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복 입은 괴한 상영관 난입
연막탄 던지고 관객 향해 총쏴
특수효과인줄 오해 관객 ‘충격’
영화 모방범죄 가능성 의심도
주차장서 20대 백인남성 체포
이름·범행동기 알려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의 뉴스채널 <뉴스9>은 19일(현지시각)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개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영화관 앞에 길게 늘어서 있고, 암표상들은 한장에 300달러 이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의 마지막회 격인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개봉 전부터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것으로 예상한 화제작이었다.
덴버시 오로라 지역에 있는 센추리 16 영화관에 모인 다크나이트 팬들도 큰 기대를 안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하지만 곧이어 영화관은 악몽의 현장으로 변했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일 0시30분 한 남성이 9호관에서 연막탄을 터뜨린 뒤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관은 바로 영화 <다크나이트>의 무대인, 강력범죄로 가득 찬 음울한 가상의 도시인 ‘고담’처럼 변했다.
일부 관객들은 총격이 시작됐을 때 영화 개봉 이벤트의 하나로 착각하기도 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영화관에는 개봉을 자축하기 위해 배트맨 복장이나 악당 베인의 복장을 한 팬들이 상당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방탄복을 입고 방독면을 쓴 범인의 복장이 그다지 큰 의심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건 발생 당시 9호관에서 영화를 보던 18살인 제이컵 스티븐스는 한 남자가 방탄복을 입고 들어오는 것을 봤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수류탄 같은 것을 집어 던졌고, 거기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봤다. 역시 9호관에 있던 로버트 존스는 극장 앞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처음에는 무슨 특수효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극장 안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는 즉시 바닥에 엎드렸고, 경찰이 올 때까지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덴버 포스트>에 “마치 세상의 마지막 순간 같았다”고 전했다.
헤이든 밀러라는 생존자는 지역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있은 뒤 작은 폭발소리가 들렸다”며 “처음엔 옆 상영관의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팸이라고 이름을 밝힌 목격자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막탄이 터진 뒤 뱅, 뱅, 뱅 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며 “다행히도 출구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잭이라는 이름만 알려진 또다른 생존자는 <에이비시>(ABC)에 “처음에는 연기가 영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영화를 보고 있었다”며 “하지만 곧바로 진짜 총격이 벌어진 것을 알고 거의 모든 사람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시엔엔>(CNN)에 방영된, 총격사건 직후 휴대전화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에서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이다. 사건이 신고된 이후 경찰과 구급차 수십대가 극장으로 쇄도해 왔고,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피난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출동한 뒤 얼마 안 돼 영화관 뒤편 주차장에서 20대 백인 남성 용의자를 체포했다. 그의 차량 안에서는 방독면, 소총과 적어도 하나 이상의 또다른 무기가 발견됐다. 용의자는 곧바로 구금됐으며, 이름이나 범행 동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 범인은 2인조로 알려졌으나 이 지역 경찰서장 댄 오츠는 “공범이 있을 거라는 증거는 없다”며 단독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사건이 테러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시엔엔> 화면을 보면 경찰은 그의 차량 트렁크에 대해서도 폭발물 검사를 하고 있다.
영화 내에서 악당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범행이 영화를 모방한 범죄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고 <아에프페> 통신은 전했다. 오로라 지역이 1999년 총기난사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불과 32㎞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두 총기난사 사건을 연관짓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형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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