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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년 전 (2019/12/10) 게시물이에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여러분들께 질문 2가지를 던져 보겠습니다.


1.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르를 떠나 여호와의 계시를 받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에 정착했을 때, 그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양과 염소 몇십~몇백 마리에 식솔들이 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거의 맨몸으로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번성하면서 잘 먹고살았습니다. 지금 만약 제가 양 100마리를 사서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팔레스타인 땅이나 강원도 대관령으로 떠나면 거기서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2.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라는 미국 문학가는 보스턴 근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2년간 숲속에서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로 쓴 책이 Walden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이쁜 여학생들이 이 Walden이라는 원문 서적을 제목이 잘 보이도록 가슴에 안고 다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영어 원서를 그렇게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답니다.) 요즘 제가 혼자서 미국 월든 호숫가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2년간 먹고살 수 있을까요?


아마 쉽게 대답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이유는? 비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토지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인구가 부족하고 땅이 넓어서 유목민이 양을 방목할 땅은 주인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도 이미 비옥한 땅은 다 주인이 있었고, 아브라함도 가뭄이 들었을 때는 이집트까지 유랑하여 와이프인 사라를 이집트 왕에게 팔아먹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또 월든 호숫가에서 쏘로우가 농사를 지었던 땅도 사실은 임자가 있는 땅이었습니다. 쏘로우는 불법 점유를 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쏘로우는 탈세까지 저질렀습니다. 모든 국민은 국가 권력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법인데, 그걸 안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마을에 들렀을 때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본인은 끝까지 세금 납부를 거부했지만, 보다 못한 친척이 대납을 해줘서 간신히 풀려났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이런 경치 좋은 곳의 금싸라기 땅을 임대료도 안내고 2년이나 무단 점거... 범죄 행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제 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생산 수단은 바로 토지, 즉 공간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결국 토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들처럼 부동산 소유가 꿈이었던 것은 나폴레옹 시대 육해군 장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The Happy Return by C.S.Forester(배경: 1808년 니카라과 연안 태평양)ㅡㅡㅡㅡㅡㅡㅡㅡ

(영국 해군의 혼블로워 함장은 태평양에서의 임무 수행 중 자신의 프리깃 HMS Lydia에 영국 귀족 가문의 여자인 바바라 웰즐리를 태워 주게 됩니다. 처음에는 귀족들에게 반감이 많던 혼블로워도 차츰 바바라와 친해지게 됩니다.)


그는 바바라의 이야기를 이어 가며, 암초투성이의 비스케이만에서 폭풍과 싸워 가며 몇 달씩 봉쇄 임무를 수행했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혼블로워에게는 아주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멋지게 들렸던 것처럼, 펠류 제독이 그의 프리깃들을 바로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가까지 끌고 가서 2천 명의 수병들에게 프랑스 인권 선언(Droits-de-l'homme)을 노래하게 했던 이야기며, 함상에서의 온갖 고초와 보급품 부족에 대한 따분한 이야기들이 바바라에게는 환상적인 이야기였다.


혼블로워의 과잉 자의식이 점점 줄어들면서, 바바라에게는 마치 아이가 목마를 바라는 것처럼 사소하게 들릴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경제적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중에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받게 될 무보직 급여(half-pay, 이에 대해서는 Half-pay란 무엇인가? 편 참조)를 보충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2천 파운드의 나포 포상금(이에 대해서는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편 참조)과 몇 에이커의 땅과 작은 집, 그리고 서재를 가득 채울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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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Forester의 혼블로워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Patrick O'Brian의 오브리-머투어린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 역시 나포 포상금을 받고는, 시골 마을에 작은 집과 농토를 좀 사들여 소박한 시골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나폴레옹 시대만 하더라도 돈을 벌면 당연히 부동산 매입에 사용되었습니다.


유럽뿐만 아닙니다. 중국 전국 시대 말기에 조나라의 명장이었던 조사의 아들 조괄이 조나라의 장수에 임명되자 그의 어머니가 조나라 왕에게 상소하여 조괄의 장수 임명을 거두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왕이 묻자, 그 어머니가 대답한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사기(史記) 중 염파-인상여 열전, 사마천 작(배경: 중국 전국 시대 말기)ㅡㅡㅡㅡㅡㅡ

조괄은 조사와 부자지간이지만 그 마음쓰는 것이 아주 다릅니다. 사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친한 벗이 몇십 명이나 되고 벗으로 사귀는 사람은 몇백 명이나 됩니다. 나라에서 상금을 내리시면 그것을 모두 군사와 사대부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나라에서 명령을 받은 날에는 집안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괄은 하루아침에 장수가 되자 군리들이 그를 우러러볼 수 없을 만큼 거만하며 왕께서 내리신 금품과 비단은 모두 창고에 두었다가 날마다 전답을 살펴보아 그것을 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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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괄이 부동산 투자에 몰두한 것은 재테크 측면에서는 그럴싸했습니다만, 결국 조괄은 진나라 장수 백기와의 싸움에서 무려 40만 명의 조나라 군사를 말아먹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부자라는 개념이 새로운 측면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즉, 토지나 황금 같은 실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 외에도, 주식, 유가 증권, 공채 같은 종이 쪼가리를 가진 사람들을 부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Forester(배경: 1821년 미국 뉴올리언스)ㅡㅡㅡㅡㅡㅡㅡㅡ

(카리브해에 파견 나온 영국 해군의 혼블로워 제독은 본국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편지 내용은 영국 군수 산업체의 백만장자 청년이 곧 그쪽을 방문하니 잘 대해줘라, 니 와이프인 레이디 바바라도 그 청년을 매우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입니다.)


혼블로워는 편지를 끝까지 다 읽었으나, 이 Mr. 찰스 램즈버텀이라는 청년에 대해 더 언급된 내용은 없었다. 혼블로워는 다시 처음 문장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백만장자'라는 단어를 본 것은 바로 이 문장에서가 처음이었는데, 여기엔 두 번이나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단어를 보자마자 확 싫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사람이 100만 파운드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상이 안 갔고, 또 그 돈을 넓은 토지의 형태가 아닌, 공장과 주식과 유가 증권으로, 또 아마도 영구 공채(Consol)의 큰 지분과 은행의 어마어마한 잔고의 형태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백만장자라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상류 사회 소속이든 아니든 그 단어 자체처럼 역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 아내 바바라도 매력을 느꼈다고 소개장에 쓰여져 있었다. 혼블로워는 대체 그게 소개장에 좋은 뜻으로 쓴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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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위에 인용된 1821년 이전에도 인도 무역 등에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도 영국에 돌아와서는, 대개 토지와 장원을 매입하고 귀족 흉내를 냈습니다만, 일부는 이미 예전부터 생겨났던 주식회사의 주식이나, 정부에서 발행하는 국채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18세기 경제사 중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즉, 1720년 영국 경제를 뒤흔들었던 남해 회사(South Sea Company) 거품 붕괴 사건은 아주 유명했습니다. 당시 재정 적자 문제에 허덕이던 영국 정부에게, 남해 회사라는 기업이 정부의 국채를 모조리 매입해 줄 테니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EIC)처럼 남미와의 독점 무역 면허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예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회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결국 거품이 터져 파산해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회사들의 주가가 덩달아 마구 치솟았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남해 회사 관계자들 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구요. 하지만 당시는 요즘 나오는 것과 같은 파생 상품이 없었고, 남해 회사의 거품은 남해 회사 및 연관 몇몇 회사의 주식에만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대개의 부는 토지와 실물로서 존재했습니다. 종이 쪼가리가 아니구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 증권 | 인스티즈

(저렇게 사라진 돈 중에는 아이작 뉴턴의 돈도 있었습니다.)


아마 주인공 혼블로워가 토지나 실물에 근거한 것이 아닌, 채권이나 유가 증권 등으로 백만장자인 사람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이유 중에는 그런 기억들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저 위에 나온 Consol이라는 것은 Consolidated Debt라는 이름의 공채입니다. 이 공채의 특징은 상환 기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저 채권을 들고 있으면 계속 이자만 나오고, 원금은 상환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원금을 찾고 싶다면? 그냥 증권 시장에 내다팔면 됩니다. 아마 저 시대에는 이자율이나 그런 것이 변화가 적어서 저런 영구채가 가능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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