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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56ll조회 658l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난 입대를 했다친구들을 하나둘씩 보내고나니 왠지 모를 초조함을 못 이겨 지원한 것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그 초조함이 조금 길었던 탓일까 22살이라는 나이에 난 입대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는생각보다 내나이가 많다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306보충대를 거쳐3사단 백골 훈련병으로 가게 되었다남들은 가기 힘들다는 강원도로 간다는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아직 자대 배정이 남아 있기에 조금은 참기로 했다 분명 좋은 지역으로 자대 배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는 하나 군대는 군대였다생전 처음 겪는 구속된 생활이나 여러 가지 서툰 동작으로 배우던 제식까지군대는 내게 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1주차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어리바리한 훈련병 시절을 정신 없이 보내고 있을 때,조교가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도 금세 조용해진다그리곤 무거운 분위기로 변해버리곤 한다조교는 조용히 생활관에 있는 훈련병들을 훑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주목

주목!”

우리 모두가 기계처럼 같은 단어를 외쳤다조교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생활관 가운데에 있는 좁은 통로로 가볍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니네 몇 주 됐지?”

“....”

질문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우리들은 그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조교는 곧 눈알만을 굴리고 있는 훈련병을 건드렸다

“105번 훈련병 이창훈!”

몇 주 됐냐고

이제2주차입니다!”

그래

조교는 뒷짐을 지며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슬슬 니들도 적응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

그래안그래?이새끼들이.아침 안먹었냐?함 굴러볼까?”

아입니다!”

얼차려라는 말에 우리들은 죽기 살기로 대답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런 땡볕 아래 받는 얼차려는 죽어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그러니까 대답 좀 잘해라나 혼자 말하는거 같잖냐?”

알겠습니다!”

이제 다음주부터2주차다맞나?”

!”

그래서 말인데 이제 니들도 근무를 세울까 한다

“....”

근무라는 말에 우리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어느 누구 하나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조교는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에겐 선택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근무는 두 가지다몇가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침번이다뭐라고?”

불침번입니다!”

다음은 경계근무다?”

경계근무입니다!”

조교의 저런 점이 가장 싫었다항상 말을 하고 확인차 묻는데 그 때마다 대답하는 우리들의 목은 혹사를 당해야만 했다이미 동기들 사이에서도 가장 꺼려하는 조교중 하나가 바로 눈 앞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는 김상병이다

순서는 이미 다 짜져 있다 이제부터는돌아가면서 근무를 서게 될거다오늘부터 당장 시작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교육은 근무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해주겠다어차피 조교들이랑 같이 근무 설테니까 모르는거 있으면 그때마다 물어보고괜히 나중에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대답했다가 나 열받게 하지마라알겠냐?”


!”

조교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한번 훑어 보고는 나가버렸다덜컥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푸욱 쉬었다

,나쁜X됐네.”

내 옆 동기인 김상수가 투덜거렸다그러자 그 옆 박혁도 거들었다

그러게.아 훈련병때는 근무 안선다고 했는데 뭐냐

그런 둘의 투덜거림을 보자니 왠지 동생 같이 느껴졌다집에 있는 동생도 분명 저런 식으로 투덜거릴테지

이미 정해졌다는데 어떡하냐그냥 해야지 뭐

내 말에 상수가 다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형은 참 여유롭네요

상수는20살이다같은 동기끼리는 반말을 쓰라고 조교가 강조한 적이 있지만 조교들이 없을 땐 나름대로 대우를 해주곤 한다이 생활관에는 나 말고도28살이라는 노령의 형도 있어서 훈련병들끼리 있을 땐 그 형이 최고의 대우를 받곤 했다

자대가기 전에 교육받는거라고 생각해야지 뭐가서 안털릴려면 잘 배워야 할 것 같다

내 말에 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말이 맞아우리 지금 군가도 못 외웠잖아자대가면 군가 시킨댄다너 십대 군가는 다 외웠냐?”

그 말에 상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 진짜 나 외우는거 못한단 말야제식도 진짜 간신히 익혀가고 있구만 시부랄.”

킥킥,그러다가 너 갈굼당한다

신경꺼라에효.그나저나 형. 아까 조교가 차례대로라고 했잖아요.그 럼 우리 둘이 일빠일 것 같은데요?”

?그러네

그 말대로다생활관 처음 침상에 위치한 나와 상수이인일개조로 근무를 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집합5분전]

집합을 알리는 방송 목소리우리들은 크게 복창한 뒤 서둘러CS복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

니들 역할은 동기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온도 확인하면 된다그렇다고 단순히 확인만 하는게 아니라 불침번의 역할은 본래 적들이 침투하면 한 명은 지휘통제실이나 행정반에 알리는 역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동기들그러니까 부대원들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그러니까 니들이 졸거나 한눈 팔면 어떻게 되겠어적군이 와서 니들 목 다 따겠어안 따겠어

나와 상수는 조교의 열렬한 교육을 받은 뒤 초번초 근무를 서게 되었다근무 시간은1시간30분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우리 생활관의 위치는 일층 제일 끝 쪽이었는데 밖으로 통해 있는 유리문과 아주 가까웠다

그럼 근무 잘서고난 행정반에서 대기할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해근무시간 다 되면 다음 근무자들 깨워서 나한테 보고하고알겠냐?”


그렇게 말한 조교는 행정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나와 상수는 멀어지기 시작하는 조교의 뒷모습을 보며 생활관 문 상단에 있는 창문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 새끼들 안자네.”

모두가 수다 삼매경이었다젊은 혈기를 주체하기 힘든 모양이다하지만 저번에도 시끄럽게 굴다가 단체 기합을 받은적이 있기에 나와 상수는 적당히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효과는 바로 전해졌다곧 모두 조용해졌고 곧 코를 골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른 쪽 생활관 문 앞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훈련병들을 힐끗 보고는 내 옆에서 가만히 서있는 상수에게 물었다

,상수야

“....”

야 김상수

“....”

이상하다평소 내 말을 무시하던 놈이 아닌데.왜 이러지?상수는 멍하니 바깥을 통하는 유리문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의 상태였다왜 이런거지?첫 근무라서 얼어버린건가?아님 긴장한건가?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상수의 어깨를 흔들자

!”

상수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유리문에서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탁탁탁허겁지겁 물러나는 상수는 곧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는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

“..왜 그래?”

처음 보는 상수의 얼굴이다단순하고 불평이 많은 놈이었지만 언제나 밝은 놈이었다대체 뭘 봤길래 저렇게 놀라는 것일까

,저기.저기.저기.!”

연신 손가락질을 하며 유리문 밖을 가리키는 상수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놀라는거야?상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상대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그저 어두운 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바깥 풍경이 전부였다

,상수야너 괜찮냐?”

얼른 상수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상수는 강하게 내 손을 쳐내며 외쳤다

,저리가 이 새끼야!.저리가 저리 꺼져!으아아아!”

그리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행정반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그 소란에 놀란 다른 훈련병들이 머리를 살짝 내밀고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고,행정반에서 튀어나온 조교들과 간부는 상수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

대체 왜 저렇게 놀라는걸까뭘 봤길래 상수는 저렇게.

“?”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다소리가 들리는 쪽그러니까 유리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지 예상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따닥다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좌악온 몸에 소름이 순식간에 돋아났다이대로 뒤를 돌아보면 왠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더러운 예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

돌아보지 말자돌아보지 말자그대로 난 생활관 문을 열었다 왠지 이곳에 더 있다가는 상수와 같은 꼴을 당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에요?”

혁이가 졸린 눈을 부비며 나를 보며 서있었다그 말에는 나도 자세히 답해줄 수 없었다아는 것도 없고 보는 것도 없엇으니까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수가 무언가를 봤다는 것이고 그 쇼크로 행정반까지 미친 듯이 달려갔다는 점이다하지만 난 그것을 말하지 못했다이상하게도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대신 난.

모르겠다상수가.헛것을 봤나봐

“..그래요?”

***

어제 김상수 훈련병의 말을 들었다

아침 점호시간우리 생활관만 열외가 된 상태였다점호에 열외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조교가 말하며 상수의 상태를 간단히 설명했다 어젯밤.상수는 바로 행정반으로 뛰어갔고,그 즉시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상수는 무언가를 봤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것.' 이라고 했다고 했다일단은 근처에 있는 일동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때 생활관 문이 열리며 당직사관이 들어왔다

백골

조교의 경례를 가볍게 받은 당직사관은 곧바로 나를 향해 오더니 손짓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98번 훈련병 오인한!알겠습니다

,슬리퍼 신고 나와

!”

허둥거리며 슬리퍼를 신고 생활관을 나서니 당직사관이 행정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아 행정반안으로 들어가니 대대장과 주임원사가 나를 보고 있었다군대에서 높은 계급의 사람을 보면 무조건 경례하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난 목청껏 경례를 했다

“백! 골!”

그래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앉으라고 말했다어설픈 동작으로 배정된 자리에 앉으니 당직사관이 탄산음료를 내밀었다

마셔

“....”

훈련 받는 동안 가장 땡기고 염원하던 것이 바로 콜라였다이유는 정확히 몰랐지만 미치도록 탄산이 땡기던 날이 있었다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당직사관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음료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괜찮아마셔

,감사합니다

촤악캔을 따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특유의 맛에 전율을 느끼고 있을 때 대대장이 조용히 물어왔다

어제 상수랑 같이 근무 섰다며?”

.!그렇습니다

초번초였다지?”

대대장은 말 없이 턱을 매만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뭘 봤다고 하진 않고?”

그 말에 어제 상수의 표정이 떠올랐다저리가저리 꺼져!.꺼지란 말야!’그렇게 발작적으로 외치는 상수의 얼굴은 처음이었다분명 뭔가를 봤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반응한 것이리라

당시 상수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다가가니 욕을 하면서 저리가라고만 했습니다그리곤 바로 행정반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다인가?”

“..

따악순간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떠올랐다곧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말하려 입을 열 때이상하게도 말이 밖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이상했다왜 이런거지?누가 날 막고 있기라도 한건가?당황하며 대대장과 주임원사 당직사관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 볼 때

“?”

당직사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마치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의 눈빛처럼 나를 삼키려하고 있었다아까 전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음료를 건네주던 그 사람이 맞는건가?

“....”

알겠네상수는 지금 병원으로 출발한 상태야그 외에 뭔가 생각나는 거라도 있으면 내게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백골!”

경례를 하며 행정반에서 나올 때 당직사관도 같이 따라나왔다다시 한 번 살벌한 눈초리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른 걸음을 옮기려 할 때

“98번 훈련병 오인한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변한 당직사관이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야 돼진짜 아무것도 못봤어?”

“..못봤습니다

왜 자꾸 보지 못했냐고 캐묻는걸까정말 뭐가 있기는 한걸까?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식으로 집요하게 늘어질 리가 없다하지만 난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거기에 맞는 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정말입니다맹세합니다

“..알았다

근데 너

스윽내 어깨를 강하게 잡은 당직사관이 물었다

혹시 뭐라도 들었냐?”

“....”

잊을 수 없는 소리다뭔가가 부셔지는 소리라고 해야 맞는건지뭔가 갈리는 소리라고 해야 맞는건지 알 수 없었다짧은 순간이지만 내 머뭇거림은 당직사관에겐 빌미가 되었다

들었지너 들었구나

빈틈을 캐치하기라도 한 듯 당직사관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야 돼진짜너 들었어 못들었어

“..들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부정하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제멋대로였다내 답을 들은 당직사관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무슨 소리였지

“..뭔가뭔가가 부숴지는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

!”

너무도 흡사한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다당직사관은 차분한 얼굴로 중지 손가락과 엄지를 교차시키며 소리를 냈다

이 소리냐?”

,어떻게.”

내 말에 당직사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겨버렸다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신분인 나로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곧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쉰 당직사관은 내게 손짓했다

따라와

.못 들었습니다?”

당직사관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난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덕에당직사관은 주위를 살펴야 했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당직사관은 빠르게 말했다.

설명해줄게

그걸로 끝이었다당직사관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점점 멀어져 가는 당직사관의 뒷모습을 보며 난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곧 따라가기로 했다상수의 문제도 그랬지만 당직사관이 대체 뭘 알고 있는건지. 뭘 알고 있길래 내게 이러는건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점호로 인해 텅 비어버린 복도에는 둘만이 걷는 발소리만이 가득하다.


"빨리."

"예."


중앙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는 당직사관을 따른다이층은 조교들이 쓰는 생활관이라 올라가는 것이 금기 되어있었는데.아무튼 사관의 뒤를 따르니 훈련병 생활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티비가 한 눈에 들어왔다다른건 필요 없었다그저 세상과 소통을 해주고 걸그룹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티비가 내게 가장 커다랗게 다가왔다

사관은 적당히 걸은 뒤 비어있는 생활관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들어와

서둘러 사관의 뒤를 따라 생활관 내부로 들어가니 매우 작은 평수의 생활관이 눈에 들어왔다관물대의 수를 보아하니4명에서5명정도가 지내보이는 것 같았다사관은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앉으라고 말했고 나도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앉아 사관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

사관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어제 상수가 겪은 일은 매 기수 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

사관의 말은 상당히 충격이었다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반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첫날 실수로 조교에게 반문을 했다가 죽어라 얼차려를 받은 기억이 있던 터라?’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하는 단어여야만 했다하지만 사관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그는 심각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저번 기수에도 그랬고저저번 기수에도 그랬어.”

“....”

오래된 일이지아마 니네 기수가 마지막일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부대는 없어질거야

“....”

그 정도로 훈련병들의 피해가 컸었나?부대를 송두리째 없앨 정도로?어느새 사관은 담배를 꼬나 물었다곧 깊게 담배를 빨아 연기를 뱉은 사관이 손을 내밀었다

“....”

거절하기 힘든 담배의 유혹이었다 1주일 동안 생각하지 않고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이런 내 머뭇거림을 읽기라도 한건지 사관은 막무가내로 담배를 내 입에 물려주고는 불을 붙여주었다스읍목구멍을 타고 폐로 가득 채워지는 익숙한 것에 내 몸은 전율하고 있었다

죽을거야

그 말은 내 몸 전체를 오작동하게 만들기 충분했다콜록콜록목구멍에서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누르며 기침을 했다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사관은 내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다시 담배를 물고는 말했다

그 놈상수 말이야죽을거라고

“..무슨?”

꽤 심각한 문제야처음엔 그냥 자살로 치부해버렸는데 이게 매 기수마다 훈련병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단 말이지

아까운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체 난 사관의 말에 집중했다

처음엔 한 명그 다음 기수엔 두서명그 다음엔 그의 배수가 죽어나갔다

“....”

내가 이 부대에 처음 왔을 땐 세 명이 죽었었지

당직사관님.”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던건 말이다

바닥에 담배를 짓이긴 사관은 손가락을 내게 내밀며 소리를 냈다따닥사관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 소리가 들린다는거야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데

“....”

순간 어제의 더러운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생활관 문을 열기 직전의 그 기운뭔가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고.”

꿀꺽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지금 이 순간에서는 사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내겐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기 시작했지

“..헛것이라면?”

글세.훈련병들 얘기가 다 달라서 뭐라고 하기가 좀 그렇군하지만 어느 훈련병은 할머니가 보인다고 했고어느 훈련병은 젊은 아가씨가어느 훈련병은 아저씨가 보인다고 했어

사관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원인 모를 공포에 휩싸였다상수도 그럼 처음부터 그 소리를 들었다는건가?그래서 어제 불침번을 설 때 헛것을 본거고.

그럼 상수도 그 소리를 들었다는겁니까?”

사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모르지내가 볼 땐 처음에 그냥 단순한 환청이라고 치부해버리다가 어제 일이 터진 것 같다

“..그럼 당직사관님 다음에는.”

사관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다음은 네 차례일 확률이 높다그래서 너에게 아까 그렇게 물어본거야나도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내가 이 부대에 있는 한은 최대한 훈련병들의 안전을 생각하기로 했다그건 대대장님도 다르지 않아

전 그럼.어떻게 되는 겁니까?저도 그럼 헛것을 보게 되는 겁니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해서 말인데

“....”

너를 다른 훈련소로 전출 보낼까 한다

훈련병이라는 신분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간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지 않나?그 정도로 내 안위가 위험에 처해 있는건가?아니다나도 상수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그러니 좋게 생각해야만 한다

바로 말입니까?”

그래지금쯤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일거야최악의 경우1주일이 뒤로 밀려날 수도 있지만 지금 네게 중요한 것은 훈련소의 생활이 아니라 너의 목숨이다이해하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가자

사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기 시작했다그에 맞게 조교들도 하나둘씩 생활관 복도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점호가 끝난 모양이다모두 구보를 하고 온 상태여서 그런지 얼굴들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사관이 말했다

얼른 가서 더블백에 짐 챙겨라그리고 여기 중앙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난 망설이지 않고 생활관으로 뛰어갔다끝 쪽 자리에 위치한 생활관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건지.

생활관으로 들어와 관물대 앞에서 더블백에 미친 듯이 짐을 처넣기 시작할 때 주위 훈련병들이 내게 몰려 들었다

형 무슨 일이야?”

어디가?”

상수는?얘기 들었어?”

이런 저런 질문들이 내게 쏟아졌지만 난 거기에 답해줄 수 없었다그저 이 부대를 한시라도 빨리이 저주받은 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그렇게 빠르게 더블백에 짐을 꾸린 난 문득 옆 자리에 있어야할 혁이가 보이지 않아 의아함이 생겼다

혁이는?혁이 어딨어?”

내 말에 훈련병들은 모른다는 눈치로 고개를 저었고 곧 한 명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걔 아까 뛰다가 열외된 것 같던데?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고

“..?”

머릿속이 하얘졌다혁이마저?혁이도 그 소리를 들었다는건가?그럼 혁이 역시.

혁이.혁이 어딨어?”

몰라조교가 인솔해서 어디로 데리고 갔겠지근데 왜?”

답답해졌다혁이를 내 눈앞에서 봐야멀쩡한 혁이를 내 눈앞에서 봐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모두가 멀뚱멀뚱하게 서있을 때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뱉어버렸다

얼른 보고해혁이가 사라졌다고 보고하라고

“....”

하지만 모두가 내 말에 움직여주지 않았다불길했다분명히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어제 생활관 문을 열 때,그 좁은 틈으로 무언가가 들어와 혁이에게 들러 붙은건가?사관이 말한 원인 모를 헛것이나 환청이 혁이에게.

따악

“!!”

소리소리다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오소소 날카로운 소름이 온 몸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절로 떨리기 시작하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더블백을 멜 때

어디가?”

한 명의 손길이 느껴졌다어깨에 가볍게 올려져 있는 손길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니 생전 처음보는 훈련병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딘가 이상했다그리고 이 훈련병은 처음부터 우리와 생활하고 있지 않았었다

,누구야!너 누구야 시팔.시팔!누구냐고!”

발작적으로 그렇게 외친 것 같았다난 얼른 더블벡을 양손으로 들어 훈련병에게 강하게 휘둘렀다그리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중앙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숨이 금세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왔지만 뭔가 부러지는 소리는 끊어질 줄 몰랐다

으아아.으아아악!”

미치도록 무서웠다무섭고 무서워서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사관이 내 앞에 있을 것이다그럼 난 이 부대를 떠날 수 있을 것이고.그럼 난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리라

빠르게 뛰어가니 사관의 모습이 보였다사관은 내 상태를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는지 굳은 얼굴을 하고서는 손짓했다빨리 오라는 뜻인가아니면 뒤에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인가하지만 어느 둘 중 하나라도 상관 없었다빠르게 사관 앞으로 도착한 난 숨을 간신히 돌리며 사관에게 말했다

,사관님.저기 생활관.저 생활관에 있지.않습니까.”

사관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내가 달려온 곳을 가만히 응시하고는 말했다

시작된 것 같구나어서 가자

사관의 말을 따라 중앙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혁아?”

혁이였다아침 점호를 나갈 때와 같은 복장으로 나와 사관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사관님혁이가 있지 않습니까혁이가.”

얼른 혁이에게 다가가 데리고 가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빠르게 달려가려고 할 때,사관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내 몸이 묶여 버렸다그 자리에 옴싹달싹 못하고 있을 때 사관이 차분하게 말했다

잘 봐저게 니가 알던 그 박혁 훈련병이냐?”

그 말에 시야가 점차 또렷해 지기 시작했다분명 평소와 다름 없는 혁이의 모습이었지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마치 뭐라도 홀린 듯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혁이의 모습은 일주일 동안 봐오던 혁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관님혁이가.혁이가

사관은 천천히 손에 힘을 빼며 걸어나갔다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혁이를 향해 천천히 가는 사관의 모습을 보며 부들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빠앙--

엄청난 클락션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본능적으로 뭔가가 일어날 것을 예측한 난 혁이를 향해 뛰기 시작했지만 그보다도 더 빠른 레토나의 속도는 나의 바램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콰앙!포탄에 맞으면 저런 소리가 날까?듣기 싫은 소음 소리과 혁이의 몸은 그대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혁아!”


사람이 죽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사고가 일어나는 순간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순간도..매 순간순간에 우리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고가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지금의 혁이가 그런 것처럼

혁아!”

혁이는 피하질 못했다사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더블백을 바닥에 팽개치고서 사관의 뒤를 빠르게 따르니,사열대 근처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혁이의 모습이 들어왔다두근두근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다가가지 말라고 머리가 말하고 있지만 이미 몸은 혁이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혁아!혁아!”

혁이와 가까워진다그에 따라 모습도 점차 또렷해진다

“....”

혁이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있었다사지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는가 하면 수 많은 핏물들을 입으로 게워내고 있었고,끊임없이 발작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사관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사열대 뒤쪽에 정차되어 있는 레토나 쪽으로 빠르게 뛰어가며 외쳤다

너 이 새끼!너 누구야!”

사관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그는 날렵하고 거칠게 레토나의 문을 열어제끼고는 운전자를 끌어냈는데,그 운전자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김상병?”

항상 우리를 못살게 갈구며 얼차려를 부여하던 김상병이었다왜 김상병이 저기에 타있는거지?어째서 김상병은 혁이를.

김상병!너 이새끼!니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사관의 목소리가 연병장을 가득 메운다그 소리가 워낙 컸던 탓일까아니면 혁이를 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일까김상병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사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사관님.저 봤습니다!”

“..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김상병을 내치려는 사관은 곧 들려오는 소리에 동상처럼 멈춰버렸다

상수.그 김상수 훈련병 말입니다!그 놈이.그 놈이 아까 왔습니다!,제가!이 두.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발작적으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는 김상병을 보던 사관은 이를 악물고는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낮게 중얼거렸다

.진짜 거짓말이면 줄 알어라.

,정말입니다!제가 왜.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어디야안내해

우직한 얼굴로 김상병을 잡아 끄는 사관김상병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그런 둘을 보며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

혁이의 목소리였다

혁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간신히 눈을 뜬 혁이가 애처롭게 날 올려다 보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입에는 거칠게 들끓는 피 때문에 그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어떡해야 하지어떡해야.

쿨럭이며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혁이를 보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체를 약간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하지만 이것 역시.아니다차라리 목을 조금만 들어주기로 할까그럼 조금이나마 피를 뱉어낼 수 있을거야

괜찮아.?”

혁이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만 돌려주기로 했다혁이는 한움큼의 피를 뱉고는 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조심해.”

“..혁아

빨리.빨리 도..”

혁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두 손에서 힘 없이 떨궈지는 고개의 무게를 느끼며 도움을 청하기 위해 중앙현관을 바라보니 아까 내게 말을 걸며 손을 뻗었던 훈련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모든 것이 저 놈 때문이다저 귀신 놈 때문에 상수와 혁이가.그리고 나 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생겨버렸다

따악

훈련병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하지만 곧 다가오는 수 많은 조교들과 간부들에 의해 그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들 것 가져와!”

앰블란스 대기 시켜!바로 병원으로 간다!”

조교와 간부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곧 내게로 다가와 가볍게 안부를 물은 그들은 혁이를 챙기기 시작했다재빠르게 들것에 실은 그들은 곧 다가오는 앰블란스에 혁이를 조심스레 탑승시킨 뒤 빠르게 출발해버렸다

“....”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진 앰블란스를 보며 허망한 눈으로 양손을 바라보니 붉은 색 물감이라도 칠한 듯 새빨갛고 낯선 내 손이 보였다전투복 역시 많이 물들여져 있었다이게 바로 혁이 몸에서 나온건가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이고 있는 혁이의 마지막 증거인건가.

정신이 들지 않았다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간부와 조교들이 다가와 나를 추슬러주지 않았더라면 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그들은 곧 나를 이끌고 중앙현관 쪽으로 걸어갔고,일부는 한쪽에 세워진 레토나로 다가갔다

레토나 쪽으로 다가가는 두 명의 조교들을 보며 문득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해서 바로 옆에서 날 부축하고 있는 조교에게 물었다

고장 나지 않았는지 체크해야 합니다저 레토나가 혁이를 치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조교는 곧 레토나 근처 조교들에게고장 났는지 확인해라는 말을 건넸고 그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레토나에 탑승했다곧 조용히 레토나와 조교들의 상태를 살피니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레토나를 운행하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멀쩡한데?앞에 찌그러진 부분도 없어

피도 묻어 있지 않아

“....”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그럼 김상병도 홀린 상태로 레토나를 운전했다는건가?그럼 혁이를 저 거리까지 치고 나간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레토나가 아니라면.

"...."


의문은 풀 수 없었다

***

허망한 얼굴로 생활관으로 다시 복귀하니 동기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2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대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미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나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크게 다친 혁이와 일동 병원에 입원해 있을 상수.

“?!”

가만!분명히 김상병은 상수를 봤다고 사관에게 말했었다그럼 어디로 간거지?둘은 어디로 가버린거지?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얼른 생활관 밖으로 나오니 고요한 복도만이 보일 뿐이었다저마다 생활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 아무도 복도를 활보하고 있지 않았다

난 빠르게 걷기로 했다그리고 어제 사관과 얘기를 나누었던 그 작은 생활관으로 가기로 했다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라면 사관과 김상병 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중앙 계단을 올라 생활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조교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보는 것이 느껴졌다거기에 일일이 답을 해주지 않고 오로지 내 목적지를 위해 빠르게 걸었다그렇게 얼마나 갔을까눈에 익은 생활관 문이 보일 때 난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

예상대로였다안에는 사관과 김상병이 앉아 있었는데,둘 모두 담배를 피고 있었는지 흰색의 진한 연기만이 생활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둘은 날 보아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나 역시 경험자이고 목격자여서 그런 것일까

문 닫아라

무미건조한 투의 목소리그렇게 말한 사관은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여주는 사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한 뒤,김상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김상병은 영혼이라도 떠난 것처럼 생기가 없는 얼굴로 반복된 동작으로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된겁니까?”

내 말에 사관은 말 없이 담배를 물었고,김상병은 미세하게나마 어깨를 움찔거렸다난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들었습니다상수가 부대에 다시 왔다고.사실입니까?”

“....”

김상병은 답을 하지 못했다대신 사관이 나서며 말했다

그래김상병도 너와 비슷한 모양이다조교가 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 그동안에는 훈련병들 상대로만 그 증상이 나타난 겁니까?”

그랬었지하지만 이번에는 조교마저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진작에 이 부대를 없앴어야 했는데.”

사관은 군화발로 담배를 지긋이 밟고는 말했다

어찌 됐든지 간에. 너희 둘은 이 부대에서 당장 나가는게 낫겠다그리고 대대장님도 방금 일을 보고 받았으니 분명 움직이실거야일단은 너희 둘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니.이번엔 짐도 싸지말고 바로 떠나도록

사관은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사관의 말대로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따악부러지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날카로운 감각이 피부 하나하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주와악오돌토돌한 소름이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김상병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는 김상병의 상태는 한 눈에 보아도 뭔가가 이상했다그것은 사관도 캐치한 모양인지 내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뒤,천천히 김상병 근처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군화소리가 고요한 생활관에서 유독 크게 들리는 듯 했다그 소리가 나쁜점이 되었을까김상병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올라갔고,거기에는 익히 봐오던 김상병의 얼굴이 아닌 혁이의 얼굴과 비슷한 것을 띄고 있는 하나의귀신이 서있었다

허억!”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날 때 김상병은 내가 아닌 사관에게 달려들었다

죽어!죽어어어엇!”

크게 뛰어올라 사관을 바닥에 눕히는데 성공한 김상병은 곧 양손으로 사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죽어!키헤헤헤헤!”

굵은 침을 흘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그것은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이었다

,!”

그 악력이 상당했는지 덩치가 우람한 사관도 삐쩍마른 김상병 하나를 제대로 치워내지 못하고 있었다발을 몇 번 튀기며 김상병을 떼어내려다가 실패한 사관은 곧 내게 도움의 눈빛을 청했다

“....”

그 눈빛을 모른척할 수 없었다사관이 죽어버리면 바로 다음 타깃은 내가 될 것이 뻔했다길게 망설이지 않았다얼른 김상병에게 달라 붙어 상체를 단단히 잡고 떼어내려는 순간

넌 봐줄게

“?!”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단순히 귀로 전해지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울리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넌 봐줄테니 그대로 꺼져버려라난 이 새끼만 죽이면 되니까

“....”

내게만 들리는 말인 듯 했다사관은 여전히 곤혹스러운 얼굴로 나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고,김상병은 정체모를 소리와 웃음을 지으며 격렬하게 사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오인한!”

간신히 말을 뱉은 사관의 목소리난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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