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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민이만좋아해ll조회 3263l 2
이 글은 9년 전 (2015/3/04) 게시물이에요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어떤 기억은

방울로 맺히지 않을 뿐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일상의 얇은 막 위를 흐른다, 흐를까

 

기저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오래 전 죽은 이의 연작에서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와서 두렵다는 문장을 발견한다

밑줄을 긋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오후

 

언젠가 채운역을 지나며

그 지명에서 태어난 시인에 대해 말해주던 당신,

살에서 구름 냄새가 날 것 같은 날들이었다

같은 시인을 함께 동경하는 일은 우연이거나 우연일 뿐

 

흘러간 구름의 당신과

흐르고 있을 구름의 무늬를 듣기 위한 질문이 길다


- 구름의 무늬 中 / 이은규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자꾸 밀어내도 빠르게 들어온다
회전문, 자의식, 컴컴한 창문 여러 개 달린
너의 셋집에서 날아오는 냄새
비가 잿빛 가지 사이에
투명한 낚싯바늘을 드리운다

나의 고무장화가 거꾸로 매달린다
거기, 뒤집힌 조끼 주머니 속에서 쏟아지는
먼지로 뒤엉킨 토막 난 털실, 노란 종이뭉치들
거기, 구겨진 여백 위로 얼룩을 만들며
검은 빗물이 번진다
거기, 슬픔에 대한 오랜 환대
거기, 낡은 악의에 대한 새하얗게 빳빳한 환멸
어 거기, 만지면
젖은 별과 썩어가는 멜론 냄새가 뒤섞이는
어두운 탑의 꼭대기로 나를 천천히 오르게 했던
어느 몸에 대한 상념
마르고 텅 빈 바닥에 닿으려고 펼친 팔 아래
창백한 손가락이 흔들린다 거기,
거기에


- 거기, / 진은영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첫사랑은 아니다마는 
이 울렁거림 얼마나 귀한지 
네가 알까 몰라

말은 속되다 
어째서 이리도 
주머니마다 먼지 낀 언어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다 버리고 버리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 
이 때아닌 별소나기 
울렁거림 
네가 알까 몰라 


- 너를 위한 노래 3 / 신달자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차 한잔 할수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방금 만나고 돌아오더라도
며칠을 못 본것 같이 허전한
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울 때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 주는 
그를 만났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어디 먼 곳에 가더라도
한 통의 엽서를 보내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이 땅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그를 만났습니다


- 그를 만났습니다 / 이정하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 홀로서기 2 中 / 서정윤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나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가봅니다
낙엽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여윈 가지 부르르 전율합니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무수한 것들
비단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아직 내 안에 팔랑이며 소란스러운
마음가지 끝 빛 바랜 잎새들이 있습니다
저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해볼까요
물론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 낙엽 한 잎 / 홍수희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노래가 질펀한 거리를
그대는 걷고 있다
시간은 내 속에 정지해 있고
어쩌면 눈물만이 아프다

 혼자 불끄고 누울 수 있는
용기가
언제쯤이면 생겨날 수 있나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가
나에게 있을까

 잊음조차 평온함으로 와 닿을 때
아, 나의 흔들림은
이제야 끝났는가


- 홀로서기 3 中 / 서정윤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추억도 만들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 
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늦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감고 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열애 / 이수익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나는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은 어디를 다니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아프게 살아온 날들이 모두
돌아볼 수 없도록 참담하고
흔들리는 인간이
흔들리는 나무보다 약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느낌이
모두 같을지라도
바람부는 날
홀로 굳건할 수 있다면
내 속에 자라는 별을 이제는
하늘로 보내 줄 수 있을텐데

 아직도 쓰러져 있는
그를 위해
나는 꽃을 들고 있다


- 홀로서기 3 中 / 서정윤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 이제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 정호승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술잔 속에서 그대가
웃고 있을 때, 나는
노래를 부른다, 사랑의 노래를
보고 싶은 마음들은
언젠가 별이 되겠지
그 사랑을 위해
목숨 걸 때가 있다면
내 아픔들을 모두 보여주며
눈물의 삶을 얘기 해야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위해
썩어지는 육신을 위해
우리는 너무 노력하고 있다

 노을의 붉은 빛을 닮은
사랑의 얼굴로
이제는 사랑을 위해
내가 서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 홀로서기 3 中 / 서정윤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 살아 있어야 할 이유 / 나희덕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안다
너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나만은 그 아픔을
느낄수 있기에 말하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정할 수 있을 때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라
흔들리는 억새풀이 애처롭고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는 들꽃이
더욱 정겹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사랑없는 삶으로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내 꿈으로 띄운 별이
이제는
누구의 가슴에 가 닿을지를
고민하지 말아야지


- 홀로서기 3 中 / 서정윤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눈물 짖고 있나요
그만 눈물을 거두어요
수북히 쌓인 낙엽
바람에 쓸려 어디로 가는지
알려고 하지도 마세요

풍성한 낙엽을 밟고 걸으며
바람이 들려주는 가을노래와
따사로운 가을 햇살 쬐며
넉넉한 만추를 누리세요
우린 아직 끝이 아니어요

그대가 새겨준
아름답고 고운 음악
고운 시 한 자락에
고운 옷 입을 수 있었어요
좀더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요

영영 사라진다 생각 마세요
아주 사라지는 게
아니어요
다시 볼 수는 없다고
쉽게 망각하지 말아 주세요

예쁜 꽃이 지천으로 피고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때
낙엽의 영혼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 거기에 있을 거니까요


- 낙엽의 위로 / 김용환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 인스티즈


내 한숨의 한 토막만 여기다 넣자
네 통한의 한 움큼만 여기다 담자

그리하여 낯설은 이별주 대신
싸늘한 너의 등을 눈 앞에 두고
쓸개를 마시듯 너를 마시자

창 밖은 바람 불고
거리는 더없이 야위어만 가는데
우리 어디다가 따스한 온기
그나마 남기어 지탱하련가

다만 커피 한 조각에
해바라기 같은 꿈 하나를 치장하고서
그 안에는 칠흑처럼 쓰디쓴 순리
밀크처럼 골고루 번지게 하고

오늘 단 하루라도
아니 어제 단 하루이라도
우리의 사랑 감사 여기며

내 한숨의 한 토막 네 통한의 한 움큼
온몸으로 절절히 여기다 담고

눈물처럼 조용히 너를 마시자
차마 부서지지 않으시도록
말없이 너를 마셔 버리자


- 커피를 마시며 / 홍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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