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의외로 조선이나 청이나 보급 문제로 피똥쌌음. 우역 문제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청 자체의 식량 문제도 상상 이상으로 문제가 컸었음. 당시 병자호란이 일어났었던 17세기 자체가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기근에 시달렸었음.
특히 곡물을 둘러싼 조선과 여진의 갈등은 선조 34년인 1601년, 17세기의 시작과 함께 더불어 시작됨. 1600년부터 서북지역에는 흉작이 계속되었는데 여진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흉년은 무척 심했고 누르하치는 자신의 부하를 만포에 보내어, '우리 경내에 흉년이 든 것이 이와 같아서 내년 봄에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들으니 조선에 저축된 곡식이 많다고 하는데, 서로 구제해주면 다행일 것입니다.' 라며 지원을 요청해옴.
이에 조선 관리는 한 해 전의 기근 때도 많은 여진인들이 만포에 몰려들어 먹을 것을 찾아 갔는데 내년에는 더욱 많은 사람이 올 것을 우려했을 지경임. 이 때 조선도 12만 석의 식량을 명으로부터 공여받아 겨우 먹고 살고 있었는데 여진이 와서 달라고 하니 뭐 미치고 팔딱뒬 지경이겠지.
그리고 1615~1616년은 조선과 명, 그리고 여진이 똑같이 대기근이 들었고 중국의 화북 지방에는 극심한 가뭄에 메뚜기과 곤충인 누리가 창궐하여 곡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진짜 위기가 찾아옴.
명으로부터 식량 수입이 끊긴 누르하치는 조선에 곡물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조선 역시 쫄쫄 굶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조선 역시 명으로부터 중강진 무역을 통하여 은을 주고 그나마 풍족한 요녕과 광녕의 곡식을 구매하고자 했고 명과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한 상태였음.
조선은 명의 지원을 요청하고자 했으나, 하필 정묘호란이 발생했던 1627년을 전후한 시기는 건조하고 한랭한 기후가 현저해지면서 조선과 중국에 동시적으로 기근이 발생했기 때문에 명도 조선을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음.
애당초 엄청난 군비와 군량을 조선에 지원해줬던 명이 저 지경으로 겔겔거리니, 얘네보다 체급이 훨씬 아래인 청이나 조선은 말할 것도 없음.
게다가 병자호란 직전 청은 연이은 기근으로 곡물사정이 극도로 좋지 않았으며, 전쟁 2개월 전에는 왕족과 신료들에게 먹을 양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장에 내어 놓도록 할 정도로 기근이 심각했고, 여기에 청이 복속시킨 몽골 부족들도 이들이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곡물 수요량은 날이 갈 수록 급증했으나 조선으로부터 구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이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조선을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굴복시켜 자신들에게 공납을 바치도록 하는 방법 뿐이었음.
이 상황에서 병자호란 때 청군이 조선보다 보급이 넉넉했다고? 글쎄올시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우역의 창궐임. 우역이 창궐한 것이 청 뿐만이 아니라 조선에도 건너서 들어왔는데 당시 군량이나 무기 수송의 핵심은 바로 소였음. 소가 군수물자를 수송해서 보급 역량의 일익을 담당해야만 했는데 얘네가 우역으로 픽픽 쓰러져 죽어나가니 청이나 조선은 걍 미쳐 돌아가실 지경임.
근데 문제가, 그나마 조선은 자국 내에서 수세적인 입장에서 방어를 하다보니 '비교적 ' 청군보다는 보급로 신장이 덜한 데다가 주로 수성전을 많이 수행했기 때문에 우역이 돌았어도 보급 역량 손실이 비교적 덜했겠지만 타국에 원정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끌고 내려온 청은 이야기가 달라짐.
청은 본국으로부터 군수물자를 받아 써야하는데 소들이 우역에 걸려서 픽픽 죽어나가서 따로 몽골에서 소를 구매해다가 쓸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함. 그리고 굴락에서 perpect0922 아재가 말했듯이
-장기간 공성전이 이어질 경우엔 공격측이 불리해지는 것이 한 지역서 계속 현지충당 하는 건 자원의 한계상 불가능하고, 목표가 목표인 만큼 공격측도 빼박 못받혀 이동도 못함. 소규모 약탈부대 보내는 것도 주변 적군들에게 좋은 먹잇감임.-
이라고 언급했는데 좋은 설명임. 청군 주력이 남한산성 일대에 알박기 하는 사이에 현지 충당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 도사리는 조선군이 존-버 하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다가 남한산성은 식량 부족하다 부족하다 아우성쳐도, 정작 사료 보면 얼어죽은 이들은 있을 지 언정 아사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음.
즉, 청의 보급 상태는 조선보다 넉넉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쪼들렸을 가능성이 큼. 그리고 명색이 조선은 농업 국가여.
군수물자 실어나를 소들은 우역 돌아서 픽픽 죽어나가지, 그렇다고 자국 식량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지. 뭐 하나 청군도 제대로 돌아가는 거 없었음. 쟤네도 그야말로 도박 한 번 거하게 한 거고, 여기서 성공해서 조선으로부터 매년 쌀 1만 석씩 받아다가 버틴 거임.
근데도 요새 매체들이나 영화에서 조선은 쫄쫄 굶고 있는데 청은 막 병사들까지 호의호식하면서 놀리는 듯한 표현이 많더라. 근데 글쎄. 쟤네도 기근으로 픽픽 죽어나가는 거 보면 사실과는 거리가 먼 묘사가 아닐까 싶음.
뭐 현지 보급해서 뜯어온거다! 라고 하면 저 장면도 할 말 없기는 한데 단순히 현지 보급으로 충당하기에는 청군의 숫자가 좀ㅎㅎㅎㅎㅎ
이상하게 병자호란 때 청군이 조선보다 보급 넉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네|작성자 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