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이 자신이 게이임을 자각 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평소에 짓궂은 장난이나 치던 알베가 어느 날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부정할 수 없는 질투심을 느꼈을 때에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은 숨긴 채, 먼저 수줍게 고백해 온 같은 반 친구인 ‘혜영’과 연애를 하면서 확신했다. 누가봐도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였지만, ‘좋은 친구’이상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돌아보면, 멋있는 남자 쪽으로 본능적으로 향하던 눈을 기억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티비에서 예쁜 여자보다 멋진 남자를 보는 게 좋았고, 처음 두근거렸던 상대도 남자였다.
그렇지만 크게 괴롭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위안은 기본적으로 자기애가 넘치는 타입이라, 지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알게 된 게 기뻤다. 그리고 본인이 게이임을 자각한 그 다음날 혜영과 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알베에게 고백할만큼 무모하지도 않았다. 쟨 그냥 누가봐도 스트레이트인걸.
위안은 쓸데없는 감정소모와 괴로움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비워지길 기다렸다.
알베와 같은 대학에 입학하고, 일년쯤 고등학생때보다 더 붙어다니면서도 마음이 커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친구로서의 알베도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 이대로 쭈욱 친구로 지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1년쯤 뒤, 후배와 연애를 하게 됐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그리고 아이돌연습생인 일본인 타쿠야였다. 굳이 병역때문도 아닌데 왜 대학엘 왔냐는 질문에, 형 만나려고 왔나보죠. 라고 대답하는 능글맞기까지 한 남자친구.
남자와의 첫 연애는 타쿠야가 반년쯤 뒤에 데뷔하게 되면서 끝났다. 위안이 먼저 ‘우리 연애의 위험함’을 얘기하며, 예전처럼 선후배로 지내자며 이별을 통보했다.
며칠동안 눈이 부은채로 방송에 나온 타쿠야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연예인 타쿠야의 팬이 될만큼, 타쿠야는 성공했고 잘 지내고 있었다.
지금 위안의 나이 27세.
타쿠야 외에도 그렇게 몇번의 연애가 반복됐다. 졸업할 무렵이었나? 처음으로 알베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몇 번의 연애를 비밀로 하면서 알베가 위안이 왜 연애를 안 하는지 궁금해했고, ‘사실은’ 하며 위안은 어느 날 모든 것을 털어놨다. 알베는 예상처럼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그런 위안을 받아들였다.
‘왜 이제야 말했어? 그럼 그 타쿠야랑, 프셰므스와브, 타일러. 다 연애상대였던거야?’
위안과 최소 몇 달에서 일년씩은 붙어 다녔던 이들을 떠올리며 알베가 얘기를 했다. ‘아웃팅이야 바보야, 난 몰라. 어쨌든, 나 게이임.’
뭐 그런, 커밍아웃 스토리도 있다.
“너무 달리는 거 아니야?”
썸과 연애 중간쯤의 사이, 사회적 지위가 있고 그걸 커밍아웃으로 날려 버릴 생각이 없는 직장상사 마크와 함께 온 술자리였다. 꽤 나이차이가 있어 위안은 마크와 만나면서 이전의 연하의 애인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편안하지만, 막 빠져들지는 않는.
물론, 이전의 연애에서도 ‘얘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아’ 하는 감정은 느껴본 적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반쪽짜리, 혹은 미완성의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아 조금 울적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말없는 폭음도 불러온다.
“괜찮아. 내일 토요일이잖아.”
위안이 웃으며 마크의 어깨에 기댔다.
“형. 난 진짜 재미 없게 살아온 것 같아.”
“아직 스물일곱이잖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도 될 나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해?”
“참내. 형은 내 나이 때 공부만 하고 나보다 더 재미없게 살았잖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러면서 나한테 조언하지 마.”
쭈욱 공부만 하고 취업 후엔 승승장구하며 인간의 권력욕심이나, 사회적지위에 대한 욕심이 뭔지 보여주는 사람인 마크의 말에 위안이 핀잔을 하자 마크도 순순히 인정한다.
“그건 그렇네. 그래서 뭔가 하고 싶은 건 있고?”
“그게 없다는 게 문제지. 우울하당.”
그런 대화를 하고 있던 중에 뒤에서 우당탕 소란이 났는지 시끄러워 위안이 고개를 돌려본다.
아, 맞다. 아까 알베가 데릴러 온다고 했는뎅.
너 거기서 뭐하니?
“알베?”
알베는 금요일 저녁, 야근을 마치고 위안과 맥주나 한잔 할 생각에 연락을 해보았다가 이미 혀가 잔뜩 꼬인 위안의 목소리를 듣고는 짐을 챙겼다.
-어딘데?
=이태원 000
-갈게. 뭘 그렇게 벌써 취했냐?
=여기 게이바인데. 오지마 ㅋㅋ
-됐어. 너 픽업해서 집에 모셔놔야 안심됨.
나름 낯선 곳이라고 가면서 긴장을 좀 했지만, 겉모습부터 일반 펍과 다를바 없는 바라고 생각하며 알베는 바 안에 들어갔다.
저쪽에 자그마한 머리통이 단번에 보인다. 그리고 그 머리통이 옆의 남자의 어깨에 기대는 것을 보며 가까이 가려던 알베가 멈춰섰다. 남자친구인가? 흠, 요즘엔 남친 없다 그랬는데.
알베는 위안과 그 옆의 남자를 보며 여기가 남자끼리 스킨십을 하는 걸 보니 게이바가 맞긴 맞나보군, 생각하며 미소를 띄었다. 그러고 보니, 저정도의 스킨십은 위안과 자신도 하는데 게이바라는 편견같은게 자신에게 있었나? 그런 고민을 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알베와 위안은 고 1때부터 같은 반으로 단짝이었다. 알베는 위안을 조용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타입으로 기억했다. 그렇지만 여자친구와 연애도 하는 평범한 느낌?
그렇지만 덤벙거리거나 맹한 구석도 많아 손이 많이 갔던 친구였다.
대학도 같은 곳에 입학하고 알베와 위안은 더 가까워졌다. 신입생 1년 내내 같이 먹고 토한 술이 학교 –연못을 채우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알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위안과 매일 만나던걸 일주일에 두세번정도 만나면서도 우정을 유지했고, 그 사이 위안에겐 같이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나중에 위안이 커밍아웃 하고 나서야 그들이 남자친구일거라고 유추하지만.
최근엔 남자친구가 없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와서 “위안의 친구입니다”인사하면 당황하려나 싶기도….!
그렇게 위안의 뒷모습을 보고있을 때,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남자에 고개를 돌린다.
“나랑 놀래, 자기?”
하는 말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일행이 있…”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입술을 붙여오는 남자에 놀라 알베가 남자의 얼굴을 밀어내며 뺨까지 슬쩍 때려버리고는 사과했다.
“아, 제가 놀라서. 미안합니다.”
놀라서 손부터 나가버렸네; 생각하며 알베가 사과를 한다.
“미안하면, 데이트해주던가~”
남자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맞은 뺨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을 붙인다.
“알베?”
소란에 고개를 돌린 위안이 알베를 보고는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는 알베에게 걸어가, 내 일행이라고 남자에게 얘기하는 사이 마크가 위안의 짐을 챙겨 곁에 둘의 곁에 다가온다.
“나가죠.”
멍청하게 서서, 위안이 팔짱을 껴올동안. 그리고 위안과 함께 있던 남자가 나가자며 이끌어 바깥에 나올때까지 알베는 머리속이 하얬다.
당황스러웠던 순간에 본 위안의 얼굴 뒤에 비친 어떤 빛을 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이 두근거림은 뭐지? 설마 무슨 후광 본건가? 생각하며 알베가 한참을 아무말 없이 걷는다.
“뭐야, 알베~ 많이 놀랐어?”
놀리듯 묻는 위안이 질문해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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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정이 알베가 게이가 키스하면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뺨 날리고 사과할 것 같은 젠틀한 스트레이트 타입이라고 쓴 거에 필을 받아섴ㅋㅋㅋ 살을 붙여보았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