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18년(1369년) 가을 7월 신축일(9일), 거제와 남해현에 있는 투화(귀화)한 왜인들이 배반해 자기 나라(일본)로 돌아갔다.
공민왕 18년(1369년) 11월 27일, 왜적이 영주와 온수와 예산과 면주의 양곡 운송선을 약탈했다. 이에 앞서 왜인들이 거제도에 살면서 영원히 화친관계를 맺고자 하므로 조정에서 그것을 믿고 허락하였었는데, 이 때에 와서 도적이 되어 침입한 것이다.
- 고려사 권제 41 공민왕 18년
위의 고려사 본문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와 영원히 평화롭게 살겠다며 고려에 투하, 즉 귀화한 일본인들이 거제도와 남해현 등 고려의 남쪽 해안에서 살다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려와 맺은 약속(영원한 화친관계)을 어기고 자기들 나라인 일본으로 돌아갔고, 그리고 나서 4개월 후에 왜구가 되어 고려를 침입하여 양곡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일본인이지만, 고려에서 한동안 살았으니 고려의 지리나 내정에 대해 비교적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왜구들이 고려를 침입할 때, 아주 유용한 안내원이자 정보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왜구가 고려의 세금 운송 상황이나 양곡 창고 등의 중요한 위치들을 잘 알고서 행동한다고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위의 고려사 기사를 보면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다. 고려에 귀화하여 살던 일본인들이 왜구에 가담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밖에도 일본 영토에서 고려와 가장 가깝고 교류가 잦아 고려의 사정을 잘 알던 대마도 주민들 또한 왜구에 가담했으니, 왜구가 고려의 해안을 재빠르게 드나들며 노략질을 일삼는 일도 가능했으리라.
그렇다면 고려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왜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가서 왜구에 가담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고려의 내정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족들과 함께 쳐들어와서 노략질을 하기에 좋은 때라고 여겨서가 아니었을까?
- 황국사관과 고려 말 왜구/ 이영 저/ 에피스테메/ 306~307쪽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