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그대에게 가고싶다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어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때까지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마리 튼튼한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이정하, 그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그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참 많이도 막막했습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라지만
말이야
얼마나 그럴듯한가만은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해
한 길 물 건너듯
나를 훌쩍 건너가
저 멀리 냇물로
흘러간 그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참 많이도 울적했습니다
가을날
제 할 일 다 하고
잎사귀는 떨어진다지만
우리 사랑은
꽃피우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잎새 같아
그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참 많이도 슬펐습니다
쉽사리 잊을 수 있기에
그대는 헤어지자 했겠지만
그대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차마 그럴 수 없어서
그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참 많이도 난감했습니다
이 세상
그만 살고도 싶었습니다
최은하, 홀로 떠나야지
손 씻고 떠나야지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게
산마루에 걸친 구름장 바라보며
매듭지던 매듭일랑 놓아버리고
챙겨 일어나 홀로이서 떠나야지
되돌이킬 수 없는 자리
나도 거기 머물렀다가
훌훌 털어내고 떠나야지
한자락 바람으로 고이 서성이다가
무슨 말이란 말씨도 흘려버리고
저마다 지닌 못으로 박히고
대못으로 아픔 박으며 빈 들녘 떠돌다가
불러주는 이 없어도 휘휘 휘돌다가
떠나올 때 되돌아 보던 자리
내 꿈자리로 정녕 자리잡고
누군가의 이야기 중의 이야기로
훌쩍 박차고 가벼이 떠나가야지
백창우, 떠나렴
떠나렴
우울한 날엔 어디론가 떠나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렴
아무도 없다고 이놈의 세상 아무도 없다고
울컥, 쓴 생각 들 땐
쓸쓸한 가슴 그대로 떠나렴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돌아보렴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만났던
고운 사람을
누군가가 그대 곁에 있는 것보다
그대가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던 것을 다시 느끼렴
떠나렴
사는게 자꾸 슬퍼지고
마음이 무너져내릴 땐
책이나 한 권 사들고
아무 기차나 집어타렴
박성철,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사랑의 칼날에 베여
상처난 아픔을 간직한 채
주적주적 비 내리는 하늘 아래서라도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아픔의 추억이 비가 되어
내 눈물과 함께 흐르고
잊혀진 기억들이 눈발로 어깨를 누를 때도
지난날을 서글펐다 하지 마라
내 죄는 사랑에 미흡했던 것이 아니라
표현에 미흡했던 것뿐이니
하지만 모를 일이다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대를 떠나가게 만든 것일지도
떠나가는 이의 가슴이 더 아플 수 도 있다는
슬픈 가능성을 신앙처럼 간직한 바보가 되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