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김윤형(대기업 사무직, 32)씨는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꾸밈비'(시집에서 예단비를 받고서 신부에게 일부 돌려주는 돈)로 국내에서 명품 핸드백을 장만하려다 포기했다. 인터넷을 뒤지다 사려는 명품 핸드백의 해외 판매가격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사면 지난 7월 한·EU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관세면제를 받을 수 있어, 세관신고를 거쳐 부가세(10%)를 내고도 국내보다 100만원 이상 싸게 살 수 있었어요."
국내 소비자들을 봉으로 삼는 명품브랜드들의 '국제 바가지'가 심하다. 한·EU FTA 체결 이후 가격은 내리지 않은 채 되레 '신제품'이라며 가격을 비싸게 받기 일쑤다. 또 국내 백화점들에 대한 잦은 수수료 인하, 변칙 직원세일 등 국내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들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 현지 300만원 제품이 국내에선 460만원
올해부터 루이비통·구찌·버버리 등은 자체 사이트를 통해 프랑스·이탈리아·미국·한국 등의 현지 판매가격을 공개하고 있다. 구찌의 '크루즈 재키 중형 숄더백'은 한국에선 465만원(스위스 선적으로 관세면제 대상 아님. 관세 8% 포함)에 팔고 있지만, 본사 지역인 이탈리아에선 304만원으로 무려 160만원의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50%나 바가지 씌우고 있는 셈이다. 이 백은 미국과 영국에서도 각각 309만원(관세 포함)과 302만원에 팔린다. 우리 소비자들은 FTA 체결국인 EU 국가뿐 아니라 미국·영국 등보다 훨씬 비싸게 구매하고 있는 셈이다.
샤넬의 인기 핸드백 '빈티지 라지'의 한국 내 가격도 663만원인데 프랑스에선 517만원, 미국은 530만원 선이었다.
명품업체들은 그간 환율차이를 내세우며 비싼 가격을 설명해 왔지만, 이젠 환율도 변명이 안 된다. 샤넬 빈티지 미디엄 가방의 유럽 현지가격은 3110유로. 4일 기준 원·유로 환율(1유로=1521원)을 적용하면 471만원이지만 국내 가격은 607만원이다. 유럽에서 이 가방을 산 뒤, 세금 환급(13%)을 받으면 409만원에 가방을 손에 넣는다. 이것을 국내에 들여와 세관에서 원산지 증명서를 내고 부가세 10%를 내더라도 제반 비용은 450만원이다. 국내구입 때보다 150만원이나 싸다. 가방 2개를 살 경우 왕복비행기 표값을 내고도 남는 장사인 셈이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신제품'이라며 가격을 교묘하게 올리고 있다. 신제품인 구찌 2012 크루즈 인터로킹 대형 숄더백은 유럽 228만원(1490유로) 제품이 국내에선 338만원으로 110만원이나 높게 가격이 책정됐다. 뉴재키 백의 경우 2011 가을 겨울 상품이 291만5000원인 데 비해 2012 크루즈 상품은 321만5000원이다. 같은 디자인인데 상품 구성만 살짝 바꿔 가격을 30만원 올렸다. 샤넬의 경우 2009년 408만원짜리가 지난해 463만원, 올해 579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No 세일' 샤넬, 자사 직원에겐 최대 90% 할인 판매
상당수 명품업체들은 '노 세일 전략'을 내세워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다. 재고관리를 위해 세일 없이 재고품을 본사로 보내거나 불태워 버리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취재 결과 샤넬은 VIP를 대상으로 신발과 일부 가방 제품은 최대 50%까지 여름·겨울 세일을 실시 중이었고, 최근에는 최대 90% 직원세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백화점 등에 내는 10% 이상의 수수료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취재 결과 지방 백화점에 매장을 내면서 5% 이하로 인하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해외 명품들이 브랜드 파워를 내세우며 국내에서 횡포와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소비자들도 맹목적인 명품 구매 습관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