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청년회가 중심이 돼 만들어진 조직이다. 영락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개신교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한경직 목사가 1945년 세운 교회다. 1945년 12월 베다니전도교회로 시작해 1946년 영락교회로 개명했다. 한경직 목사는 1945년 신의주 제이교회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소련군이 진주하기 시작하자 신의주 제일교회 윤하영 목사와 함께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어 대항했다. 이후 지부 결성 과정 등에서 여러 차례 소련 군정과 충돌했고, 결국 1946년 윤하영 목사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2월 발간한 ‘우리는 너무 몰랐다’에서 “공산당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대체로 서북지역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제일 먼저 모이는 곳이 교회였다. 우리나라 해방 후 대형교회문화가 생겨나는 현상도 이러한 분단 현실 속에서 잘 설명된다. 영락교회는 서북지역(황해도 평안남북도) 사람들의 집결지였다”고 설명한다.
보수개신교, 한기총 만들며 반공의식 강화
“영락교회는 청년회와 대학생회를 통하여
서북청년의 반공투쟁에 관여하였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개신교 일부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동안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교단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1988년 선언에 반대해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만들었다.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아 한기총 건설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였다. 이후 보수개신교 진영의 반공의식은 더욱 견고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서북청년단 활동을 사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개신교에선 이들을 건국세력으로까지 추켜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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