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bgm) 천재 아인슈타인이 인류에게 선물한 유산 <- 이종 링크 클릭
중력파 시리즈 2편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다'
▣ First Step
: 영화 <인터스텔라> 숨겨진 스토리
우린 답을 찾게 될 거야, 늘 그랬듯이.
영화가 시작되기 수십 년 전인 '21세기 초'
브랜드 박사는 20대의 젊은 이론물리학자였다.
그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기(LIGO)'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중력파를 탐색 중이었다. 약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던 우주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2019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중력파의 파형(Waveform) 데이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브랜드 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 관측된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중력파가 감지된 것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브랜드 박사는 중력파가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오는지 추적했다(이론물리학자들은 추적의 달인이다).
그 중력파는 다름아닌 블랙홀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중성자별(Neutron Star)'에서 나온 것이었다. 식은땀이 마구 흘렀지만, 박사는 침착하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복잡한 계산에 몰두한다.
"Eureka!!!" 중력파를 면밀히 분석하던 브랜드 박사는, 블랙홀이 중성자별을 찢어 발기며 흡수하는 과정에서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브랜드 박사는 파동이 나오는 방향과 거리를 조사하던 중, 기묘한 결과에 놀라 뒤집어졌다. 그 중력파는 토성을 도는 무언가에서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토성 근처에 있는 중성자별이라니.. 중성자별과 블랙홀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면 지구가 이렇게 온전할 리가 없지 않나?"
이때 브랜드 박사의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묘한 생각. 토성 주변에 있는 것은 '웜홀(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이고,
웜홀의 반대편에 중성자별을 삼키고 있는 블랙홀이 있다. 그리고 중력파는 웜홀을 통해 우리 태양계로 들어왔고.. 그것이 지구에 도달했다는 추론을 세운다.
브랜드 박사의 이 가정대로라면, 모든 것이 자연스레 설명될 수 있었다. NASA는 수십 년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 박사를 포함한 탐험대를 웜홀로 투입한다.
웜홀을 통과하여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진입한 만 박사 일행은 그 곳에서 가르강튀아(블랙홀)와 중성자별을 발견한다. 브랜드 박사가 예견한 시나리오가 비로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영화 <인터스텔라> VS 2016년 현실.
: 새로운 시대(New Era is coming).
잘 보셨나요? 이 시나리오는 실제 인터스텔라 스토리보드에 들어있던 초기 스토리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너무 난해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놀란 감독이 이 내용을 쏙 빼버렸죠.
어쨌든 이 스토리는 우리에게 꽤나 SF로 보입니다. 흔히 영화나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로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우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사실 이 스토리처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얼마 전에 벌어졌습니다.
2016년 2월 11일, 미국의 레이저 중력파 관측소인 '라이고(LIGO)'는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인터스텔라가 개봉한지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 안에, 이런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참 감회가 새롭고 뿌듯한데요.
중력파 시리즈 1편에서 언급했듯이,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시공간을 휘게 합니다(기억하시죠?) 우린 이를 편한 말로 '중력(Gravity)'이라 부르고 있죠.
또한 블랙홀이나 중성자별과 같은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천체는 주위 시공간을 극단적으로 휘게 만들기 때문에, 변화된 시공간에서 파동의 형태로 '중력파'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관측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약 13억 광년(빛이 13년 동안 이동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떨어진 2개의 블랙홀로부터 검출되었죠.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작년 9월 14일, 미국에 위치한 두 개의 중력파 관측소에서 두 블랙홀이 합체되는 징후(신호)를 포착했다고 합니다. 이를 학자들은 'GW150914'로 명명했죠.
라이고는 루이지애나주의 리빙스턴과 워싱턴주의 핸포드에 설치되어 있는데요. 만약, 우주에서 중력파가 지구를 관통하면 두 개의 장비는 동시에 중력파의 파형을 포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두 개의 관측소에서 위와 같은 중력파 파형이 포착되었습니다. 서로 약 3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관측소에서 유사한 파형이 나왔다는 건,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인류가 만든 가장 정교한 기계라는 라이고(LIGO)는 어떤 원리로 중력파를 검출한 것일까요?
일단 LIGO는 길이 4km에 폭이 1m인, 파이프 두 개가 'L'자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각각의 입구에서 동시에 레이저 빔이 발사됩니다.
그리고 파이프의 끝에는 레이저를 반사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울이 달려있어요. 그럼 출발한 레이저는 빛의 속도로 파이프를 가로질러 거울에 부딪친 다음에,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하게 되겠죠.
마치 체육 선생님이 축구골대까지 뛰어갔다 오라는 벌칙을 내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랄게요. 같은 지점, 같은 시간에 동시에 레이저가 발사되고
레이저를 방해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면, 두 가닥의 레이저는 동시에 같은 위치에서 정확하게 만나게 되겠죠. 이 때가 매우 중요합니다!
핔플 여러분들도 빛이 '파동'이라는 말을 언뜻 들어보셨을 텐데요. 파동이란 말이 분명 낯서실 테니, 예를 들어볼게요.
일단 빛과 같이 소리도 파동입니다. 소리가 만들어지려면 물체가 진동을 해야 하고, 그 진동의 물결이 파동 형태로 우리 귀로 들어와서 소리가 들리게 되죠.
그렇다면, 앤드류와 린지가 동시에 '아~~~~'라는 소리를 낸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5미터 떨어져서 그 소리를 듣는 여러분은 남자의 저음, 여자의 고음 목소리가 합성된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듣게 되겠죠?
즉, 소리의 파동이 합성된 것입니다. LIGO의 원리도 이와 똑같아요. 빛은 파동이므로, 두 가닥의 레이저가 합성되면 완전히 새로운 빛의 파형이 나타나게 될 겁니다.
그럼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볼까요~? 같은 지점, 동시간에 거울을 찍고 다시 만나는 두 가닥의 레이저빔이 다시 재회(합성)하면, 파형이 겹쳐 '상쇄' 되겠죠.
다시 말해, 이 경우 중력파 탐지기에서는 아무런 신호가 검출되지 않습니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상쇄 간섭'이라 부르는데, 이 원리를 이용하여
라이고의 과학자들은 평범한 상태(중력파가 없을 때)에서는 파형이 정확히 상쇄간섭을 일으켜 사라지도록 설정을 미리 해두었죠.
또한 여담으로 '라이고(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라는 이름에 '레이저 간섭계(Laser Interferometer)'라는 명칭이 들어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다시, 라이고의 파이프 이야기를 해볼게요. 동시에 수직 방향으로 엇갈려 출발한 레이저는 길이 4km의 파이프를 가로질러, 거울에 반사된 다음 출발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한 번만 왕복하면 겨우 8km를 가는 셈에 불과하니, 과학자들은 거울에 반사시켜, 레이저 빔이 파이프를 100여 차례나 왕복시킨 다음에 '소요시간'을 측정하죠.
이렇게 하면, 불과 4km 길이에 불과한 파이프 두 개를 100번 왕복하는 셈이니 총 800km에 달하는 길이를 측정할 수 있죠. 이렇게 큰 돈을 들여가며 '레이저 빔 노가다'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중력파에 의해 공간이 '찌그러지는' 정도가 매우 미미하기 때문입니다(1편 참고). 그래서 4km만 통과하게 할 경우,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 할지라도 공간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 힘들죠.
그리고 800km의 파이프를 계속 왕복하는 레이저 빔의 소요시간을 잰다면, 우리는 파이프의 길이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속도 공식을 떠올려보세요).
또한 중력파가 공간을 왜곡시킨다고 했으므로, 라이고에 도달한 중력파는 파이프의 길이를 변형시킬 것이 뻔하죠.
즉, 중력파가 도달하면 둘 중 한쪽 파이프의 길이가 아주아주 조금 짧아지거나 늘어나므로 서로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두 가닥의 레이저 빔이 재회했을 때 '시간 차이'가 발생되죠.
그럼 합성된 두 레이저의 위상이 정확하게 겹쳐지지 않고 엇갈리게 되어 '새로운 무늬(간섭 무늬)'가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어느 날, 중력파 탐지기에서 간섭 무늬가 나타난다면? 중력파를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간섭무늬가 지난해 9월, 라이고에 포착되었어요.
분석 결과, 태양 질량의 36배가 되는 블랙홀과 29배가 되는 블랙홀 한 쌍이 합체되는 과정에서 나온 중력파였죠.
위 표는 감지된 간섭무늬를 슈퍼 컴퓨터로 중력파 파형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여담으로, 이 과정에 우리나라의 연구진들이 참여했다고 하죠(짝짝짝).
또한 세로축은 공간이 얼마나 팽창하고 수축했는지의 정도, 가로축은 중력파가 포착되었던 0.15초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블랙홀 두 개가 서로를 회전하다가 합쳐질 때, 파형의 높낮이가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죠.
이렇게 우주 저 너머에서 벌어진 '블랙홀 한 쌍의 러브스토리'가 13억년을 날아와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놀라우시죠?
[우주가 들려주는 메아리]
: 검출된 중력파 파형을 소리로 변환
▣ Next step
: 중력파 검출, 그리고 다음 단계.
만약 핔플들이 1년 365일 동안 날씨가 매우 좋은 환경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평화로운 바다만 보고 살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럼 결코 여러분은 집채만한 파도나 솟구치는 파도의 정체를 알 길이 없겠죠.
또한 평화로운 바다에 사는 여러분과 후손들은, 아무리 대를 거쳐 바다를 지켜본다 한들 어떤 '결정적인 기후 변화'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바다는 원래 잔잔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의 급격한 기후 변화로, 갑자기 바다에 거대한 폭풍이 밀어닥칩니다. 그럼 여러분은 그때서야 비로소, 바다에도 숨겨져 있는 '거친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중력파의 검출은 바로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이 순차적으로 진보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중력파가 직접 검출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주(시공간)를 보는 시각,
즉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일반 상대성이론'은 말 그대로 인류의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번 중력파의 직접 검출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중력파의 재료는 '시공간'입니다. 그러기에 중력파는 휘어진 시공간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과학자들이 중력파 검출에 이렇게 열광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력'이라는 녀석의 특이한 2가지 특성 때문이에요.
예컨대 지구 상공에 누군가 마법을 부려, 지구를 완벽하게 둘러쌓고 있는 검은 벽돌을 지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지구 표면에 있는 우리에게 빛은 도달할까요? 아니면 차단될까요? 당연히 태양 빛은 벽돌에 완벽히 차단되어, 우리는 마치 암흑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즉, 빛은 물체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죠.
이번에는 여러분이 벽돌에 자라난 꽃에 물을 주고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구에서처럼 물을 꽃 위로 떨어트려 물을 주는 행위가 가능할까요?
물론 당연히 가능하겠죠. 왜냐하면, 빛과 달리 중력은 '물질'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벽돌로 아무리 가려도 중력은 벽돌을 통과하니까요.
중력은 빛이 통과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도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과도 같아요. 자연계 4가지 힘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모든 곳에 존재하는 힘은 중력이 유일하죠.
한편 인류는 16세기까지는 눈으로 천문관측을 했고, 17세기에는 '빛'을 이용하여 우주를 보는 망원경을 개발했으며,
20세기에는 좀더 범위를 넓혀 적외선, 라디오파, X-선, 감마선 등을 이용하는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천문 관측 영역은 가시광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빛을 활용하는 망원경으로는 빛이 도달하지 않는 영역, 즉 '블랙홀이나 별의 내부' 등을 절대로 볼 수가 없는 한계를 지닙니다.
그런데 중력파는 중력의 기이한 특성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빛이 통과 못하는 영역)까지 관측이 가능하므로,
기존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관측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이에 SF를 더하여 묘사한 것이 바로 영화 <인터스텔라>입니다.
영화에서, 테서렉트에 있는 쿠퍼는 '양자중력'으로 다른 차원에 있는 머피에게 데이터를 전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것도 역시, 모든 물체와 상호작용하지 않는 중력의 특별한 특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그 중력(공간의 휘어짐)의 파동이 바로 '중력파'입니다.
그래서 이번 중력파 검출로 인해 우리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중력 망원경'을 개발한 것과 같고, 앞으로 넘어야 할 기술적 한계가 많겠지만
이제 인류의 천문 관측은 빛을 이용하는 망원경과 더불어, 상당부분 '중력파'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관측 시대가 시작될 것이며,
또한 지금까지 우주가 인간에게 단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
'원시 우주와 양자 세계'
에 대한 비밀을 밝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