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데코O 김민희X

+ 영화 아가씨는 판타지의 집합체다
이 영화가 여-여 동성애로 주목을 받았지만
내가 볼 땐 오히려 그 부분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봐.
적어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부분이잖아.
이 영화가 많은 덕후들을 양산하는 건
그게 레즈비언의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판타지를 담은 사랑이라서가 아닌가?
경제적인 걱정 없이 사랑에만 정신을 쏟을 수 있고,
다른 사람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순애보가 있지.
우리는 대부분이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사느라 사랑에 집중할 수 없고
인간이란 자꾸 다른 사람을 찾는 간사함을 지녔는데
그 모든 걸 초월한 듯한 사랑이잖아.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아는데,
내가 너무나 하고 싶은 사랑의 형태이기도 해서
마치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허우적대게 되는 것 같아.
내가 가진 원죄를 모조리 씻어내고 투명하게 상대에게 보여준다는 것도 판타지야.
남편이나 아내, 남친이나 여친에게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아.
결혼을 하고서도 내 집안의 문제 중 어떤 것은 감추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잖아.
혹 그것을 드러냈을 때, 버림받지 않을 확률보다 버림받을 확률이 더 높지.
버림받지 않는대도..? 서로의 기억에 각인돼서 상대든 나든 어느쪽이든 오랜 시간 고통받는 경우가 많아.
상대방을 추궁하는 요소가 되거나 싸울 적에 무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
온전히 상대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나는 못할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감독님이나 배우들이 얘기했던
'여여 커플이라는 게 무슨 문제지? 그건 이 영화에서 아무 문제가 안 돼'라는 의미를 알 것 같아.
우리는 히데코와 숙희처럼 사랑하지 못했어.그건 주인공들이 동성애자라서였나?
아니지. 우리는 그냥 '그런 사랑'을 못 하는 거야.
이 현실에서.
이 영화가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애틋하고, 중독적인 이유를
여-여의 사랑에서 찾으려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해.
주인공들이 둘 다 예쁜 것도 물론 일종의 판타지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를 가진 이든 다 예쁘게 보이니까
내가 주인공인 인생에서는 외양이 문제가 안 되지 않을까?
내가 저런 사랑에 기꺼이 나를 바치려는 인간이 아니라는 자괴감,
나를 저렇게 사랑해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긴 어려울 거라는 서글픔,
그게 이 영화가 가진 판타지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왜 주인공들이 자아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느냐고?
그게 저들에게 왜 필요하지?
자아성찰이 필요한 게 누군데.
진짜 사랑을 못 하는 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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