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최보라아앙ll조회 1010l
이 글은 7년 전 (2017/2/19) 게시물이에요

지난편


1. 공산화 초기 중국의 종교 탄압 (1) 불교편


1949년 시점 중국에는 300만 명의 천주교 신자와 3천명의 천주교 사제가 있었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100만명의 신자와 4천명의 선교사들이 있었다. 1만 6천개의 성당과 수천개의 교회가 있었다.

이미 공산당은 1920~1930년대에 국민당과 전쟁을 치르면서 기독교에 대한 적의를 보인 바가 있었다. 공산당 점령 지역에선 교회가 파괴되고 선교사와 목사들이 공격을 당했다. 공산당의 탄압은 국공내전 시기에도 이어졌다. 유명한 사례로는 트라피스트 수도회 공격 사건이었다. 1947년 7월 공산당은 베이징 북쪽의 트라피스트 회 수도원을 점령했으며 수도사들을 체포, 구금하였다. 이들 중 6명이 1948년 1월 총살당했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27명의 수도사들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는 가장 악질적인 사례였는데 이 사례를 포함하여 100명 정도의 천주교와 개신교 선교사들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탄압은 공포정치와 함께 시작되었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4천명 정도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거주했는데 이들 중 2천명이 신변의 위협 때문에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교황청은 천주교 선교사들에게 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했고 천주교 선교사들은 파견지에 남았다. 당시 중국의 기독교 사제와 선교사들은 공산당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는 공산당과의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지만 공산당과 접촉하는 것을 악마와 타협하는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도 있었다. 국공내전에서 유혈사태가 있었으나 공산당은 공산화 초기 1년간은 기독교를 조직적으로 건드리지 않았고 중국에 남기로 한 선교사들의 결정은 일견 현명해보였다. 하지만 탄압의 손길은 나날이 거세어져갔다.

공산화 6개월 후, 장시 성 남부의 존 오세이 주교는 "하루하루 스프링이 당겨지는 느낌이다."라고 논평했다. 이미 중국인 기독교도들에 대한 탄압은 진작에 시작된 상태였고 외국인 사제들에 대한 공격도 시작되고 있었다. 1950년 9월 중국 정부는 전국 기독교 협의회를 설립하고 기독교 선언문을 발표하여 신자들에게 외국과 접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제국주의의 주구로 몰렸다. 신자들은 교회, 시장, 경찰서에서 심문당했고 배교를 강요받았다. 여기저기서 종교적 네트워크들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선교사들을 가택연금하고 교회를 점령해 군인들 숙소나 양곡 창고로 사용했으며 선교사들의 재산을 수탈했고 선교사들의 사업으로부터 선교사들을 축출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중국의 의료, 교육 산업에 막대한 관여를 하고 있었고 이들의 노력으로 중국의 근대화에 많은 도움이 있었으나 공산당의 눈에는 모두 제국주의자들의 간교로 보일 뿐이었다. 공산당은 선교사들에게 '파괴적인 수준'의 세금을 부여했고 이 때문에 선교 사업들은 차례로 도산하기 시작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의 외국인 혐오는 극에 달했다. 공산당은 닥치는대로 선교사들을 체포했다. 이때 개신교 선교사들은 파멸적인 타격을 입고 남아있던 2천명의 선교사 중에 100명만이 중국에 잔존했다. 하지만 교황이 파견한 사절 안토니오 리베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라고 사제들에게 지시했고 천주교는 완강하게 버텼다. 1950년 시점에서도 2천명의 천주교 사제들이 잔류했다. 공산당은 1950년 9월 안토니오 리바와 야마구치 류이치가 마오쩌둥 살해 음모를 저질렀다고 발표하고 이들을 처형했으며 타르치시오마르티나 주교가 개입했다고 그를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1951년 2월 선전부 수장 후차오무는 소련의 기독교 탄압을 모범적 사례로 지지했다.

리베리는 연금되어 갖은 심문을 당했고 1951년 9월에 추방당했다. 이미 천주교가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선전이 판을 쳤다. 공산당은 천주교 평신도 단체 <레지오 마리애>를 군사조직으로 몰아 레지오 마리애 회원들에게 반혁명행위를 자복하라고 압박했으나 원하는 결괄르 얻지 못하자 1951년 8월 14일 공안국은 1년 안에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이미 1950년 9월 레지오 마리애 사절 애단 맥그라스가 체포되어 시계, 묵주, 성패를 빼앗기고 수시간 동안 발가벗겨져 모욕을 당했고 곧 영국인들이 세웠던 워드 로드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32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틀 후 추방당했다.

1918년부터 33년간 선교활동을 해온 60세의 메리놀 회 주교 프랜시스 엑세비어 포드는 1951년 12월 간첩죄와 무기소지죄로 체포되어 조리돌림당했다. 공산당원들은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고 그가 질식하여 쓰러지자 군중이 그를 폭행했다. 그는 감옥으로 옮겨졌으나 죽었고 광저우에 묻혔다. 1951년 8월 3일 산둥 성 칭다오에서 27명의 신언회 회원들이 습격당했다. 그들은 2년간 투옥된 후 추방당했다. 선교사들의 성배, 예복, 성유물은 압수당했고 기독교 묘지들은 파괴되었다. 숨겨진 무기와 송신기를 찾는단 구실로 무덤들이 파헤쳐졌고 건덕지가 없으면 묵주를 무기의 일부라고 보고하여 처벌을 가했다. 심문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여 정신이상도 발생했다. 란저우에서 체포된 폴 뮐러 신부는 간수들이 살인광선을 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06년부터 46년간 선교해온 87세의 빈첸시오 선교사 아돌프 부흐는 1952년 10월 중국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곱게 떠나진 못했다. 공산당이 그가 수집한 나비들이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생물학적 병기라고 주장하여 압수한 것이었고 보청기도 빼앗겼다.

또한 공산당은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수백개의 병원을 닫아버렸다. 단순히 닫아버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선교사들이 환자들을 학대하고 죽이고 아이들을 매매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씌워 마구 처벌했다. 환자에게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하는 것도 살인 혐의로 뒤집어씌웠다. 이런 피해자로 뤄양의 초티 신부가 있었고 초티 신부는 1년 형과 더불어 가택연금을 당했다. 공산당은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250개의 고아원을 닫아버렸고 수녀들을 살인자로 몰았다. 1951년 12월 광저우에서 다섯명의 수녀가 2116명의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조리돌림 당했고 2명은 투옥되고 3명은 추방당했다. 일주일 뒤에 2명의 수녀와 한명의 사제가 같은 혐의로 매질을 당했다. 베이징과 텐진과 푸저우에서 여러 사제들과 수녀들이 체포, 투옥, 추방되었다.

1951년 애국교회가 등장하면서 개신교는 더욱 나락에 몰렸다.애국 교회에 합류하지 않는 목사와 신도들은 연금당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가택 수색의 결과로 기도서, 교리문답서, 성화가 파괴되고 성물도 압수당했다. 신학교도 파괴되고 교회들은 문을 닫았다. 중국인 주교 류한천은 윈난 성에서 쫓겨났고 결국 인민재판에 회부되었고 그를 따르던 수녀들과 함께 조리돌림을 당한 후 수용소로 보내졌다. 1927년에 설립된 텐페코스트파의 경우에는 이들이 자급자족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음에도 1952년 공격당하여 제국주의자들로 몰려 전멸당했다.

살아남은 교회들은 공산당에 굴복한 교회들 뿐이었다. 여러 교회에는 붉은 깃발과 공산당, 마오쩌둥 찬양 문구들만 가득했다. 십자가 대신에 붉은 별이 걸렸다. 그나마 남은 교회들도 해외에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강했다. 1949년 1만 6천개에 달하던 성당은 1954년 3252개로 격감했다. 300만의 신도도 170만으로 줄었다. 개신교 교회는 아직 6700개가 남아있었으나 신도는 6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1954년 시점에서 천주교 선교사들은 300명이 남아 있었다. 17명이 투옥 상태였고 60명은 조사를 받고 있었으며 34명이 중국을 떠나고 있었다. 나머지 선교사들도 곧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중국의 기독교는 근절되지 않았다. 산둥과 쓰촨에선 여전히 종교 활동이 보고되었고 일부 지역에선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이 증가했다. 그러자 공산당은 1955년부터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했다. 상하이에서 이냐시오 궁핀메이 중교를 비롯하여 수백명의 천주교도들이 투옥되었다. 11월까지 1500명이 제국주의자로 몰려 투옥되었다. 이어 쓰촨, 산둥, 저장, 푸젠, 후베이, 광둥에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다. 궁핀메이 주교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가혹한 탄압의 결과로 단순히 중국 기독교계의 몰락만이 있진 않았다. 중국인들도 피해의 반열에 들어갔다. 공산당이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병원과 고아원을 공격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방치된 것이었다. 특히 나병 환자들의 피해가 컸다. 신부와 목사들이 쫓겨난 이후 방치된 나병 환자들은 폐허가 된 교회와 요양소를 나와 구걸을 하였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몇십년 전까지 나병 환자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풍문이 떠돌면서 나병 환자들을 백안시했는데 이때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을 폭행하고 살해했다. 1954년 쓰촨성 보건당국은 곳곳에서 나병 환자들이 생매장당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공산당의 탄압 때문에 이에 반발하는 폭동과 반란이 빈번하던 구이저우나 윈난의 경우에는 이미 정부가 나병 환자 관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나병 환자의 수는 급증했고 주민들의 불만도 급증했다. 이에 구이저우 공산당은 나병 환자들을 태워죽이는 것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나환자들은 꽁꽁 묶인 채로 불태워졌다. 이러한 결정은 윈난에서도 반복되었다. 융런 형 농촌 담당 관리 마쉐서우가 말했다.

"4구역에 위치한 병원의 나환자들이 자주 밖으로 나와 몸을 씻거나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초래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화형시키라고 요구한다."

융런 형 당 서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지만 마쉐서우는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면서 직접 일에 나섰다. 

"대중이 그들을 화형시키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우리는 대중의 뜻에 따라야 하며 대중이 그렇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하고 대신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1951년 6월 융런 형에서만 110명의 나환자들이 산채로 태워졌다. 오로지 6명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나환자들의 상태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들을 돌볼 능력이 전혀 없었다. 광둥 성에만 10만명의 나환자들이 있었지만 공산당은 2000명만 관리할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선교사들로부터 고아원을 빼앗은 이후 고아원의 사망률은 30%를 돌파했다. 그 다음에는 시각 장애인들과 노인들이 희생되었다. 아무도 이에 저항하지 못했다.

http://cafe.naver.com/booheong/145912

공산화 초기 중국의 종교 탄압 (2) 기독교편 | 인스티즈

3줄 요약


1. 노답

2. 노답

3. 개노답

추천

이런 글은 어떠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이슈·소식 성폭행 당한 사연자에 대한 법륜스님 즉문즉설450 218023_return05.14 17:2398723 41
정보·기타 인간이 개량해서 대박난 식물군 원탑598 담한별05.14 18:0494523
이슈·소식 버블에 쌍욕 보낸 윈터 이은 카리나177 공개매수05.14 17:00112235 10
할인·특가 요즘 쇼핑몰 반팔티 다 이난리임ㅋㅋㅋㅋㅋ107 고양이기지개05.14 17:00107053 6
유머·감동 일렉갤에 올라온 qwer가 불쾌한 골짜기인 이유178 패딩조끼05.14 20:1172505 31
요즘 충격적인 국내힙합 가사 수준….jpg 마법소녀메리 9:19 90 0
게 탈피과정1 episodes 9:01 1979 0
상사로 만나면 ㄹㅇ 개빡셀 것 같은 배우 원탑은? 백챠 9:00 902 0
돌판에 정병 많은 이유1 qksxks ghtjr 9:00 1040 0
36년전 우리나라 라면 수준1 알라뷰석매튜 9:00 1724 0
음주운전 사고서 혼자 살아남은 아빠.jpg 엔톤 9:00 963 0
직장 상사 속여서 빨리 퇴근시키기 더보이즈 김영 9:00 538 0
스모킹건 통영무용학원 변사사건 판콜에이 9:00 373 0
[구미호뎐] 마지막회 (스포주의) 더보이즈 김영 8:58 1169 0
김지원 오이카와 토비 8:57 392 0
비인간적인 사진 307869_return 8:57 539 0
[속보] 부산지법 앞 흉기 습격 피해자 사망1 류준열 강다니 8:56 3347 0
요즘 서양에서 일뽕을 상징하는 밈1 게터기타 8:53 3488 1
꼬치 사이에 낀 마시멜로우 가나슈케이크 8:52 673 0
견주들이 입마개타령 어이없다고 느끼는 이유(feat.오프리쉬) 호롤로롤롤 8:48 1287 0
김태리 초등학교 졸업사진 비하인드 인터뷰 남준이는왜이 8:47 567 0
인천서 30대 집배원 자택서 숨진 채 발견…동료들 "과로 시달려"2 탐크류즈 8:47 3622 4
일본 자전거 범칙금 하품하는햄스 8:44 558 0
[속보] 민주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 사퇴…추미애 지지 선언 남준이는왜이 8:41 391 0
god 어머님께 한문버전.jpg 세기말 8:41 703 0
전체 인기글 l 안내
5/15 9:18 ~ 5/15 9:20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