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너보다 더한 사람 만나서 나보다 더 아프기를.
너의 순위가 다른 것들에 밀려나는 비참함을 배워보기를.
기다리고 애타는 입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보기를.
나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며
투정 부리는 아이가 되어 보기를.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너의 말이 통하지 않음에 씁쓸해지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기를.
조유미 / 사연을 읽어주는 여자

내가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아직 모든 것을
정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추억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지
너를 정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직도 이별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사랑이 가여워서 우는 것이지
너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직도 잠들기 전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자리에 공허함이 드는 것이지
너로 채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조유미 / 사연을 읽어주는 여자

"당신 뜻대로 하겠어요." 이런 마음이 들었던 적 있는가?
이런 경험이 없다면 불행히도 한 번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느낀 적이 없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감정에 포로가 되는 순간 황소고집도 자신의 뜻을 꺾고는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게 된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은 카페라떼인데도
상대방이 먹고 싶은 아메리카노를 함께 마실때
오히려 더 큰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 상대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 때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감정이 가진 신비한 힘 아닌가.
자신의 뜻보다 상대방이 뜻에 따라 사는데도 기쁨을 느낄수 있다는 것,
이것은 오직 사랑에 빠질때만 가능해진다.
강신주 / 강신주의 감정수업

퇴근을 놓치고 선 하늘의 망연한 얼굴만 들여다 볼 때
이대로 잠시 앓기로 한다
단지 오늘만, 끝으로
보고싶다 한마디가 몰고 온 이 하루의 고약한 병증
박소란 / 통속적 하루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과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봄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진은영 / 시인의 사랑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 채 실려간다
한 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박소란 / 노래는 아무것도

사, 랑, 해
너무 떨려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며
한 음절씩 끊어말했다
황인찬 / 오수

네게 또다른 갈망들이 있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네가 슬프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그렇지만 내겐 상관 없어.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는 상관 없어. 내가 알게 뭐람.
마르그리트 뒤라스 / 이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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