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심리지원 의사들이 본 단원고 교사·학생들
학생들은 어른들을 원망하면서도 지금 선생님들의 건강을 가장 많이 걱정했다. 반대로 교사들은 털어놓지 못하는 심적 고통을 가슴에 쌓아놓고 상담조차 기피할 만큼 자책이 심했다.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온 24일 학교에서 심리지원 중인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이 전한 세월호 사고 후유증은 깊고 컸다. 침몰사고가 난 지 9일이 지났지만 경황없던 충격에 묻어둔 상처가 이제 막 돋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와 언론, 시민들이 학생과 교사를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학생들, 어른들 원망해도 교사들에겐 크게 의지
아픔 내색 못하는 교사들 자책감에 상담조차 기피
■ 학생들은 “버림받았다” 토로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운선 경북대 교수(소아정신과)는 학생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아이들은 어른들이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한다. 구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구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더욱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 “우리가 버림받은 것 아니냐”며 섭섭함을 표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심리적으로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선생님은 괜찮으신가’였다. 정 교수는 “교사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선생님이 괜찮으면 아이들도 괜찮다”며 “학생들의 회복 속도는 교사들이 얼마나 건강을 빨리 회복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 교사들은 죄책감에 시달려
교사들은 이번 사고의 또 다른 피해자면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아픔을 내색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교사들은 혼자 있거나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괴로워하고 있다. 진도에서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고 실종자 가족을 도운 한 교사는 지나가던 기자가 무심코 던진 “생각보다 (교사들 상태가) 괜찮네” 한마디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단원고로 전화를 걸어 교사를 가해자 취급하며 막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단원고 교사들을 상대로 심리지원 중인 조인희 원장(조인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잃고 내가 숨쉬고 밥먹고 잠자도 되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학생 등교가 재개되기 전부터 단원고에 상주하며 교사들을 위한 교육과 상담을 먼저 시행했고, 운구 행렬을 맞이하는 교사들을 옆에서 돕고 있다.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단원고 측도 교사들이 건강을 되찾아야 학생들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관리자급 교사들은 일반 교사들에게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권하고 있다.
■ 사람따라 반응 늦게 나올 수도
현재 학생과 교사들이 보이는 증상들은 자연스러운 급성스트레스반응과 애도반응이다. 시간이 흐르면 90%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만 일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 등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당장은 별다른 이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난 후 증상을 보이는 ‘지연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조 원장은 “학교가 안정화되고 상주 전문의들이 떠나면 지자체 등이 지속적인 심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전문의들도 심리치료 콘텐츠 제공 등 후속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안산에 ‘심리외상지원센터’를 3년간 한시적으로 설치해 피해자와 유가족, 지역주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진단·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 원장은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서는 “그분들은 기다림과 상실감으로 지쳤기 때문에 신체적 지원이 더 중요한 시기”라며 “수면과 음식 보충 등을 통해 체력적으로 안정됐을 때 심리적 접근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피해자들이 슬픔과 애도를 표현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지켜봐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 원장은 “앞으로 자식 잃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되는 감정을 많이 느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은둔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유가족들의 감정 표현을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진·박은하 기자 daisy@kyung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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