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너 이러다 법대 가는거 아니야?”
“시끄럽고 공부나 해.”
내일 만날 수 있어? 사실 엊그제 태연의 문자를 받고서는 제자리에서 펄쩍 뛴 수연이었다. 이 문자를 저대로 해석하면 우리 데이트나 할래?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늘 약속 장소, 시간까지 먼저 정하던 수연이었는데 낯설은 태연의 애프터 서비스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당연 답장도 3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보내버렸다.
약속 전 날 까지도 수연은 침대 안에서 꾸물대서는 뭘 입어야 하나 수 차례 고민하고, 혹시나 피부가 상할까 엄마 몰래 화장대에서 쓰던 유명 브랜드 팩까지 훔쳐서는 얼굴에 덕지덕지 펴발랐다. 기왕이면 이쁘게 보이는게 남는 거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쿵쿵거려서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서 결국 우유 한 잔을 따뜻하게 뎁혀 마시고는 겨우 눈을 감았다. 당일날 샤랄라한 차림으로 나타난 수연과는 달리 태연은 후리한 추리닝 단벌 차림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는 참고서 몇 권을 품에 안고서는 나타났다.
우리 내일 시험이잖아. 태연의 환장할 말에 수연은 가슴팍을 퍽퍽 내리쳤다. 그러면 그렇지. 약속 장소가 도서관 앞이길래 로맨틱한 데이트를 꿈꿨던 수연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럼 나 그냥 갈래. 수연의 뿌리치는 말에 태연은 자기 참고서를 기꺼이 내어주며 같이 올라가자고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 결국 같이 올라가고야 말았다.
그래도 도서관이라 좋은 점은 딱 하나,
“공부 하라니까.”
“하는 중이거든. 이번 미술 시험에 인체 그림 있잖아.”
태연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수연은 아예 도서관 의자를 반쯤 돌려서는 노골적으로 태연을 쳐다 보았다. 수연은 한 손에 연필을 쥐고서 한 쪽 눈을 찡그린 채 태연의 얼굴을 초상화 삼아 눈, 코, 입을 천천히 허공에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태연은 신경을 안 쓰려고 일부러 이어폰에 양쪽 모두를 귀에 꽂은 채 참고서를 풀어 내렸다. 근데 수연이 옆에서 하도 바스락 대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수연을 흘기며 쳐다보자 수연은 왜 그러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았다. 정말 얄미워. 태연은 다시 고개를 홱 돌리고서 참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풀자. 풀어.
그러고 한참을 있었을까. 수연이 다시 잠잠하길래 태연은 이제서야 공부를 하려나 생각하고는 안심했다. 그러자 목덜미에 따뜻한 바람 같은게 불어와 태연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한 뼘도 채 닿지 않을 거리에 수연의 얼굴이 닿아있었고 태연은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한 걸 간신히 책상을 양손으로 꽉 부여잡는 바람에 버텨냈다.
“가까이서 봐야 제대로 그리지.”
도서관 안이라 큰소리도 못 내고 태연은 그저 속으로 끙끙 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수연의 손가락이 이마부터 턱끝까지 찬찬히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콧등에 한 번, 속눈썹을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태연의 아랫 입술을 슬쩍 문대고는 수연이 먼저 손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