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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내꺼`ワ′ll조회 353l
이 글은 5년 전 (2018/8/18) 게시물이에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찻잔 속엔 진귀한 약초로 끓였다는 차가 가득 담겨있었다.
따뜻한 연기와 함께 좋은 향이 풍겨나왔지만 좀처럼 마실 수 없었다.

" 부디 저희 딸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저희 딸은 피아니스트란 말입니다. "

환자의 부모 앞에 선 의사 입장인 내게 한가로이 차를 홀짝거릴 여유는 없었으니까.

" 이해합니다. "

" 그런 모습이 사교계에 알려졌다간 아이의 미래는 끝이에요, 불쌍한 것. "

" 평판이 사람을 살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 반대로 쓰이죠. 최선을 다해볼테니 너무 염려마세요. "

그들을 안심 시키기 위해 다독였지만 사실 보호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긴 어려웠다.
손가락이 길어지는 병이라고 했다.
거인증으로 인한 이상 성장이나 기형으로 태어나 손가락이 더 달린 경우는 수없이 다뤄봤지만
이상 없이 태어나고 자라온 여자의 손가락이 점점 길어진다니...?

" 루디, 선생님 오셨다. 들어가도 되겠니? 들어가마. 이해해다오. "

" ... "

대답 대신 방 안에선 피아노 연주가 낮게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연주가 맑게 퍼졌다.

" 루디. 선생님께 인사하렴. "

" 안녕하세요. "

" 루디. 눈을 보고 인사해야지. 예를 갖추렴. "

타이르는 루디의 부모를 만류한 나는 그녀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 반갑구나. 루디. 나는 의사고, 오슨이라고 한다. "

" 오슨 선생님. 안녕하세요. "

" 피아노 연주가 아주 훌륭하구나. 네 재능에 대해선 들어왔지만 직접 들으니 더욱 영광이야. "

그녀의 연주를 칭찬하는 동시에 내 눈은 의사로서 환자의 손가락을 살폈다.
길쭉한 손가락, 마디에서 마디 사이가 한 뼘은 될만큼 길다.

" 계속 연주를 듣고 싶구나, 그래도 될까? "

" 연주는 끝났지만... 청중이 원한다면요. "

피아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의자, 그 위에 앉은 슬픈 표정의 그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더욱 연주에 몰두하는 듯 했다.

" 선생님은 너를 낫게 해주려고 온거야. "

" 정말요. "

" 물론. "

" 수술이 필요한가요. "

" 필요하다면. 하지만 아프게 하지 않으마. "

" 네. 하지만. "

" 음? 말해보렴. "

" 벌써 의사 선생님도 세 분째 뵙는걸요. "

" 세 분? "

듣지 못 한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 그녀의 아버지를 쳐다보자 그는 시계 보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 처음엔 남들보다 손가락이 조금 길다는 걸 알아챈 직후였어요. 그 선생님의 성함은 마이튼이셨죠. "

마이튼? 알아. 들어본 적 있다.
왕립대학에서 알아주는 수술 실력을 가진 그가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단 말인가.

" 두번째는 렌디 선생님. 그때는 손가락이 남들보다 두 배 정도 길어졌을 때였어요. "

' 수술 능력으론 문제 없는 사람들이다, 절단 수술을 하지 않은 건 그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말인가.
장래가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소녀의 손가락... 더 길어져도 목숨엔 지장이 없으니 더욱 부담으로 다가왔겠지. '

" 그리고 내가 세번째구나. 그동안 우리 의사들이 널 기다리다 지치게 했구나. 대신 사과하마. "

" 선생님. 제 손가락이 징그러워요? "

" 전혀. "

" 하지만 보세요. 전 징그럽다구요. "

루디가 피아노 치는 걸 멈춘 채 들어보인 손가락은 루디의 이마를 넘어 한참이나 위로 솟아있었다.

" 점점 길어져요. 내일이면 더 길어지겠죠. "

" 선생님이 연구해보마. 피아노를 치기 좋은 손가락을 돌려주마. "

" 불가능해요. 렌디 선생님이 말하는 걸 엿들었어요. 이 시대 의학으론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

" 그는 실력 있는 의사야, 잘못 들은 걸게다. "

" 아버지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린다고 했지만 그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래도 잘못 들은 건가요? "

" 루디! 그래서 오슨 선생님을 모셔온거다!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없다! "

루디의 말에 불쑥 튀어나온 건 그녀의 아버지였다.

" 아버님, 괜찮습니다. 루디의 속마음을 알아야 진료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 공감해야해요. "

" 선생님, 제 손가락이 나을 수 있어요? 처음 선생님도, 두번째 선생님도 그렇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지금 제 믿음은 반에서 또 다시 반으로 줄어들었어요, 점점 흔들려요, 절 붙잡아주세요. 부탁이에요. "

"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

"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요. 매일 아침 조금씩 피아노로부터 멀어지는 제 기분을 아시겠어요? "

" 내일부터 치료를 시작하자. 우선 오늘 손가락의 길이를 재어둬야겠구나. "

" ...알겠어요. "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르고, 꿰매는 일이라면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겠지만
자라나는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너무나 어려운 숙제였다.



비슷한 사례나 성장에 관여하는 약물 치료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각지의 의술인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단 한 건이라도 회신이 오길 고대하며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루디 저택을 향해 말을 부리기 시작했다.

간밤에 비바람이 불더니 길 위엔 온통 자갈이 깔려있었다.
그 탓에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도리어 내 눈꺼풀은 감기고 있었다.
밤새 책을 펼쳐봤지만 답에 근접하긴 커녕 이렇다 할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
결국 눈 앞이 깜깜해졌고, 마부가 날 흔들어 깨웠을 땐 루디 저택의 앞에 도착해있었다.

종을 울리기도 전에 말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문이 열리며 주인 부부가 나를 맞이했다.
다과를 준비해놓았다며 날 응접실로 초대했지만 정중히 사양한 다음 곧장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 시녀장인가요, 아침 생각없어요. 내일도 마찬가지니까 미리 말해놓을게요. "

" 루디, 선생님이다. "

" 선생님? 들어오세요. "

문을 열고 들어서자 루디는 의자에 앉아 다리 위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겹친 채로 내게 인사했다.
손가락은 무릎을 넘기며 튀어나오고도 한 마디를 접어 발목에 닿일 듯 했다.
길이의 변화를 알기 위해 곧장 재어보기로 했다.

" 어제에 비해서... 자랐구나. "

" 아아아. "

그녀는 비통한 모양인지 주먹을 쥐려했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오열하는 소녀 옆에서 무슨 위로를 해야할까.
지금 모습도 예뻐, 그런 말은 조롱처럼 들리겠지.
차라리 치료에 집중하자. 감성적인 위로가 항상 좋은 처방이 되주는 건 아니니까.

" 우선 내과적인 방법과 외과적인 방법을 둘 다 써보기로 하자. "

" 으흑. "

그녀의 손가락 길이를 재어간 다음 약간의 여유를 두고 제작한 철제 고정기.
나무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때 그러하듯이 나는 고정기를 통해 손가락의 성장을 막기로 했다.

" 자, 손가락을 똑바로 펴보겠니? "

" 선생님, 하기 싫어요, 이런 무거운 걸 끼면 피아노를 칠 수 없어요. "

" 하지만 손가락이 자라는 걸 막을 순 있을거야. "

" 피아노 없이 이런 흉한 걸 차고 살라구요? 이건 절 구속하는 수갑인걸요! "

" 내가 약을 완성하는 날까지만 참으면 된다. 그 전에 성장이 멈춘다면 풀도록 하자. "

" 약... 그래요. 약이 있다면 서둘러 주세요. "

" 실력있는 의사들이 모두 힘써주고 있어. 자, 손가락을 펴다오. "

새하얀 손가락에 은빛 고정기를 끼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의 소문에 오르내릴까봐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 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마지막 친구였던 피아노마저 이젠 칠 수 없게 만들었다.

" 무거워요. "

" 조금만 참거라. "

" 언제까지냐고 물어도 대답 안 해주시겠죠. "

" 마음 속으로 피아노를 연주해보렴. 관객들이 박수치고, 다음 곡을 언제까지라도 원하는 상상을 하는거야. "

" 지금도 제 마음 속엔 악보가 펼쳐져 있어요, 지금은 기쁜 곡을 치고 있지만 아는 곡이 모두 떨어지면
그땐 슬픈 곡을 연주할 수 밖에 없어요. "

" 기쁜 곡을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렴. "

" 관객들을 위한 예의는 아닌 걸요. "

그녀의 마음을 어설프게 위로하기엔 그녀의 감성은 너무나 섬세했다.
철제 고정기처럼 굳은 채 사람을 뼈와 가죽으로 구분하는 나로선 흉내낼 수 없는 차원의 세계였다.



그 뒤 몇몇 의사로부터 의술적인 자문과 시약이 도착했다.
성장을 더디게 하는데 효과가 있을 거라는 말에 희망을 얻은 나는 서둘러 마차를 구했다.

주인 부부는 평소와 달리 차와 과자를 권하지 않았고, 서둘러 루디의 방문을 열어놓은 뒤였다.

" 선생님, 살펴봐주시죠. "

" 알겠습니다. "

바른 자세로 누운 루디는 식은땀을 흘리며 앓고 있었다.

" 루디, 루디? 선생님이다. "

" ...아, 선생님. 힘들어요. "

그녀는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보였지만 기운이 없는 탓에 고정기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 했다.
고통이 찾아온 모양이다. 하루하루 길어지는 손가락을 억지로 못 자라게 했으니 그 고통은
고스란히 루디가 견뎌내야 했겠지.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아픔이었을텐데.

" 루디, 그래도 손가락은 길어지지 않았어. "

" 정말.. 정말인가요, 그럼 저, 더 견뎌볼게요... "

" 손가락을 봐야하니 고정기를 풀도록 하자. "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은 다행히 길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미리 만들어온 약을 그녀에게 먹인 뒤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 많이 아팠을텐데도 잘 참아줬구나. "

" 차라리 손가락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 무슨 소리야. 피아노를 치려면 예쁜 손가락으로 돌아가야지. "

" 자라지 않은 것과 짧아진 것은 다르잖아요. "

" 일단 자라지 않은 것만으로도 희망은 있는거야. "

" 희망이요? 물론 희망이 저를 버티게 하지만 그 끝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요? "

" 불행하리란 법도 없잖니. "

"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할 필요없잖아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

" 그러면? "

" 차라리 손가락을 두 마디 정도 자르면 피아노 치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

" 루디!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잖니. "

" 전 피아니스트에요, 피아노가 삶의 이유죠. 전 죽어있는 기분이에요. "

"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 견디고 있는 거야. "

" 언제까지요? 길어진 손가락이 짧아지는 마법이 나올 때까지? "

" 언제가 되더라도 불가능하진 않아. 마법사가 아니라 의사들이 해낼거야. "

" 그게 언제냐구요! 손가락 따위 이제 아무렇게 되든 상관없어요, 피아노가 더 중요해요. "

" 손톱 없는 피아니스트라? "

" ... "

손가락을 짧게 해주지 못 하는 의사와,
짧아지지 않는 손가락은 필요없는 환자가,
서로 모순된 말인 줄 알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희망,
그래, 듣기 좋은 말로 포장했지만 내가 결국 널 고문하고 있는 셈이구나.
루디. 미안하다.



늦잠을 자버렸다.
급히 창문을 열어보니 해가 벌써 머리 위에 떠있었다.

밤을 새워 연구한 탓에 방 안에 온갖 자료와 시약이 가득했다.
날 지치게 하는 현실은, 쌓아놓은 자료 중 절반 이상이 '치료가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 늘어놓은 자료였다는 점이다.

" 그딴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두려워서, 멍청해서 난 못 한다는 말을 보낼거면
왜 잉크와 종이를 낭비해가며 회신하냔 말야! "

그들이 눈 앞에 있는 듯 비난했지만 사실 그 말은 나를 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루디에게 먹일 약을 준비해 길을 나섰다. 오래 기다린 듯 잔뜩 화가 나서 따져대는 마부에게
그의 일주일치 임금을 삯으로 지불하자 마부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차를 몰았다.

마차에서 내리자 피아노 연주가 들려왔다.
이 저택에 처음 온 날을 떠올리게 하는군.
잠깐만. 피아노라고?

노크도 없이 대문을 열고, 그녀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흔들어 열자
고정기를 풀어버린 채 피아노 멀리 서서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루디가 보였다.

" 루디! 무슨 짓이냐! "

" 놔요! "

" 약속을 어겼잖아! "

" 약속을 어긴 건 선생님이세요, 손가락을 짧게 해준다는 약속! "

" 기다려 달라고 했잖니, 이것 보렴! 고정기를 끼지 않으니 길어졌잖아! "

" 언제까지 새장 속의 새처럼 갇혀살 순 없어요, 저요, 날면서 노래하고 싶다구요. "

" 자유를 바란다면 참을 줄 알아야 해, 네가 날아갈 곳은 이 방 바깥에 있는 세상이야! "

" 그만, 전 지금 자유를 느껴요, 제발 절 내버려두세요 이제! "

" ... 아아, 어째서! 아버님! 아버님! 어디 계십니까! 제 부탁은 어떻게 된 겁니까! "

화가 났다, 그녀의 부모에게 그렇게 고정기 착용을 지도해달라고 전했건만
저 지경이 되도록 그녀를 방치하다니, 나 하나로 해낼 수 있는 치료가 아냐,
나와 보호자, 환자가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고 했잖아!

어딨어, 어딨냐고!

" 아버님! "

주인 부부의 방문을 열자,
부부는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신들린 왈츠 연주에 맞추기라도 한 듯,
목을 맨 부부의 시체가ㅡ

빙글, 빙그르르.

" 신이시여. "

탁자 위엔 보물상자와 함께 유서로 보이는 편지가 말려있었다.
루디에 대한 나쁜 소문이 이미 사교계에 퍼져있고,
몇 개나 되던 보물상자를 팔아치웠지만 이젠 딱 하나와 저택만이 재산의 전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걸 이젠 인정한다며,
남은 재산은 루디의 손가락 절단 수술과 새 피아노 구입에 사용한 뒤
그녀를 거두어 부디 피아노 연주만이라도 원없이 하며 지낼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불쌍한 루디-.



" 루디. "

눈물이 말라붙어 엉망이 된 얼굴로 피아노를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과 달리 연주곡은 경쾌한 왈츠였다.

" 루디. "

" 내버려둬요. "

그녀의 손가락은 더욱 길어져 있었다.

" 선생님을 용서해라! "

" 무슨 짓을! "

쏜살같이 그녀에게 달려든 나는 가녀린 팔과 다리를 묶었다.

" 이대로 널 내버려둘 순 없어! "

" 놔요! "

묶인 손가락에 고정기를 끼우려 했지만 그사이 자라난 탓에 고정기가 맞지 않았다.

" 어떻게 이럴수가. 왜 그랬니, 루디! "

" 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아버지? 선생님, 이건 의사가 할 행동이 아니잖아요. "

" 아버님은 새 피아노를 사러 가셨어. "

" ... 거짓말 하는 눈을 뜨고 계시네요. "

" 뭐? "

" 내 손가락을 낫게 해주겠다며 대답하던 그 눈동자에요. "

" 마음대로 비난해라, 하지만 언제나 널 위해서 그래왔어! "

" 피아노를 치겠다는게 그리 큰 죄인가요! 손가락이 이렇다는 이유로 절 구속할 권리는 없어요! "

" 우리, 모두 지쳤잖니. "

" 풀어달라구요! 선생님! "

" 미안하다. 우리 모두- 너무 지쳤어... "

고된 연구와 충격적인 사건들로 지쳐버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묶인 채로 꿈틀거리는 루디를 놔둔 채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어둠을 머금은 창밖으론 나뭇가 노을을 가릴 듯이 움직이고-,
아니, 그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손가락이다.
아주 긴 손가락.

침대에 누워있는 루디로부터 반대편 벽에 붙어있는 내 수술가방까지 뻗어있는 긴 손가락!

" 무슨 짓이냐! "

살짝 열린 수술가방을 헤집고 꺼내는 건 칼이었다,
그 칼은 내 심장 대신 그녀의 손가락을 노리고 있었다.

" 멈춰! "

" 피아노를 칠 거에요, 점점 연주가 흐트러진다구요! "

" 이익, 그만둬! "

몸을 던져 칼을 빼았는 동안 내 목덜미부터 발끝까지 손가락이 다닥다닥 감겨 나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 힘이라고 해봤자 여리디 여린 아가씨가 가진 형편없는 완력에 불과했다.
모든 저항을 뿌리친 나는 수술가방을 닫았다.

" 루디. 지금 네 병명은 마음의 병이야. "

" 그래서요? "

" 치료할 방법을 찾아오마. "

" 오지 마세요. 차라리 버려두세요. 지금 여기서도 피아노는 칠 수 있으니까. "

말 그대로 그녀의 손가락은 그새 더욱 길어져있었다.
침대에 묶인 채로 벽에 있는 피아노를 칠 수 있을 지경이었다.

" 방에 있거라. 금방 오마. "

"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 되니까 안 오셔도 상관없어요. "

" 내일 보자. "

" 잠, 잠시만요. 선생님. "

" ... "

" 가지마세요, 사실 무서워요. "

" ... "

" 어디, 어디 가시나요?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계시구요? "

" ... 미안하다. "

선생님, 선생니임, 선생님, 선생니이임,

그녀의 절규를 애써 무시하며 방을 나서는 나,
그런 내 목을 무언가 바삭바삭 긁어댔다.
그 길쭉한 손가락들이!

손가락은 집요하게 내 목을 긁으며 날 잡아두려 애썼다.
이젠 나조차 그녀가 무서웠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택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목덜미엔 그 손가락이 남긴 감촉이 생생했다.

마차를 불러놓지 않은 탓에 어둠이 내려앉은 언덕을 걸어서 내려가야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저택 창문으로 길쭉한 손가락 열개가 빠져나와 허공을 미친듯이 휘저어대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니임,

" ... "

무시했다.
아니.
무서웠다.

의사로서 해결할 수 없는 그 병도,
죽지는 않겠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불치병에 걸린 그녀도,
그런 그녀를 내팽개친 채 도망가는 나라는 인간도.

내일 다시 올까 순간 고민했지만,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계속해서 들려온 왈츠 소리는 그 생각을 거두게 했다.

왈츠가 울리고 있었다.
훌륭한 연주였지만 다시 듣진 못 하겠지.

나는 그 왈츠를,
'길어지는 손가락의 왈츠'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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