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이 대부분 잘못 인식하고있는 근현대사 인물이있는데 그분은 바로

백범김구 입니다.
흔히들 런승만(이승만)을 비판하는 글이나 친일청산을 못했다는 글에 대부분 리플들이
대한민국 첫 단추는 런승만이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이어야 했다 그랬으면 친일 청산도 제대로 했고 대한민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상상을 통째로 박살 내버립니다. 근현대사를 좀 더 깊게 파신 분들이라면
절대 백범 김구의 정치행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이 없을 겁니다

아마 많은 대중들은 백범 김구의 정치 성향이 중도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잘못된 부분이며 김구의 정치 성향이 중도라고 인식되는 건 말년에
이승만한테 배신당하고(장덕수 피살 사건)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이를 타계하기 위해서
김규식과 함께 방북을 해서 김일성을 만나려고 했던 것 하지만 김규식은 김일성이 자기들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눈치채고 병을 핑계로 회의에 참석을 안 했지만 김구는 철저하게 김일성에게 농락됨...
민족분단을 막기 위해 북으로 간 게 아니라 자기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북에 갔던 거였죠
김구는 평생을 반공주의를 지향해온 우익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에게 뒤통수를 맞기 전 즉 임시정부 시절부터 항상 이승만을 지지하고 어울렸던 인물입니다.
서로 형, 동생이라고 불렀을 만큼 친밀한 관계였죠 김구는 이승만을 우남이 형이라고 불렀으며 친밀감을 들어냈었음

이승만과 김구의 돈독함을 또 알려주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1930년대 안창호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던 옥관빈 피살 사건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구는 이승만을 옹호하는 임시정부 인원 중 한 명이었으며 1930년대 임정 내에서
또한 그 이전에 레닌이 중국 내에 있는 조선인들이 운영하는 공산당을 지원하기 위해 건네준 40만 루블을 가로채려고 김립을 죽이면서 안창호 측과 대립한 적도 있었죠
김구는 좌익계열 인사들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방해가 된다 싶으면 바로 암살을 시도했었습니다.
또한 거물급 정치인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등 암살 주도 용의자 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김구이기도 하고요...
학계에서도 김구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고 당시 정치인들도 김구의 소행일 거다 김구가 확실하다는 증언들이 많음..
그래서 당시 백의사라는 극우테러단체 주도자가 김구일거라는 추측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충격적인 걸 말하자면 김구는 친일청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애초에 김구에게 경교장을 증여한 사람도 유명한 친일 기업인 최창학입니다
그리고 김구의 정치자금을 대준 것도 친일인사들이었고요
이승만과 한민당이 반탁운동으로 친일인사들을 옹호해줬을 때 김구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죠 김구는 배신당하기 전까지 이승만과 가장 돈독한 정치적 파트너였자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사실 1945년 독립 이후 대다수의 정치인들의 정치자금들은 친일파들이 대주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거물급 정치인이 이승만 대신 대통령을 했어도 친일청산이 힘들었다고 보는 이유기도 하고요
김구의 정치 행보는 대중들이 인식한 모습과는 정반대이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키고 중화민국 및 장제스에게 지원을 받아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김구의 공이 컸으니깐요
하지만 그의 정치행위들을 그 공으로 가리는 것 잘못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는 게 옳은거라 생각합니다.
3줄요약
1.김구는 중도정치인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외친 철저한 우익계열 인사였다.
2.김구는 이승만이 배신하기 이전까지 수십년간 형동생 사이로 지내왔으며 가장 돈독한 정치적 파트너중 한명이였다.
3.김구도 친일파들에게 자금을 받고 정치활동을 했으며 친일청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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