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한희정, 잔혹한 여행
어쩌다 내 이름을 불러 준 그 목소리를 나는 문득 사랑하였다
너의 색으로 변해버린 나는 다시는 무채색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네가 없는 곳에도 너는 있고 내가 가는 곳마다 너는 있다
내 생각보다 네 생각이 많아 내가 너인 때도 있었다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가듯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는 내게 그 모든 것이다
너는 너무도 깊어 내 작은 지느러미로 다 헤아릴 수 없었다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나와 상관없이 잘도 돌아가는 너라는 행성, 그 머나먼 불빛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잘 가라, 내 사랑 너를 만날 때부터 나는 네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이미 너의 죽음이 되어 있었고 너는 이미 나의 죽음이 되어 있었다
마음 안에 그어 놓은 눈금 바로 아래만큼만 나는 너를 채워두리 마음 먹었었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허연, 오십미터 中

어떤 사람은 다리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
풍경을 바라보는 이는 누각에서
그 사람을 바라본다
밝은 달은 그 사람의 창을 장식하고,
그 사람은 다른 이의 꿈을 장식했다
변지림, 단장

불덩어리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만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왜 이런 걸까
겉으로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유는 있다
내 사랑을 쏟고 싶은데
사랑하는 이가 받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이 몰려오고 있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아본다
뺨과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어찌 할 수 없구나
용혜원, 이유는 있다

기다란 슬픔을 차곡차곡 접어개키지만
접을수록 길어지는 신경
푸르르르 돋아나는 신경들
문앞에 길게 물결치는 발이 되고
사랑은 어느 곳에서부터 끊겼을까
끊긴 곳에서 삐져나온 실밥들에게
이제 그만 무뎌지라고, 속삭인다
박연준, 창백한 잠

머나먼 길을 혼자서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너무나 목 말라 오듯이
정작 우리 너무 서로가 그리워질 때
참을 수 없어 비틀거리지 말기를
방울방울 떨어지는 아픔으로 인해
절대 주르르 눈물 흘리는 일 없기를
서서히 가슴 말라가는 일 없기를
김하인, 소녀처럼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보기도 전에
꽃이 아름답다는 말을 먼저 배웠다
그 말이 꽃의 아름다움을 꺾었다
나는 꽃을 잃어버렸다
고은강, 최초의 습격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
마경덕, 슬픔을 버리다 中

맞은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그대 눈빛이
너무 환하다
중앙선이 보이질 않는다
이경림, 밤 길

나는 흔하고, 어디든 있고,
그러니 내가 혼자서 울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유희경, 오늘은

바람이 꽃잎을 흔들고
흔들린 꽃잎은 상처를 흔들고
마음을 흔든다
흔들린 마음 하나
더할 수 없이 위중해진
단단한 슬픔이 되어
목구멍을 막는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지
점등 별의 망루에 올라 잠시 스위치를 켰을 뿐
그래, 그래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서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
김요일, 뿐

그대에게 보낸 말들이
그대를 다치게 했음을
그대에게 보낸 침묵이
서로를 문 닫게 했음을
내 안에 숨죽인 그 힘든 세월이
한번도 그대를 어루만지지 못했음을
김재진, 새벽에 용서를

내 사랑은
탄식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황혼의 나라였지
내 사랑은
항상 그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가도가도 닿을 수 없는 서녁하늘
그곳에 당신 마음이 있었지
내 영혼의 새를 띄워 보내네
당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물어오라고
이정하, 황혼의 나라

정들었던 사람아
헤어짐을 아파하지 말자
들꽃처럼, 들꽃처럼, 실로 들꽃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삼삼히, 그저 삼삼히
조병화, 들꽃처럼

나는 노을을 잔뜩 불러다놓고
노을의 바깥을 생각한다
입경섭, 너의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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