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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현ll조회 2589l
이 글은 8년 전 (2016/5/03) 게시물이에요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

때때로 날은 흐리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

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

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

아침을 음악으로 열어보아도

사냥꾼처럼 쫓고 쫓기다 하루가 가고

그 끝 어디에도 멧돼지는 없었어

생각하니 나를 낳은 건 어머니가 아니었는지도 몰라

어머니가 생명과 함께

알 수 없는 검은 씨앗을 주실 줄은 몰랐어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

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

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

함부로 돌멩이처럼

문정희, 기억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이런 날이 다시 올까?"

사과를 따며 누군가가 툭 던진 말이 우리들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똑같은 날은 없어."

우리들 중 누군가가 서글프게 맞받았다.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

늘 고비에 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

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이번이 마지막 고비다

정호승, 고비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천양희, 밥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저녁에

우는 새를 보았어.

어스름에 젖은 나무 벤치에서 울고 있더군.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아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도

날아가지 않아서.


내가 허깨비가 되었을까

문득 생각했어


무엇도 해칠 수 없는 혼령

같은 게 마침내 된 걸까, 하고


그래서 말해보았지, 저녁에

우는 새에게


스물 네 시간을 느슨히 접어

돌아온 나의

비밀을, (차갑게)

피 흘리는 정적을, 얼음이

덜 녹은 목구멍으로

내 눈을 보지 않고 우는 새에게

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 12  여름 천변, 서울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한밤중에 골목에 나가서

비닐 봉지처럼 시꺼먼 하늘 올려다보곤 한다

세상이, 이 세계가 호흡을 하는 것에

귀기울여보는 것이다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치욕스럽다

(중략)

나에게도 마음이 미쳐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용광로처럼 뜨거웠으므로

그때

이 한 세계를 육체 속에 첨벙 던져버린 것이다

건져지질 않는다

김소연, 학살의 일부 12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우리는 왜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걸까

조혜은, 장마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정말로 입술이 찢어지도록 아려오는 일, 경련이 일어나는 웃음. 우걱우걱 구겨 넣는 밥 한 숟가락은 비행기안의 멀미만큼 어지럽고.



이이체, 추락한 부엌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몸이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어려운 방정식을 푼다

풀어야 한다

혼자서

하염없이 외롭게

혼자서.



황인숙, 병든 사람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 못하고

하는 밤

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 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류시화, 거리에서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이 거대한 유기체인 자연조차 제길을 못 찾아 해메는데 

하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 하지는 마.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하며 몸부림 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中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아프지도 않은데 휘어진 시계처럼 의사는 의자에 달라붙는다 아프지도 않은데 간호사는 벌써 약을 짓기 시작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택시는 위독하게 풍경을 잡아먹고 아프지도 않은데 측백나무 잎은 주삿바늘처럼 뾰족해진다 아프지도 않은데 잠자는 내 몸 구석구석을 아버지는 만지작거리고 아프지도 않은데 동생은 나를 이상한 벌레처럼 쳐다본다 아프지도 않은데 의료보험료는 과다 청구된다 아프지도 않은데 응급실 불빛은 비상구처럼 반짝이고 아프지도 않은데 이력서는 또 휴지통에 버려진다 아프지도 않은데 낮달은 링겔병처럼 떠오르고 불안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데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는 보석처럼 빛나고 아프지도 않은데 나는 아픈 사람보면 같이 울고 싶어진다



박진성, 기억의 고집







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 인스티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겠는 삶의 중앙에 나 혼자 서서, 영원히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



황경신, 한뼘노트ㅡ생각이 나서 中

여시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즐거웠던 여시들도 있을 거고, 또 슬프고 아팠던 여시들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하루하루 시간을 떠나보내면서 많은 굴곡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가끔 너무 행복할 때엔, 동시에 불안감이 몰려올 때도 있어요.

이 행복이 끝나면 또 나는 어떤 시련이 나를 감싸, 나를 아프게 할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들 때에는 즐거운 시와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어떤 시련 속에 우뚝 서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 시와 글을 읽는 것도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제가 적어 올린 시와 글들이 여시들에게 작은 토닥임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이만 글 마칠게요.

어떤 불안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또 행복한 나날들이 여시들 앞에 가득하길 바래요.



좋은 시와 글들로 다시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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