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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金堉, 1580~1658)
왜란과 호란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고, 정부는 국가 재정을 비롯한 전후 복구 문제가 급박한 실정이었다. 전란 후 재정복구책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인물이 바로 김육이었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파탄이 난 국가 재정만을 생각했지만, 김육은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라 생각했다. 10여 년간 농사꾼으로 살았던 김육이야 말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할 최고의 적임자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육 [金堉] - 대동법에 일생을 바친 조선 최고의 경세가 (인물한국사)
“평소에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는데 정승이 되자 새로 시행한 것이 많았다.
그가 죽자 상이 탄식하기를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효종실록 효종 9년(1658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