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오렌지주스? 원액 10%에 설탕·첨가물 가득
김이나(38·서울 강남구)씨는 먹거리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전업주부다. 유산균 섭취를 위해 매일 아침 요구르트를, 단백질 섭취를 위해 간식으로 두유를 마신다. 아이들 비타민C 섭취를 위해 냉장고엔 항상 오렌지주스를 사다 놓는다. 우유도 칼슘강화 우유만 고집한다. 김씨 집에서 콜라 같은 탄산음료는 금지품목이다. 가끔 아이들이 떼를 쓰면 매실이나 비타민음료, 바나나우유 등을 사준다. 하지만 김씨의 이런 노력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하상도 교수는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음료가 실은 해롭다고 알고 있는 청량음료보다 당 함류량이 많고 첨가물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주스 한 병엔 각설탕 9개 … 콜라보다 많아
몸에 좋다고 생각해 물 대신 마시는 음료가 있다. 오렌지·포도·알로에·매실 등 주스류, 두유나 요구르트, 비타민음료 등이다. 하지만 이들의 설탕 함유량이 콜라와 거의 맞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렌지주스 한 병(250mL 기준)의 당 함유량은 29g 정도다. 같은 용량의 콜라(27g)보다 많다. 주스 한 병에 각설탕 9개(각설탕 한 개 3.4g)가 든 셈이다. 포도·알로에·매실 등 과일음료 대부분의 당 함량이 콜라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다. 하루 한두 병 생각 없이 마시다 보면 과일음료 섭취만으로도 1일 당 섭취 권장량(45~90g)을 초과한다.
과일이 많이 들어가니 당연히 당 함량이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일음료에 든 진짜 과즙은 10%도 안 된다. ‘100% 오렌지주스’라는 말은 다른 과일은 쓰지 않고 오직 오렌지의 즙만 썼다는 뜻이다. 하 교수는 “‘100% 오렌지주스’는 물 100%에 설탕을 반쯤 채우고 소량의 오렌지 과즙과 각종 첨가물을 넣은 무늬만 오렌지 과일주스”라고 말했다.
단맛을 내는 데도 교묘한 술수를 쓴다. 소비자가 잘 아는 ‘설탕’ 대신 ‘액상과당’을 첨가한다. 사실 설탕보다 더 나쁜 게 액상과당이다. 설탕은 두 분자로 이뤄진 이당류로, 몸속에서 소화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액상과당은 단당류이기 때문에 소화과정 없이 바로 흡수된다. 혈당을 요동치게 하고, 인슐린 분비작용을 교란하는 주범이다. 지방으로도 쉽게 축적된다.
비타민C는 들어 있을까. 오렌지주스에 들어가는 소량의 과즙은 고온에서 펄펄 가열한 농축액이다. 가열할 때 비타민은 거의 파괴된다. 간혹 제품에 비타민C가 첨가됐다고 크게 표기된 것이 있는데, 업체의 상술이다. 비타민C는 산화방지제로서 식품첨가물로 많이 쓰인다. 유통기한을 늘리는 용도로 극소량 첨가한 제품을 비타민함유 음료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포도·매실·알로에 주스 등 대부분의 과일음료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보존료·착향료 … 당보다 무서운 첨가물
당 함유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각종 첨가물도 주의해야 한다. 동국대 식품공학과 신한승 교수는 “물에 오렌지 과즙농축액을 10% 정도 넣고 섞으면 아무런 맛이 없고 밍밍하다. 색깔도 흰색에 가깝다”며 “오렌지 향과 색이 나는 착향료를 첨가한다”고 말했다. 보존료도 빠질 수 없다. 신 교수는 “집에서 믹서로 과일을 갈면 반나절도 안 돼 색이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100% 오렌지주스의 유통기한이 수일에서 몇 달씩이나 되는 것은 보존료를 넣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주스뿐 아니라 요구르트나 두유도 사정은 비슷하다. 요구르트 한 병(65mL)에 든 당 함유량은 약 10g. 캔 콜라와 같은 용량(250mL)으로 환산하면 각설탕이 11개나 들어간다.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두유는 어떨까. 역시 당 함량이 10~12g 정도(각설탕 4개)로 낮지 않다.
그것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각종 첨가물이다. 목넘김을 좋게 하기 위해 대두유를 첨가한다. 기능성 성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식품제조 시 필요한 첨가물인 ‘콩기름’일 뿐이다. 콩물과 기름이 분리되는 것을 막으려고 유화제도 들어간다. 두유를 진해 보이게 하면서 침전을 막는 ‘카라기난’, 산도를 조절하는 ‘산도조절제’ 등도 포함된다.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땅콩향 같은 합성 착향료도 첨가한다.
칼슘강화 우유에도 비밀이 있다. 비타민D나 칼슘 등 영양성분을 첨가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잘 유화될 수 있도록 합성첨가물을 함께 넣어야 한다. 강화 우유의 경우 비타민혼합성분의 20%만 비타민이고 나머지 80%는 영양성분과 상관없는 각종 첨가물이다. 신 교수는 “멸치 등 자연식품을 통해서도 충족할 수 있는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매일 합성첨가물을 먹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이 최고 음료 … 과일은 껍질도 함께 갈아야
그렇다면 어떤 음료를 마셔야 할까. 전문가들은 몸에 가장 좋은 음료는 ‘물’이라고 말한다. 비타민이나 유산균 등 건강기능성분이 필요하다면 식사나 건강기능식품을 통해 섭취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대부분의 음료, 심지어는 보리차나 녹차 같은 음료도 첨가물이 들어간다. 맹물을 먹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과일주스는 직접 갈아 마시는 게 가장 좋다. 특히 과일의 원액만 추출해 내기보다는 껍질과 과육을 모두 갈아 마셔야 좋다. 신 교수는 “과일 속에도 당이 들어 있지만 껍질과 과육의 식이섬유와 함께 섭취하면 혈당이 천천히 올라간다. 인슐린 분비작용에 영향이 적은 이유”라고 말했다. 오미자나 매실로 효소액을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물에 타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라벨 표시를 잘 읽는 것도 중요하다. 하 교수는 “음료 뒷면 또는 앞면에 크게 써 놓은 성분은 식품회사 측에서 강조하고 싶은 원료일 뿐이다. 글자 크기는 함량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보존료·착향료·인공색소·당류 함량 등을 확인하고 사는 게 좋지만 일일이 다 기억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단순히 표시된 성분이 적은 것을 고르면 된다. 최근 진짜 과일만 갈아서 물을 넣지 않은 음료도 출시되고 있다. 이런 제품 뒷면에는 원재료가 1~3가지밖에 표기돼 있지 않다. 단, 유통기한이 굉장히 짧고 값이 3~4배 이상 비싼 것이 단점이다.
글=배지영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참고서적=『오렌지주스의 비밀』(거름), 『음료의 불편한 진실』(비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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