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
진혁이와 원두는 대학동기야. 진혁이가 출전한 농구대회에 원두가 응원을 가면서 그 계기로 둘은 친해졌지. 생각보다 통하는 구석이 많았어. 특히 진혁이 자신과 같은 디즈니 덕후라는 걸 알았던 날, 원두 그 자리에서 바로 목소리 깔고 "우리 베프하자" 한 거 ㅋㅋㅋ 그 후로 종종 서로의 자취방에서 덕질도 하고, 지옥의 조별과제를 같이 하며 뜻하지 않은 전우애도 쌓고, 2학기엔 교양도 겹치면서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더욱 많아졌다. 그렇게 점점 원두는 진혁이에게 정들어 간거야.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동기들과 작은 술자리가 생겼어. 그날따라 분위기가 정말 하이텐션으로 좋았던 게 술을 잘 안 마시는 진혁이도 취했을 정도였다. 자리를 파하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원두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진혁을 찾았지. 자기 몫으로 챙겨 왔던 숙취해소제를 손에 들고 '이 자식 이거 아까보니까 좀 비틀거리던데...' 걱정도 하면서 저멀리 진혁이 보인다.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진혁아 - 웃으며 가까이 다가가던 원두는 푸른 달빛 아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얼어붙고 말았다.
두 눈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
길고 날카로워지는 손톱과 송곳니 머리 위로 쫑긋 솟아오르는 회색빛 두 귀.
진혁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고
원두와 두 눈이 마주친다. 놀란 원두의 두 눈과 황금색으로 변해버린 진혁의 두 눈이 마주친다.
늑대. 늑대인간이다.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진혁은 그 날을 떠올려. 처음으로 제 마음에 누군가가 들어왔던 날.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되었던 바로 그 날. 농구대회가 있었지. 그날 경기 참 안 풀렸어 상대편이 빈틈없이 너무 잘하니까 죽을 힘을 다해 뛰는데도 점수를 낼 수가 없는거야. 결국 많이 밀린 상태로 끝나버린 전반전. 모두가 낙담했지. 패배가 확실하다고. 경기장의 사람들도, 관객석의 사람들도 하나같이 낙담하고 거의 다 포기해버리니까 진짜 진빠지더라. 근데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 진혁아 수고했어! - 괜찮아ㅠㅠㅠ - 넌 최선을 다했어. 괜찮아 응원이 아닌 위로. 그게 진혁을 진짜 속상하게 만들었다. 벌어진 점수 차보다 더. 아직 경기 안 끝났는데. 나 더 할 수 있는데... 비참함에 고개를 숙이고 만 그 때 경기장을 울린 목소리.
아직 안 끝났어어-!! 아직 안 끝났어어!! 화이티이잉!!! 웬 여자애가 혼자서 소리를 정말 목청껏 질러주었지. 플랜카드를 보니 우리 과 사람인 듯했어. 힘을 내라고 응원하던 그 여자애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그 애가 당황한 것도 잠시, 곧 그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마치 햇살처럼 네가 환하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했어. 사랑에 빠지는 거. 너에게 빠지는 거.
늑대는 평생 단 하나의 암컷만을 사랑한다. 나의 단 하나는 그 순간에 정해졌다.
너를 마음에 품고 사랑하고 함께 하면서 정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란 감정에 설레기만도 바빠 바라는 것없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 고작, 사랑. 고작 그 사랑이란 것에 내 세상이 온통 봄으로 물들어서 나 진짜 정신없이 행복하기만 했어.
네게서 낯선 냄새를 맡기 전까지.
너 냄새나. ? 뭔 소리야. 나 씻고 왔는데 냄새나 너. ??? 정말 무슨 냄새가 나는 건가 킁킁대고 있는 원두를 보며 진혁은 인상을 찌푸린다.
너 냄새나. 여우냄새가 아주 진동을 해. 뭔데 무슨 일인데 왜 너한테서 다른 짐승 냄새가 나는 건데
진혁의 두 눈이 차게 식는다. 원두를 사랑하고 처음으로 피가 마르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오랜만에 원두의 자취방을 간 날. 진혁은 자신을 죽일 듯 바라보는 여우요물을 만날 수 있었어. 너였구나. 내 짝에게 냄새를 뭍인 여우새끼가 도저히 적의를 숨길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날 진혁은 처음으로 원두에게 각인 욕구를 느꼈다. 아무도 건들 수 없게. 그녀가 오롯이 자신의 여자일 수 있게.
그녀를 품에 안고 싶어졌다.
조만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려 했었어.
이렇게 차가운 달빛말고 따뜻한 햇빛 아래서 처음 그 날처럼, 너와 두 눈을 마주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꽃도 한 가득 안겨주려고 했어.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나의 유일한 짝이 되어달라고
로맨틱하게 정말 멋있게 너가 두근거릴 수 있게
그렇게 고백하려 했어
정말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진 않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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