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였는데 그땐 이제 약간 해탈한 기분으로 간 거라, 내 우울한 이야기 깊게 하는 것도 스트레스라서 그냥 보통 정신과는 감기처럼 상태만 보고 처방한다길래 그냥 미지근한 기분으로 갔거든 빨리 이 X같은 감정만 없애고 싶다 약 받고 싶다 하면서? 스트레스로 현재 잠을 못 자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우울해서 힘들다고 너무 주변에 예민해진 상태라 말했는데 그 원인이 뭐냐고 하셔서 그냥 맨 첨엔 대충 둘러댔어 학업 스트레스도 있고 엄마아빠랑도 자주 부딪히니까 너무 힘들다고 그랬더니 쌤이 그냥 지긋이 보면서 왜 엄마 아빠가 쓰니를 힘들게 할까 귀한 딸인데 하는데 진짜 그냥 멍 때리면서 쌤 눈만 보다가 횡설수설하려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눈물 나왔어 쌤은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다정한 표정 그대로 휴지 뽑아주시는데 너무 너무 고마운 거야 나한테 질문해줘서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기분을 처음 느꼈다 우리 집 형편도 안 좋고 가정사도 안 좋고 엄마아빠 따로국밥에 서로 바람 펴 학대라면 학대 받으며 자라왔고 애정결핍도 심하고 그냥 감정 쓰레기통처럼 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꾸역꾸역 다 말했어 뉴스에서만 나올 법한 일들도 그냥 다 말했어 무덤까지 갖고 가려 했는데 듣는 내내 선생님은 끄덕여주고 휴지 몇 장 뽑아주고 중간에 추임새 넣어주는 게 다였는데 고맙더라 평생 못 잊을 거야 내가 다 말하고 나니까 손 잡아주면서 여태 힘들었던 거 혼자 어떻게 버텼냐고 아직 어린데, 어른인 나도 들으면서 많이 놀랐는데 네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며 우울증이 심한 것 같으니까 약 꼭 처방 받아가라면서 선생님 명함 한 장 주셨어 가능한한 부모님께 여기로 연락주라 하라고.. 뭔가 사는 내내 꽉 막혔던 속이 녹는 기분 그렇게 운 적도 처음이다 겨우 털어놓았을 뿐인데 기분이 홀가분하더라 근데 부모님한테 말은 안했어 결국 쌤보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제가 이미 선생님께 엄마아빠 사생활도 다 말했는데 안될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