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늘 새로운 소재와 설정을 발굴해내기 위해 고혈을 짜낸다. 고서에 기록된 단 한 줄, 뉴스 속 한 줄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스토리와 인물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그중 남북 분단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비극적 로맨스는 매우 창의로운 소재임은 분명하다. 글로벌 인기까지 얻은 tvN ‘사랑의 불시착’의 성공요인이기도 했다.
북한 로맨스를 다룬 ‘사랑의 불시착’과 ‘설강화’의 차이점은 뭘까?
먼저 ‘사랑의 불시착’은 100% 허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여주인공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국경을 넘어 북한 지역에 불시착했다는 가벼운 설정은 현실감이 떨어져 일부에서 비웃음도 샀지만 결과적으로 영민한 선택이었다. 이는 ‘사랑의 불시착’ 시청자들을 자연스레 판타지 로맨스로 드라마를 소비할 수 있는 첫 발판이 됐다.
또한 ‘사랑의 불시착’은 극중 불거질 수 있는 남북 이념과 정치적 이슈는 철저히 배제하고 로맨스에만 집중했다. 리정혁(현빈)과 세리(손예진)가 힘을 합쳐 무찔러야 하는 상대는 북한 당국이 아닌 ‘형의 죽음’이라는 서사를 덧붙여 ‘조철강’ 개인으로 포커싱됐다. 리정혁의 부대원, 북한 동네 여인들 역시 정치이념은 최대한 줄이고 ‘동지애’나 ‘이웃간의 정’을 담은 인물로 표현됐다.
‘사랑의 불시착’의 남녀주인공은 ‘불시착’이라는 실수로 벌어진 운명 로맨스라면 ‘설강화’ ‘수호’는 남파 무장간첩으로 분명한 의도를 가진 인물과의 로맨스다. ‘수호’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에는 다소 불편한 캐릭터 설정이다. 물론 감춰져있던 ‘수호’의 서사가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실존인물 연상케하는 작명이 문제
‘설강화’의 우려점 또 하나는 ‘영초’라는 여자 캐릭터 작명에 있다. 민주화항쟁, 운동권, 그리고 여대생 ‘영초’라는 설정은 언론인이자 제주올레 이사장서명숙의 수필집 ‘영초언니’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민주화운동가 천영초를 떠올린다. ‘영초언니’는 서명숙 저자가 대학교 선배였던 천영초와 자신이 독재정권 하에 겪어야 했던 처참한 일상과 심리를 회상하며 기록한 책이다.
‘설강화’의 논란이 불거지자 ‘영초언니’를 편집한 ‘문학동네’ 이연실 작가는 자신의 SNS에 “민주화운동의 배경에 간첩이 있었다는 내용을 블랙코미디로 제작한다는 것은 민주열사들에 대한 지독한 모욕과 혐오범죄”라며 “‘영초언니’의 남편 정문화 선생님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간첩 혐의를 받아 모진 고문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 토로했다.
출판사 ‘문학동네’ 측은 29일 스포츠경향에 “‘설강화’에 대한 우려는 파악하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상황을 무겁게 지켜보고 있다. 드라마 방송 전이니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 드라마가 방송된다면 수필집 ‘영초언니’와의 유사성이나 저작권 침해 부분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방송사의 해명에도 ‘설강화’에 대한 대중들의 압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JTBC 드라마 ’설강화‘의 촬영 중지’를 청원하는 글이 10만 명(29일 기준) 넘게 동의를 얻고 있다.
이유진 기자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726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