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 리포터와 재연 배우로 활약하던 나이지리아 출신 방송인 티모시를 기억하는가. 그는 프랑스 출신 이다도시와 함께 외국인 방송인 1호 멤버였다. 요즘처럼 방송에서 외국인이 많이 보이지 않던 시절, 능숙한 한국어 솜씨의 그는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으로 어필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TV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 방송인 티모시가 마약 밀매 조직원이라고 명시한 수많은 인터넷 글들. 2 늘어나는 외국인 마약 밀매 정보를 전하며 그의 사진을 내보낸 어느 종편 프로그램의 화면.
티모시가 마약 밀수 조직원?
2011년에 한 언론사 사회부에서 ‘나이지리아 국제 마약 밀수 조직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접근해 시가 90억원 상당의 필로폰을 운반시키다 적발됐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말미에는 ‘달아난 나이지리아인이자 모 방송사 드라마 단역배우인 운반자 모집책 D씨 등 2명은 지명수배했다’라는 내용도 언급돼 있었다.
가장 먼저 인천지방검찰청을 통해 지명수배 건에 대해 확인했다. 결과는 해당 지명수배범은 티모시가 아니었다. 마약 사건에도 그는 전혀 개입돼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장난 혹은 오해로 인해 지금껏 누명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일은 하나다. 티모시를 찾아야 한다. 왜 방송 일을 그만뒀는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국에서 돌고 있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외국인으로 기억한다.
티모시가 마지막까지 출연했던 방송 제작사에 연락해 그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난 뒤인지라 그에 대한 이야기나 연락처를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한때 활발한 활동을 한 방송인인 만큼 종적을 알 길이 없게 됐다면 아마 외국에 있을 확률이 크리라 짐작됐다. 그의 고향인 나이지리아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일본인 아내를 따라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의 행적을 찾기 위한 오랜 노력 끝에 그와 아내가 해외 전용 메신저 사이트에 가입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혹시 방송인 티모시씨인가요?”
이제 메시지를 남겼으니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3시간 뒤, “누구시죠?”라는 티모시의 답변이 돌아왔다.
티모시가 「레이디경향」에 보내온 사진. 일본에 정착한 그와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티모시는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현재 그는 아내 기요미 토킨씨와 아들 제프타, 딸 나오미와 함께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0년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가족 모두 일본으로 이사를 했어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둘째가 올해 입학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올해부터는 초등학생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그는 한국을 떠났지만 인연만큼은 끊지 않고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오고, 국내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대한 소문도 알고 있을까?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덤덤한 한마디. “그동안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고…”라는 한국식 탄식이 먼저 터져 나왔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너무 억울해서 한동안 잠도 못 이뤘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변호사도 알아보고 소송을 할까도 했어요. 그렇지만 여기 생활도 있고 너무 신경쓰이는 일이라 그냥 용서하는 마음으로 접어두기로 했어요. 그래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진실을 알지 않을까, 그들만 알아주면 그걸로 만족하자고 생각했죠.”
그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자그마치 15년이다. 정작 태어나고 자란 나이지리아보다 한국을 더 많이 생각하고 가깝게 여기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지요.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도 받았고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 마음을 다스렸어요. 제 마지막 방송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일본으로 간다는 것도 털어놨기 때문에 마약 밀수범은 터무니없는 소리란 걸 아는 사람은 알 거라 여겼어요. 그런데 좀처럼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더 이상 이런 소문이 안 났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해준 기자에게 몇 번이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 기회로 지금까지의 오명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더구나 그는 한국에서 법무부 홍보대사로 일했다는 자부심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제가 외국인 홍보대사였잖아요. 여전히 자랑스러워요. 여기서도 학교에서든 어디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전 늘 한국 자랑을 합니다. 정말 즐거운 나라이고 좋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니까 안 가봤다면 한 번쯤 꼭 가보라고 권하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있는 티모시. 소문을 접했을 때 그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또 괴로웠을까.
“여러분,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웃음). 관심을 가져주시는 건 고맙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소문 퍼뜨리지 말아주세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느 정도 상식선의 여과지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때다. 다수의 시청자가 접하는 방송을 만드는 관계자들은 더욱 그렇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 절차 없이 내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번 티모시의 경우처럼 말이다.
글이유진 기자사진 제공티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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