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해진 사자후 영상
심상정(沈相奵, 1959년 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이후에,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노회찬 등과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또 이정희, 유시민등과 통합진보당을 창당하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맡았으나 부정 경선 사건이 발생한 이후 통합진보당을 나와 정의당의 창당에 참여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 덕양갑에 출마하여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5년 7월 제3대 정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 참고.
심상정의 생애 중 일부
1980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서울대학교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되었다.[1] 그 해에, 위장취업으로 구로공단으로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을 펼쳤다.[2]대우어패럴 미싱사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1985년 6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 최초의 정치적 연대파업투쟁인 구로동맹파업에 나섰다.[3]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장시간 노동하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1980년대 초에도 이러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4] 당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만으로도 사상이 불온한 자로 낙인찍혔으며 노동조합과 관련되어 해고될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직장을 구하는데에도 차별을 받았다.[5]1983년부터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여러 사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민주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파업은 자본가들과 결탁한 구사대의 폭력과 경찰의 탄압 속에 1주일만에 끝났다. 이 사건으로 4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1천여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6]1984년 노조결성 및 쟁의로 수배 중이었던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으로 인해 주동자로 지명수배되었다. 당시 상황을 심상정은 이렇게 회고 하고 있다.
“파업 닷새쯤 되던 날 텔레비전 9시 뉴스를 보던 중 화면에서 "1계급 특진, 현상금 5백만원"이 걸린 내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언론과 처음으로 맺은 인연이었다.……당시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까지 걸려 있었다. 붙잡히면 물고문, 전기고문 등 극악한 인권 탄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
— 심상정[7]
심상정은 구로동맹파업으로 1993년까지 10년간 수배되었으며, 1993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2] 한편 2001년 2월대한민국 정부는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하였다.[8]
+ 참고 2
아들이 짱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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