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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 아이를 키우는 30대 중반 여자입니다.
초등학생이 된 큰아이와, 아래로 5살된 쌍둥이가 있습니다.
쌍둥이가 어릴적엔 외출을 거의 한번도 못했습니다.
나가봤자 아파트 앞 놀이터, 유모차 끌고 산책로... 이정도였죠.
데리고 나가기엔 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고나니 오후나 주말엔 무척 심심해합니다.
그럴때는 자전거 끌고 공원에 가거나 키즈카페, 수영장... 이런곳에 다니곤 합니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도저히 아파트에 사는건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이자 아이들에게도 스트레스일것 같아서 2년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한 덕분에 아이들이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내 집에서만 노는건 아이들도 답답한가보지요.
큰아이가 7살, 쌍둥이들이 4살 될때부터 식탁예절과 공공질서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쳤습니다.
덕분에 올해부터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도 몇번 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밥 다 먹고 나오는 순간까지 우리 아이들은 자리에서 엉덩이 한번 떼지않고 소곤소곤 말합니다.
주변에서도 많이 칭찬해주셨습니다.
공공장소에 갔는데 아이가 떼를 쓰거나 큰소리를 낼때면 바로 들쳐안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기를 몇번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절대 떼쓰거나 하지 않더라구요.
키즈카페에서조차도 과자나 음료수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그런곳에서 하나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면, 마트에선 2개를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진짜 마트에 들러서 2개씩을 사주길 몇번 했더니 전혀 조르거나 하지 않길래 참 좋았습니다.
암튼 꾸준히 아이들에게 공공질서에 대해 교육시키는 그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또한 유별나게 착하거나 얌전한 아이들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며칠전,
쌍둥이들 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어 큰아이와 함께 데리러 갔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씩만 사주세요- 하길래 알겠다며 동네 마트에 갔습니다.
큰 마트는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슈퍼마켓도 아닌 동네 마트입니다.
항상 마트에 가면 통로들이 그리 넓지않기 때문에 한줄로 서서 다니라고 가르쳤기에...
우리 아이들은 셋이 쪼로록 한줄로 서서 아이스크림 코너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걷지만 아이들이기에 걸음이 어른들보다는 느리겠지요.
그래서 한줄로 서서 걸어가면 옆으로 바쁜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으니.... 아이들은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마구 떠미시는 겁니다.
아우 빨리가 쫌 가! 가!!!! 가!!!!!!!! 하고 소리치듯 하시며 아이들을 미셔서... 조금 당황했지만
아이들에게 "아주머니께서 조금 바쁘신가보다. 벽으로 잠깐 붙어서 얘들아" 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그 아주머니께선 저를 매섭게 쏘아보시며
애들을 데리고 이런델 오고 난리야...... 하고 휙 하니 가버리셨습니다.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르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복잡하니까 미리 저 쪽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제가 아이스크림 3개를 들고 계산을 하고있는데, 어느새 제 뒤로 오신 아까의 그 아주머니...
애엄마, 애들 데리고 이런데 오는거 아니야!!!! 하시더니 제 어깨를 몸으로 확 밀치시고 나가시더군요.
제가 정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안되는 곳에 간것입니까?
노키즈존이라면 안가겠습니다.
우리아이들이 민폐가 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안가겠습니다.
아이들이 폐를 끼쳤다면 보호자로서 사과드리고 바로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는것이 당연한것입니까?
마트에서 나온후,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가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할머니는 왜 화가 난거야?"
하지만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할머니께서 바쁜일이 있으셨나봐, 우리 다음부터는 마트안에서는 조금 더 빨리 걷도록 하자" 라고 얘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을 생각하며 다음에 마트에 가서 줄을 서서 조금 빠르게 걷는 우리 아이들에게 또 누군가는 '아이들을 마트에 데리고 와서 뛰듯이 걷게 만든다'라며 손가락질 하겠죠.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볼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많은 것이 처음이고, 궁금한 아이들에게도 적절히 세상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하는것 아닐까요?
자연을 벗삼아 노는것도 교육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길을 걸으며 경찰서 앞도 지나가고, 횡단보도도 기다렸다 손들고 건너가보고, 지나가는 할머니를 보기도 하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배웁니다.
물론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방관하는 부모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잘못을 행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까지 너무 차가운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건 아니신지요.
관대해달라는것이 아닙니다.
이해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배워가고 있으니
아이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우리 모두 아이였던 때가 있는데,
제대로 자녀들에게 마땅한 질서와 규율을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들에 대한 생각때문에 모든 아이들과 부모들을 보기만 해도 혐오한다는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부디 부모는 부모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모두가 사회를 이루는 소중한 구성원으로 서로를 아껴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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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추가드려요.
많은 분들께서 관심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읽어보며 감사하게도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참, 슈퍼의 아주머니께는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좀 느려서요" 하고 사과 드렸습니다.
그분도 바쁘셨다거나 그날따라 안좋은 일이 있었다던가 하셨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래요.
우리 모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하나하나의 톱니바퀴잖아요.
하나라도 빠지면 안되는 소중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은 한 가정을 꾸리시고 이끌어나가시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있는 힘껏 애쓰시는 분들이시고
취업준비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하에서 최대한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시고
주부들은 가족구성원들이 최대한 안락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쓰시는 분들이시고
청소년들은 장차 각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우리나라를 다시 뛰게 할 분들,
저희의 부모님 세대분들은 전쟁이후 극도로 어려웠던 우리나라를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만드시느라 온몸으로 애써오신 분들
일용직 노동자가 없으면 어찌 건물과 아파트가 세워지고,
자영업자가 없다면 저희가 어찌 쉽게 물건을 구입하고 맛집에 가보겠습니까
미화원이 없다면 곳곳이 악취로 뒤덮일 것이고
기사님들이 없다면 어찌 손쉽게 이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자신을 하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 참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모두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땀흘리며 악착같이 살고 계시잖아요.
모두가 중요하고 소중한것 같습니다.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매일 아침밥도 못먹고 출근시간 전쟁에 시달리고 하루종일 많은 업무와 상사의 스트레스에 시달리시는 직장남성분들이 가까스로 한숨 돌리며 한대 피우는 담배를,
그리고 그런 직장여성분들이 삶의 즐거움을 느껴보려 수없는 고민끝에 장만하는 가방을,
하루 24시간 아이를 돌보느라 내 몸 치장 한번 제대로 못해보는 주부분들이 어느 하루 시간내어 친구들과 마시는 커피 한잔을,
매일 학업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하는 기특한 자신의 마음에게조차 시달리는 학생들이 친구와 만난 잠시의 휴식을,
하루하루 피가 마르게 애타고 있는 취업준비생들과 시험공부중인 분들이 하루 두려움과 압박감을 잊어보고자 마시는 술 한잔을,
조금 넓게 바라봐주세요.
저도 아이들에게 질서와 규칙에 대해 많은 교육을 시키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어느때 어디에선가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
아이들은 너무도 소중하죠.
내 목숨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만큼, 나 자신보다도 중요한 존재일 것입니다만
모두가 힘들고 애쓰며 사는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더 힘내주세요.
지금은 부모에게만 인정받으면 다른것이 필요없어보이는 듯한 아이들이지만, 하루하루 커가며 아이들은 사회에서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모쪼록 우리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어제보다 조금 덜 힘든 하루가 되길 바래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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