 덧이라도 나나.
“난 너 좋아.”
“나도 좋다니까.”
“네가 잔소리 하는 것도 좋아.”
“나도 네가 미운 짓하고 걱정시켜도 좋은데,”
“나는 너를 사랑해.”
“나도 너를……, 응?”
투덜대던 목소리는 내가 뱉은 말에 놀랐는지 더 이상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덜컥 내어버린 말이긴 했으나 뒤늦게 올라오는 열기에 나는 푼 머리를 들어 올려 창문에 가깝게 몸을 돌렸다. 찬 공기가 목을 덮고 몸을 식혔다. 얼굴에 오른 붉은 열이 슬쩍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나한테 더 할 말 없어?”
밀려온 부끄러움은 그를 대면하던 나를 수그러지게 만들었다. 의자를 완전히 창가 쪽으로 돌렸다. 불빛은 단 한 번의 깜박임 없이 옆으로 돌아앉은 나를 보았다.
“못 생겼는데 예뻐.”
짧게 끝난 말 뒤로 이어진 불빛의 색은 조금 전의 것과 달랐다. 무언가 싶어 눈을 돌려 화면을 바라보자 인터넷 사전이 들어차 있었다.
사랑 [명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유의어 : 정애, 친애,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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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님, 이서니님, 밑입술님 암호닉 신청 언제나 감사합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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